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자 행운입니다. 때로는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쓴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사랑과 애정을 쏟아주시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 코너에서는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참된 가르침을 전해주시는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교직생활 31년차,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기찬 학교생활을 이끌어 가고 있는 등촌고등학교(교장 김응길) 이형삼 교사.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교사를 하는 것도 모두 운명이라 생각하는 이형삼 교사를 만나본다.
그림, 운명적으로 만나
이형삼 교사는 어려서부터 교직을 꿈꾸거나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건 아니다. 정치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가진 그는 중학교 내내 담임으로 미술 선생님을 만나면서 운명같이 그림의 세계로 인도됐다.
담임은 위인들의 사진을 크게 그리고 일일이 설명을 써 넣어 국내 최초로 학교에 민족관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는 선생님이 그림을 그릴 때 밑 작업을 도와주었다. 그 때 처음으로 미술이라는 것을 접하게 됐다. 전북 고창군 해리면 시골 출신이 물감이라는 것을 처음 만져본 것이다. 제자의 재주를 알아봤는지 담임은 다른 아이들보다 심부름을 더 많이 시켰고 저축포스터대회에 나가보라고 권유도 하셨다.
처음으로 그림을 그려 대회에 출전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군 대회를 거쳐 도 대회,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말았다. 수상의 기쁨만 있었지 미술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그때까지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전주고등학교에 낙방을 하고 전주상고에 입학, 적성에 맞지 않는 수업에 방황하고 있을 때 쯤, 포스터에서 입상한 상장과 메달이 고등학교로 도착했다. 고등학교 미술 교사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따로 미술실로 불러 실기 테스트를 치르게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건 운명이라고 봐야죠. ‘그림이 운명이구나’ 생각을 하고 열심히 그렸습니다. 그해 5월 전주시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받았죠.”
첫 부임학교, 아름다운 불법을 행하다
임용 고시 합격 후 첫 부임한 학교가 양화중학교다. 그 때 당시 양화중학교 근처는 재개발로 천막이 뜯기면서 오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방황하고 학교도 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이 교사는 어찌하든 이 아이들에게 중학교 졸업장은 쥐어주고자 무단결석하는 아이들의 책상을 숨겨가며 출석일수를 맞추었고 졸업도 시켰다. 아름다운 불법을 행한 셈이다.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하죠. 그 때는 교직생활의 시작이었고 열정도 있었고 아이들에게 졸업장은 쥐어주고 싶었어요.”
교직 생활 31년을 보내며 가장 생각나는 제자는 여의도중학교 시절 김희주 학생이란다. “그림에 재주가 있는데 부모 반대가 심했죠. 아이 인생을 걸고 처음으로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3개월 연습하고 서울예고를 거쳐 미대에 입학하더니 국비유학생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유학 가기 전 ‘선생님 덕분에 유학까지 가게 됐다’고 전화가 왔어요. 정말 기쁘더라고요.”
그리고 현재 등촌고 3학년 탁진태 학생이다. “처음으로 나를 놀래 킨 학생이에요. 그림을 보면 생각하는 차원이 틀리고 표현력이 달라요. 절대 미술실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깨고 이 학생을 위해 미술실 한편에 연습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잘 되는 걸 보면 교사로서 뿌듯하다는 이형삼 교사. 아이들을 사랑하고 학교를 절대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에게도 갈등은 있었다. “교직 7년차쯤 학교를 관두고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인들의 작품전시회에 다녀오면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다시 올라와요. 학교를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림에 더 전념하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그림보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자 작품은 퇴직 후로 미루고 다시 학교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더 나은 교육자가 되기 위해 한국교원대학원에 입학했다. 이 시절 교육학에 대한 생각, 독일 발도로프 교육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교원대학원으로 2년간 파견 나가있으면서 소외된 아이들을 생각하고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등촌고 자율형공립고 관련 프로그램 도맡아
지방 출신에 전공도 미술이라 이형삼 교사는 승진에는 자신이 없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창 시절부터 공부도 잘하는 소위 엘리트 계층인데 비해 자신은 초라해보였기 때문. 하지만 연구부장으로서 등촌고등학교의 자율형공립고 관련 모든 프로그램을 도맡아 진행했고 2년 동안 학부모와 지역 주민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유화 입문반 과정’도 운영했다.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끊임없이 대한민국미술대전에 도전하게 만들었고 93년 ‘달빛소나타’로 첫 입상, 5년 동안 계속 입상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들이 모여 교무부장을 거쳐 이제 교감 연수까지 받았다.
또한 학창 시절 자신의 경험이 아이들과 소통에 도움이 됐다. 소위 말하는 교내의 일진들과 대화가 되는 유일한 교사다. “미술은 수학이나 영어처럼 주요과목이 아니잖아요. 수업이 성취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림을 접근하는 방법이나 감상하는 시각을 가지게 해주고 한 숨 쉬어가는 곳이 미술실이죠. 문제가 있거나 힘들어 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림을 그릴 때 옆에 앉아 같이 그리고 대화를 나누면 제 품 안으로 들어온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이 교사의 관계가 지나치게 좋다. “형삼씨~” 하고 아이들은 거침없이 부르기도 한다. 때론 민망하기도 하지만 친구처럼 대해주는 아이들이 마냥 좋기만 이 교사. 혹여나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있을 때,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이 격의 없이 대할까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마음이 통한다는 생각에 교사로서 기쁘기만 하다고. “제도적으로 크게 변화는 못시켜도 내 품 안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이 교사는 갈무리한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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