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르신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꼭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황혼육아’에 관한 것이다.
“봐줘? 말어?”손주가 태어나기전부터 은근히 고민이 된다. 게다가 매스컴에서는 연일 황혼육아로 인한 자녀와의 갈등, 육체적 고통 등 부정적인 면을 다룬 보도가 많아 정말 저렇게까지 힘들까하고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듯이,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보자’며
적극적로 손자, 손녀의 육아에 참여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늘고 있다. 손자 손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육아서적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배우고, 더욱 적극적인 분들은 기관에서 ‘손주 돌보기’같은 프로그램을 수강해서 듣기도 한다. 여기 손주돌보기에 적극 나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늦은 나이에 육아를 담당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니 너무 설레요!
리포터는 지난 18일 송파 산모건강증진센터에서 마련한 ‘손주돌보기’라는 프로그램 첫 수업을 함께 했다.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신청하여 육아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하는 등 열기가 대단했다. 요즘 할아버지들이 쓴 육아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래서 일까 드문드문 할아버지 수강생도 보여 손주사랑에 이제 할아버지도 동참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하였다.
부부가 함께 이 수업을 듣는다는 황순철(만 65세, 석촌동) 할아버지도 곧 친손주를 맞이한다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하는 며느리를 대신해서 우리 부부가 손주를 돌볼 계획입니다. 저도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도울 생각입니다.”
손자바보임을 자칭하는 방송인 이계진씨는 ‘똥꼬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라는 책에서 ‘강보에 싸인 손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내 아이가 나은 아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라며 첫 손자를 맞이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첫 손주를 곧 맞이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마냥 설렌다며 손꼽아 손주가 태어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 키우며 아쉬웠던 점 많아 손주에게는 더 잘 해 주고 싶어요
젊었을 때는 먹고 사느라 바빠 아이 키우는 기쁨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는 어르신들이 많다. 하지만 양육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난 지금은 온전히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 내 아이 키울 때는 몰랐던, 하루하루 커가는 손자손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예쁘다고 한다. 육아에 적극 나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한목소리로 내 아이 키우며 겪었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손자에게는 더 잘해주고 싶다고 한다.
“아이를 직접 길러본 엄마들만 알죠. 육아는 정말 힘듭니다. 내 딸도 얼마나 힘들까 싶어 적극 도와 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 아이 키울 때는 책만 열심히 읽어주고 운동을 많이 시키지 않은 게 지금도 후회돼요. 그래서 손주에게는 신체활동을 많이 시키고 싶어요. 바깥에서 많이 놀아줄 생각입니다.” (김정민, 만 54세)
“아동복지를 전공했음에도 아이 키우는 일은 힘들었어요. 가정과 일을 병행해야 해서 딸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부족한 엄마였죠. 손주에게는 자장가도 불러주고 많은 시간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딸에게도 육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고 워킹맘 선배로서 조언하고 있어요.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라거든요.” (서윤희, 만 51세)
요즘 육아 너무 어려워요!
며느리, 딸을 대신해서 육아를 담당하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오래전 일이라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요즘은 육아용품도 다양하고 풍속도 많이 달라져 걱정이라는 할머니들이 많다. 손주돌보기 수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수강 신청을 했다는 안혜경(만 56세)씨는 “딸이 미국에 사는데 곧 출산해요. 제가 가서 산후조리를 해주고 올 생각인데 말도 안 통하는데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돼요.”라며 교수님께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묻기 바빴다. 육아를 도와주기로 결심한 분들 가운데서도 수유법, 분유타기, 목욕시키기, 이유식 만들기 등 예전과 많이 달라진 육아법 때문에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 직접 육아에 나서다보면 자녀와 육아방식, 교육관등의 차이로 갈등을 겪는 경우도 종종 있게 된다.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혜진 교수는 일단 자녀의 육아방식을 존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무조건 틀렸다 하지 말고 “내 생각에는 ~” 하고 좀 더 부드럽게, 솔직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휴식시간 정하고 노부부가 함께 육아에 참여해야
마음은 앞서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에 육아는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든 일이다. 육아를 담당하기로 결정하였다면 몇 가지 수칙을 정하여 지키는 게 가족간의 갈등을 줄이고 오래도록 손주를 돌보는데 도움이 된다. 김 교수는 행복한 황혼육아가 되려면 반드시 본인의 휴식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루 중에 아이 보는 시간을 정해놓고 조금이라도 내 시간을 갖도록 하고, 일주일 가운데 쉬는 날을 정해 꼭 쉬도록 귄장한다. 피로가 누적되면 질병으로 이어지고 적정한 휴식이 없으면 정신적 스트레스도 쌓이게 되어 나중에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머님들 가운데 손주돌보느라 남편인 할아버지에게 소홀하여 부부 불화가 생기는 경우도 있음으로 산책시 유모차를 밀어주거나 말벗이 되어주는 등 작은 일이라도 할아버지도 함께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게 좋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연세 때는 뼈가 약함으로 허리, 무릎과 같은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다시 아이를 키우는 기쁨과 행복
황혼육아로 가족간의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분들도 많지만, 반면에 내 자식에게 도움이 되고 예쁜 손주의 미소와 손짓에 노후에 다시 삶의 활기를 찾게 되었다며 황혼육아를 적극 권장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다. 은퇴 후 인생 2막, 외손주를 키우며 느낀 기쁨과 행복을 육아서로 발간한 한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세상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행복이 다시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며 노년의 육아는 젊어서 일하느라 바빠 가정에 무심했던 할아버지 세대의 감성까지도 촉촉이 적시고 있다. 다만 본인의 체력을 고려하고 자신의 삶도 유지할 수 있는 적정선에서 가족간의 합의를 먼저 이루는 것이 행복한 노년의 육아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도움말
김혜진 교수(손주돌보기 담당, 간호학전공)
육아서적 ‘하찌의 육아일기’, ‘똥꼬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우지연 리포터 tradenz@nate.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