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어렸을 적부터 즐겨 여행을 함께 다닌 언니네 식구. 아들만 둘씩이라 네 명의 남자아이들은 늘 환상의 조합으로 즐거운 여행을 함께 하곤 했다. 그러다 큰 조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여행이 뜸해졌다.
시나브로 여행이란 단어가 다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큰 조카가 수능을 막 끝냈을 때다. 논술시험을 끝내고 수능점수가 발표되기 전까지의 며칠을 노려보자는 것. 그렇게 다시 뭉친 지 3년 째. 올해는 우리 집에 수험생이 있었다. 역시 논술전형이 끝나고 수능성적이 발표되기 전이 D-day.
가깝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친정 부모님이 합류하며 ‘멀지 않고 쉴 수 있는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3년 전 상하이 자유여행에서 힘들어하신 부모님을 고려, 자유여행보다는 패키지여행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뿔싸!’ 패키지여행이 자유여행보다 부모님껜 더 힘든 여정이란 걸 이번 여행으로 깨닫기도 했지만, 여행을 계획할 땐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여러 곳이 물망에 올랐다. 많은 것을 고려한 결과 결정된 곳은 베트남 하롱베이와 하노이 일정. 우리의 콘셉트인 ‘멀지 않고 쉴 수 있는 곳’으로 그곳이 낙점된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출발하는 언니네 식구와 우리 식구와는 달리 지방에서 서울까지 이동한 후 여행에 합류해야 하는 부모님께는 이것조차도 그리 만만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리고 베트남의 지형 특성과 교통 상황 상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역시 일흔이 넘은 부모님껜 힘든 여정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계획한다면 비행기 시간 뿐 아니라 여행 중 이동 시간도 꼭 참고하라고 권하고 싶다. 두 분 모두 지난해 수술 경험이 있어 이번 여행이 좀 더 힘든 것도 같았다.
기말고사가 끝나지 않아 참석하지 못한 큰 조카를 뺀 9명이 3박4일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 첫째 날은 비행기와 버스를 탄 기억밖에 없다. 가까운 줄만 알았던 베트남인데, 비행기 탑승시간만 5시간여. 여기에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이동하는 시간이 4시간 남짓. ‘멀지 않고 쉴 수 있는 곳’으론 너무나 힘든 여행의 시작이었다.
신성놀음이 따로 없는 하롱베이 투어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하롱베이 투어는 둘째 날에 잡혀있었다.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영화 ‘인도차이나’와 로빈 윌리엄스의 ‘굿모닝 베트남’의 배경이 되었던 곳. 안타깝게도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하롱베이를 배경으로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주인공이 서 있는 영화포스터만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3000여개의 섬들이 만들어낸 장관. 실제로 본 하롱베이는 상상 그 이상의 규모였다. 하롱베이의 ‘하롱’은 하늘에서 용이 왔다는 뜻. ‘내려온다(下)’는 ‘하(Ha)’와 ‘용(龍)’을 뜻하는 ‘롱(Long)’에 ‘만(灣)’을 뜻하는 영어 ‘베이(bay)’의 합성어.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오는 침략자를 막기 위해 하늘에서 한 무리의 용들이 내려와 사람들을 구했고,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용의 입에서 내뱉은 보석과 구슬들이 3000여개의 섬이 됐다는 것이다. 보트를 타고 하롱베이에서 하루를 보내자니 나도 모르는 사이 용의 전설이 실제처럼 와 닿는 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롱베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배를 타고 떠있는 섬들 사이를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다는 점. ‘유유자적’ ‘신선놀음’ 등의 말이 제격일 만큼 그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하루를 즐길 수 있다.
함께 한 우리 여행 팀이 보트 한 척을 통째로 빌려 배 위에서 식사도 하고 섬으로 다가가 동굴탐험도 하고, 또 바닷물에 풍덩 몸을 맡긴 채 여행의 흥분을 식히기도 했다.
특히 선택(option)으로 즐길 수 있는 선상에서의 베트남 전통 해선식은 아이들과 부모님 모두 만족한 별미. 주변 고기잡이배에서 직접 구입한 신선한 해산물이 요리의 주재료. 돔, 오징어, 새우, 대합, 미니가재 등으로 만든 음식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입맛에도 딱 맞아 즐거운 한 끼를 즐길 수 있었다.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동굴을 직접 탐험해볼 수 있었던 것도 여행의 즐거움.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과의 만남도 여행의 재미를 더욱 크게 해줬다.
다양한 여행의 즐거움, 행복 에너지의 근원
해외여행을 갈 때면 빠뜨리지 않고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현지 시장과 슈퍼마켓. 호텔 투숙 후 밤이나 아침 일정이 시작되기 전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현지 생활을 살짝 체험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저렴하게 다양한 현지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터넷 지도와 사진이 워낙 잘 되어 있어 떠나기 전 호텔 주변과 우리가 방문하는 곳 주변을 부지런히 챙겨놓았다.
그렇게 해서 들른 시장과 슈퍼마켓. 우리에게 익숙한 베트남 쌀국수 재료와 각종 소스, 그리고 유명 커피 등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횡재를 누리기도 했다.
가족 여행을 하며 얻게 되는 또 한 가지는 평소 잘 알지 못했던 아이들의 깊은 속마음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생활 속 내 아이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건 때론 혼자서 웃음 짓게 하고, 또 때론 눈물이 핑 돌게 하기도 한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살갑게 챙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무릎 관절수술 후 걷는 게 힘든 외할머니를 여행 내내 번갈아가며 부축하는 아이들. 잠시라도 외할아버지가 혼자 계시다싶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을 건네는 아이들이다.
9명이 함께 한 가족여행. 항상 선두에 2대가 있었고 중간엔 1대, 그리고 마지막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챙기는(?) 3대들이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눈으로 본 건 잊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함께 한 즐거웠던 기억은 영원히 간직할 행복에너지가 될 거라 확신한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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