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윤이가 물을 무서워해서 엄청 꽁꽁 숨었나봐요.”
100일이 넘어도 나오지 않고 있는 동생 다윤이를 보고 언니 허서윤(20세)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렸을 때 교회 수련회에서 다윤이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난 뒤로 물을 많이 싫어했다. 목욕탕에 가서 장난으로 물을 끼얹으면 화들짝 놀라곤 했다. 그런 아이가 물속에서 사고가 났으니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20대 단발머리의 예쁜 서윤은 끝내 목소리가 떨리면서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민트향 호올스 사탕
다윤이는 호올스 네모난 사탕을 좋아했다. 특히 민트향을 좋아했다. 아이스크림도 민트향, 선물상자도 민트색을 선호했다.
아빠는 호올스 사탕을 좋아하는 다윤이를 위해 퇴근할 때마다 사다주셨다. 밤늦게 퇴근하는 날은 혹시 중간에 그 사탕을 살 가게가 문을 닫았을까봐 회사 앞에 있는 가게에서 사오곤 하셨다.
사고가 난 날 진도로 가는 버스에서 서윤은 아빠가 흐느끼는 걸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아빠의 눈물에 서윤은 두려워서 몸을 떨었다.
막내인 다윤이는 아빠 앞에서 귀염을 잘 떨었다. 언니도 자기 따라서 해 보라고 했지만 경찰관을 지망하는 외향적인 서윤은 ‘오글거려서’ 동생처럼 되지는 않았다.
아빠는 서윤이도 예뻐했지만 그렇게 귀염 떠는 막내 다윤이를 엄청 예뻐하셨다.
동생은 밖에 잘 나가지 않아 엄마,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빠에게 다윤이가 없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엄마가 몸이 많이 아프셔서 함께 진도를 내려오지 못했는데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3시간 후에 내려오셨다. 걷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물도 못 마시고 음식도 잘 먹지 못했다.
다윤이 일로 엄마는 그나마 안 좋았던 몸이 더 나빠져 수술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뇌에 혹이 생겨 신경을 눌러 청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수술을 미뤄두자고 하셨다. 다윤이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병원에 누워 있을 수는 없다고.
4.16일, 사고난 날 내려간 아빠는 지금까지 팽목항에 계신다.
비스트
다윤이는 아이돌 그룹인 비스트를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양요섭을 좋아했다.
양요섭의 귀여운 얼굴이 다윤이의 마음에 들었다. 비스트에 관련된 거라면 포스터, 뺏지 등 무엇이든 다 모았다.
설이나 추석 때 받은 용돈으로 어김없이 비스트가 나오는 브로마이드(bromide)라는 잡지를 구독하기도 했다.
다윤이 책상 위에는 그 잡지 여러권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산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던 것이다.
다윤이는 자신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건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에버랜드에서 산 물고기 모양의 물총도 자신이 직접 만든 필통에 보관해 두었고 곰이 새겨진 이름표도 그대로 벽에 걸려 있었다.
중3때 다윤이를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준 목도리와 장갑도 그대로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그 친구가 소중히 쓴 사랑의 편지도 목도리 사이에 정답게 놓여 있었다.
다윤이는 그 친구를 이성으로 느끼지 않고 친한 친구로 지냈다. 고등학교 가면서 저절로 헤어졌지만 그 친구가 준 물건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깜비
다윤이에게는 소중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깜비였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 다윤이를 위해 부산에 있는 이모가 자신의 친구에게서 사주었던 팔 다리가 가늘고 눈이 큰 강아지였다.
다윤이는 그 강아지를 안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항상 강아지와 함께 했다. 잘 때도 함께 하고 언니랑 화랑유원지로 산책 갈 때도 함께 갔다.
가족 외식이 있으면 깜비가 혼자 있는 게 걱정되어 자신은 안 간다고 한 적이 많았다.
수학여행 가기 전 주 토요일에도 막내이모집에서 가족들이 전부 모이기로 한 날이었는데 막내고모가 개를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은 깜비와 집에 남겠다고 했다.
“다윤아, 이모 집으로 깜비 데리고 와도 괜찮아” 막내이모가 허락 하니까 그때서야 왔다.
다윤이는 원래 수학여행을 가기 싫어했다. 곧 있으면 고3인데 놀 시간이 없다면서 엄마와 담임선생님이 설득하여 보냈다.
깜비를 사 준 이후 급격히 친해진 부산이모가 다윤이의 집안형편을 생각해 수학여행비를 대 주었다. 그 일로 부산이모도, 엄마도, 담임선생님도 모두 힘들어 했다.
부산이모는 엄마가 아프니까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했다. 너무 힘드셔서 심장이 조여드는 아픔과 팔뚝의 핏줄이 다 터지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다윤이는 수학여행 가면서도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깜비를 잘 보살펴 달라고, 간식도 잘 주고 밥도 잘 주라며 깜비이야기만 엄청 하고 갔다.
서윤은 진도에 깜비를 데려갈까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다윤이가 정말 보고 싶어하는 친구니까 진도에 있으면 보고 싶어서라도 빨리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들도 많은데 개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대신 집에서 가까운 화랑유원지에 있는 분향소로 데려갔다.
분향소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니까 들여보내 주었다. 다윤이 사진을 깜비에게 보여주자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깜비가 엄청 큰 눈물방울을 눈에서 뚝뚝 떨어뜨렸다. 함께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니까 깜비도 뭔가 느끼는 게 있었던 것이다.
깜비는 다윤이 방에 들어가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다윤이가 앉았던 의자에 올라가 잠을 자기도 했다.
항상 다윤이 방에서 맴돌았다.
<다음호에 계속>
세월호 참사기록위원회 활동 중인 르뽀작가 김순천씨께서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사진은 이상임 사진작가님이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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