오래될수록 가치가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친구와 와인이 그렇다. 여기에 가죽을 더해보면 어떨까. 나의 피부가 나이들 듯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아주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 좋지 않은가. 이러한 가죽의 매력에 빠져 작게 시작하게 된 일이 업(業)이 된 사람이 있다. ? ?
한국인 최초로 독일 라이카(Leica) 카메라 케이스를 만들어 수출까지 한 레더 아티산의 김봉섭 대표가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현재 사업적으로는 레더 아티산의 대표로 자체 공장을 두고 수출에 힘쓰며, 특별 오더를 받은 높은 퀄리티의 제품만 제한적으로 제작하고, 교육적으로는 가죽공예 특강을 2년간 실시하여 우리나라 가죽공예 수준을 한걸음 발전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질 좋은 가죽의 달큰한 향기가 가득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보았다.
잘 나가는 S맨, 많은 것 잃고 가죽으로 새 인생 시작
김 대표는 가죽과의 인연을 어떻게 시작했을까. 족히 두 달을 들어도 모자란다는 그의 ‘가죽스토리’가 펼쳐졌다.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나와 잘 나가는 S사 IT연구원이었던 김 대표는 벤처 붐을 타고 퇴사하여 벤처기업을 운영하였다. 여러 개의 특허도 내고 승승장구 탄탄대로를 걷던 중 시련을 맞이했는데, 한 순간에 사기를 당해 그 동안 이룬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의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세상을 등지려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을 정도였으나, 그를 치유해 준 것은 칼, 바늘과 실 그리고 가죽이었다. 사기꾼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방황하던 무렵 우연히 집에 있던 김 대표의 나이와 같은 독일 롤라이(Rollei)35 카메라의 너덜거리는 가죽 케이스를 보고 ‘꼴이 나와 같구나’하고 생각했다는 것. 그래서 결심한 것이 ‘가죽으로 새 옷을 입혀주자’였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다 보니 마음속의 화가 가라앉고 희망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평소 사진을 좋아해서 사두었던 라이카 카메라의 케이스도 만들게 되었는데, 커뮤니티에 노출이 되다보니 입소문이 나 수입을 하고 싶다는 해외 바이어가 생기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두 번째 일이며 한국에서는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사실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불리는 라이카 카메라이기에 그 의미도 크다.
이렇게 수출된 제품들은 알게 모르게 외국 영화에도 나오고, 광고에도 나오게 되었는데 이를 캐치하고 마음에 들어 개인적으로 주문을 하는 고객이 세계 각처에 있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국내 최초 라이카 카메라 케이스 수출, 고퀄리티 제품만 생산
김 대표가 15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을 가죽제품 생산업계에 몸을 담으면서도 무척 아쉬웠던 점은 우리나라 가죽공예의 현실이었다. 현장과 가죽공예가와의 갭(Gap)은 굉장히 컸고, 사용하는 기술들이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오래전에 사용하던 낙후된 기술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죽 기술의 명맥조차도 끊길 위기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해서 결심을 한 것이 ‘특강’이다. 2년 전부터 ‘특별 강의’를 통해 제대로 된 가죽에 대한 색다른 기술과 노하우들, 그리고 살아있는 현장의 제조법들을 알렸다. 지금까지 약 100여명이 거쳐 갔는데 여기에는 현직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공방 주인은 물론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창업주들도 많다. 김 대표는 이 특강을 하며 강조한 것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 혹은 제품을 주변에서만 판매하려하지 말고 글로벌화 시키라는 것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더 큰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앞으로의 꿈은 몇 년 안에 ‘가죽공예 아카데미’를 세우는 것이다. 기존의 가죽공예학원, 공방의 교육과는 확연히 다른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하고 싶어서다. 최신 장비와 최신 유럽기술 그리고 차별화 된 한국기술을 조합하여 굳이 유학을 가지 않아도 충분히 가죽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아카데미를 만들 계획이란다. 언젠가는 이탈리아에서 혹은 프랑스에서 가죽을 배우러 한국으로 올 날도 멀지 않았다.
그의 작업실에서는 특강 외에도 취미반 수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그의 블로그(blog.naver.com/everadro 은빛가방속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밖의 가죽공예에 관한 고급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가죽공예 아카데미 설립 계획
김봉섭 대표는 “외국처럼 100년 넘게 할 수 있는 전통을 만들고 싶어요. 딸이 디자인을 전공하는데, 함께 힘을 합쳐 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탈리아 구찌(Cucci)라는 브랜드가 탄생하기까지 창업주가 가죽에 몰두했던 20년간의 기간이 있듯 김 대표도 지금 진행 중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던 가죽쟁이란 호칭을 벗고 종합 예술로 더욱더 인정받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중이다. 작품에는 혼을 불어넣고, 매일 공부를 하며 개선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그에게 15년간 함께해온 가죽의 의미를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이세라 리포터 dhum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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