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이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자원봉사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학생, 학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한편으로는 시간 때우기 식이 아닌 ‘진짜 봉사’를 원하는 의식이 깨인 학생들도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문화재를 가꾸는 봉사는 보람과 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옛 것’에 윤기를 더해주려 구슬땀을 흘리는 문화재지킴이들의 활동을 동행 취재했다.
들기름 향이 은은히 퍼지는 성균관의 정록청을 남녀노소 스무 명이 모여 걸레에 기름 묻혀서 뽀얗게 먼지 쌓인 문틀과 마룻바닥을 부지런히 문지른다. 토요일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성균관 구석구석을 청소하러 나온 이들은 금방 땀과 먼지 범벅이 된다.
잠자던 고건축물의 묵은 때를 말끔히 벗기고 난 다음에는 뜰 앞에 수북한 잡초 뽑기에 나선다. 호미와 갈고리 들고 내리 쬐는 햇볕 아래 풀을 뽑다보니 2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힘은 들지만 역사책에 나온 유명 건축물을 내 손으로 청소한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조선시대 성균관이 오늘날의 서울대인 셈이잖아요. 좋은 마음으로 쓸고 닦으며 좋은 기를 받아가려고 해요.” 이지원(중2) 양이 말한다.
성균관 유생은 어떻게 살았을까?
매월 한 차례씩 1년 과정의 성균관지킴이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단체는 문화살림(구 위례역사문화연구회). 1999년 송파구를 기반으로 설립된 뒤 어린이부터 시니어까지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진정성 있는 역사체험 활동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고 있다.
“과거에는 문화재 보존에 무게 중심이 실렸다면 이젠 문화유산을 활용하는 데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성균관지킴이 활동도 옛 건축물을 쓸고 닦는데 그치지 않고 문화재 해설부터 조선시대 교육제도, 유생들의 생활상까지 성균관 관계자에게 직접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사실 옛 유생들도 늘 책만 읽지 않고 ‘노작’이라 해서 땀 흘려 일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졌어요. 그런 옛 전통을 우리 학생들은 ‘청소 봉사’란 이름으로 재현해 보는 셈이죠.” 오덕만 문화살림 회장이 설명한다.
지난 6월부터 명륜당을 시작으로 진사식당(유생들의 전용 식당), 정록청(성균관 관원 사무실) 등 성균관 전각들을 차례로 매월 청소하는 중이다.
성균관은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까지 내로라하는 지성인들의 수련 장소로 퇴계 이황 선생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특히 역대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제를 올리는 엄숙한 공간이라 일정 구역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성균관 곳곳을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문화재 지킴이 활동이 입소문 나면서 역사학도, 가족 단위 봉사자들, 기업체 봉사팀까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봉사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역사 배우고 봉사도 하고
“중고생 자녀의 역사교육과 봉사활동을 겸해 가족이 참여한 팀도 여럿 있고 멀리 군산에서 매월 첫차를 타고 올라와 활동하는 열혈 대학생도 있습니다. 신한은행 임직원들도 참여하지요. 성균관처럼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일수록 개별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문턱이 높기 때문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윤영선 국장이 설명한다.
지난 5월에는 송파구 보성고 학생 32명이 성균관 명륜당을 찾아 인문학 강의를 듣고 난 뒤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담임교사 주도로 고3 반 전체가 유생복을 갖춰 입고 강의를 들었어요. 입시가 코앞이라 ‘왜 공부하나? 대학은 꼭 가야되나?’같은 본질적인 물음이 절실했던 터라 학생들의 호응이 컸어요.” 오 회장이 귀띔한다.
소외계층을 위한 서원 답사 진행
이처럼 역사 체험 교육과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10여년 세월 뚝심 있게 진행해온 문화살림은 우리 문화재 보존에 관심이 높은 신한은행 후원을 받아 올해부터 소외 계층을 위한 서원 답사를 진행중이다. 첫 답사지로 지난 6월에는 송파구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청소년 38명을 데리고 장성의 필암서원을 찾았다. “서원은 조선시대 정신문화의 보물 창고 같은 곳입니다. 의관을 정제한 후 알묘례 올리고 호패를 만들어 보면서 학생들이 유학을 몸으로 익혀보는 거지요.‘ 윤 국장이 서원 답사의 의미를 설명한다.
왜 우리 문화재에 주목해야 할까? 오 회장에게 우문(愚問)을 던지자 “문화재란 하드웨어에 깃든 정신적 가치를 음미하다보면 한국인의 정체성이 읽혀집니다”라는 내공이 묻어난 즉답이 돌아온다.
▶성균관 문화재지킴이
매월 1회 이상 주말에 성균관과 문묘 가꾸기 활동
▶풍납토성에서 찾아라! 생생백제
-일시 : 9월20일, 9월27일, 10월11일, 10월18일 (토) 오전9시30분~12시
-장소 : 풍납토성 일대
-내용 : 해설이 있는 왕성길 걷기, 발굴 체험, 백제 의상 체험,
고구려 백제 영토정복 게임 (참가비 1인당 5000원)
-문의 : 문화살림 02-3401-0660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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