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엄마를 위해] - 2부 게임과 스마트 폰에 빠진 자녀 구출하기
제3장 게임(스마트 폰)에 빠진 자녀와 함께 읽어야 할 철학적 사유 1
연극이 끝난 후 느끼는 공허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학창 시절 어떤 공연 활동이나 프로젝트 등을 친구들과 열심히 노력하여 발표하는 경우, 그 결과가 매우 좋은 반향을 일으킬 때 기쁨이 크다. 그런데 그때 희한하게 대부분 사람들은 갑자기 몰려오는 공허감에 당황한다. 대학 합격 이후 대부분 수험생들은 한결같이 허탈해 한다. 왜 그렇게 노력해서 엄청나게 좋은 결과를 맺었는데도 우리는 그렇게 공허감에 시달릴까? 그것은 과정과 결과에 ‘자아’의 존재감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연극 준비를 열심히 한 후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고 치자. 그 준비하는 과정에는 자아의 활동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결과에는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감내하고 버티는 것에는 ‘나’가 있다. 그런데 결과에는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겪는 동안 ‘나’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므로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아의 존재감 즉 자존감은 강하게 존재하지만 그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는 자아가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매우 허탈해 진다. 이와 같은 이유로 자녀를 대학 입시에 성공시킨 엄마들이 자녀 합격 후 다가오는 자아의 상실감은 매우 크다. 자녀는 대학에 합격한 과정에서 자존감을 느끼기라도 하지만 어머니는 과정에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허탈해 한다. 많은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원리에 있다. 대부분 인기는 과정보다 결과가 부풀려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기에 대한 공허감은 매우 크다. 그들은 과정의 자존감보다 부풀려진 결과에 대중들이 인기에서 자아를 찾는다. 그 자아는 분명코 실제의 자아는 아니다. 그래서 많은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시달린다.
엑스따즈, 엉따즈 이해하기
인간이 느끼는 최고의 쾌감의 두 가지는 ‘엑스따즈’와 ‘엉따즈’가 있다. 쉽게 설명하면 엑스따즈는 외부 공간과 자아의 일치를 말하고 엉따즈는 시간적 변화와 자아의 일치를 의미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는 존재다. 연속적 시간을 뛰어 넘을 수도 없고 공간도 초월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간혹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동일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그런 사람들을 ‘4차원’이라고 부른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매우 행복한 삶을 산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아가 아니라 늘 일치되는 자아가 있기 때문에 행복할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들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자아를 가져야 한다. 사회적 지위나 역할이 많은 사람은 더욱 사회화의 가면을 바꾸어 써야 하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를 숨기고 살아야 한다. 사회적 지위와 역할과 행복은 비례적 관계이기 보다는 반비례인 경우가 이러한 원리 때문이다.
엑스따즈와 엉따즈의 원리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의 희열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을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에베레스트를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정상에 도착했을 경우는 실제 자아와 공간과 시간이 일치된 것이 아니라 기계에 의해서 이동을 했기 때문에 실제의 시ㆍ공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등산의 시ㆍ공간의 조건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산악인은 영원히 잊지 못할 황홀경인 아타락시아를 경험한다. 이 원리에 의해 게임이나 텔레비전 시청 스마트 폰 놀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게임을 하는 나, 텔레비전을 보고 즐기는 나에게는 허상의 자아만 있다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는 나는 실제 공간과 시간을 느끼며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상태에서 몰입하게 된다. ‘시간의 섬’, ‘리셋 증후군(Reset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는데 인터넷 게임 상의 ‘나’는 그 원리에 그대로 적용된다. 게임의 캐릭터를 잘 만들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리셋(Reset)하면 된다. 그것은 과거와 단절을 의미한다. 과거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상태로 돌려 버리면 된다. 그런데 실제 인간은 그럴 수가 없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상의 상황은 이 시간과 공간을 다 뛰어 넘어 활동하므로 진정한 자아는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게임이나 텔레비전 시청 등으로 쾌락을 찾지만 그 과정에는 실제 자아와 만나는 상황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 대체적 인물의 즐거움을 느낄 뿐이다.
그래서 자녀들의 질 높은 쾌락을 위해서는 시ㆍ공간과 일치된 자아를 만나는 취미생활을 갖도록 배려해야 한다. 관전 스포츠가 아니라 많은 종류의 실행 스포츠를 즐기게 하고 다른 사람의 유희(연예 오락프로)를 볼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악기 연주도 좋은 취미 생활이다. 이제 이런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자녀의 제대로 된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 게임이나 텔레비전 스마트 폰에 빠진 자녀를 구출하는 원리다.
다음 주에는 제4장 게임(스마트 폰)에 빠진 자녀와 함께 읽어야 할 철학적 사유 2가 이어집니다.
글 : 이성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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