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들의 과제 연구 R&E

R&E 전(全) 과정이 학습이자 큰 경험

지역내일 2014-08-19 (수정 2014-08-19 오전 11:42:05)

‘Research and Education’을 뜻하는 R&E. 고등학생들의 과제연구라 하지만 그 결과물을 보면 대학생들의 논문 못지않은 높은 수준을 갖는 경우도 있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에 걸쳐 자신의 연구에 몰입하는 학생들. 그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은 학업은 물론 협업 등을 통한 사회성까지도 한층 성장됨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배재고등학교 진학지도부장 우태재 교사는 “스스로 주제를 정해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탐구능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문제해결력까지 키워갈 수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팀별공동연구일 경우 협력적 과정까지 체험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색 R&E를 완성한 학생들에게 R&E의 전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베네치아와 청해진의 비교’ 연구한 보인고 3학년 한석진
“관심 있는 주제 선정, 대학 공부 미리 경험하는 기회”
 

“짧은 정식 보고서를 써보는 것은 제게 새로운 도전이자 경험이었어요. 대학에서의 공부를 미리 경험해본다는 짜릿함도 있었고요. 보고서를 쓰며 평소 부족함을 느꼈던 글쓰기에 있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것에 대해 확신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승
 
논문 찾고 요약하는 데에만 2달 여 집중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기 6년을 유럽(프랑스, 스위스)에서 보낸 한석진(보인고 3)군은 어린 시절 여행했던 베네치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120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며 그 역사가 잘 보존된 베네치아. 그곳과 비교할만한 곳이 분명 우리나라에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보고서 주제 찾기가 시작됐다. 한때 강성했으나 현재는 이름도 없이 잊혀져간 청해진. 그곳이라면 베네치아와 견줄 많은 내용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청해진과 베네치아의 비교는 그렇게 시작됐다. 
주제를 정하고 난 후에는 자료 찾기에 집중했다. 먼저 지리학적 자료가 담긴 책과 논문을 찾았다. 동해와 아드리아해를 중심으로 자료를 모았고 여러 지도에서의 변화도 빠트리지 않았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논문을 검색했고, 관련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죠. 베네치아 관련 자료는 책에서, 청해진과 장보고 관련 자료는 주로 논문에서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단계는 광범위한 주제로부터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내용만을 요약하는 과정. 20여권이 넘는 책과 논문을 참조했기에 내용을 추려서 요약하는 과정에만 2주 이상이 소요됐다.
어느 정도 내용이 간추려지자 이제 본격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한군. 베네치아의 긴 역사와 상대적으로 짧은 청해진의 역사를 비교한다는 점 자체에서부터가 힘들었다고.
한 달여에 걸쳐 만들어진 초안을 본 보고서 지도교사의 적절한 조언이 더해졌다.
“역사, 지리적 특성, 경제 등 모든 면에서의 비교를 한 번에 하려하지 말고 ‘역사’와 ‘경제’ ‘연관성과 차이점’ 세 파트로 나누라는 말씀이 큰 도움이 됐어요.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단번에 정리가 된 듯한 느낌이랄까요.”
역사에 큰 관심이 있던 한군에게 두 도시의 경제 비교 역시 그리 어렵지 않은 과제였다.
한군은 “2학년 때 경제수업을 정말 재미있게 들었고, ‘경제 마스터’란 동아리를 하며 중세와 근대 경제변화에 대한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는 보고서를 작성하며 시대를 아울러 보는 눈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보고서 작성, 수십 시간의 논술수업보다 값진 경험
 
보고서를 쓰며 어려운 점도 많았다. 한군은 “여러 논문에서 보고서에 필요한 내용만을 추려 한 문장으로 만드는 과정이 특히 어려웠다”고 했다.
한문이 많은 논문과 영어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것 또한 녹록치 않은 과정이었다. 방대한 자료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간추리는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법 또한 남달랐다. 모든 논문을 직접 프린트해 직접 밑줄을 그어가며 자료를 모았고, 보고서 초안의 작성 역시 직접 손으로 써내려가는 등 철저하게 아날로그방식을 고집했던 것. 아버지의 권유였다.
“제가 직접 손으로 쓰다 보니 모든 내용이 머리에 잘 기억됐고, 놓치는 부분 없이 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보고서를 쓰며 글쓰기 실력이 부쩍 향상됐음을 느껴요. 수십 시간의 논술수업보다 더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한 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많은 논문과 책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한군. 그는 보고서를 쓰며 자신이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더욱 확실해졌다.
“경제와 서양사 모두에 큰 관심이 있어요. 중세사를 중심으로 경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중세경제연구학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

‘콤부차’ 연구한 배재고 3학년 이후승
“적극적이고 능동적 자세, 보고서 작성의 기본”
 
“생물에 관심 있는 동아리(의생명과학동아리) 친구들 네 명(이정환·전종욱·김관우·남경국)과 함께 팀을 이뤄 실험과 보고서 작성에 집중했습니다. 1년(2013년)에 걸친 대장정이었죠. 친구들과 함께 하며 팀워크의 중요성도 깨달았고, 능동적인 자세로 연구에 임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석진


신중한 주제 선택, 실질적인 결과물에 초점
팀별과제 수행을 위해 같은 분야에 흥미를 가진 친구들과 팀을 이룬 후승군. 보고서 작성을 위한 주제를 찾는 것부터 팀별 과제를 시작했다. 다섯 명 모두가 각자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주제를 선정하기로 했다.
“일단 고등학생 수준에서 연구 가능한 주제에 초점을 맞췄어요.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되는 주제들 중 연구가능하고 실질적인 결과물이 나올만한 주제를 선택하기로 했죠.”
그렇게 해서 선정된 주제가 바로 콤부차. 건강차에 관심이 많은 요즘 부쩍 수요가 늘고 있는 콤부차는 끓인 홍차나 녹차에 콤부버섯을 발효시켜 만는 차로 설탕의 양이나 발효시간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다양한 차를 발효시켜 만든 콤부차의 대중선호도와 항생효능’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팀별 과제로 진행하는 만큼 각자 전문분야 하나씩을 맡았다.
후승군은 “영어실력이 뛰어난 친구가 해외논문파트를, 글을 잘 쓰는 친구는 논문작성, 그리고 발표 등 각자 분야를 나눠 각자의 파트에서 전문가가 되어 연구를 진행했다”며 “하지만 각자 담당은 있되 활동은 철저하게 함께 하는 방식을 선택, 공동연구를 잘 진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각자 학업에도 바쁜 터라 시간을 맞추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다섯 명 모두가 똘똘 뭉쳐 동아리 활동 시간을 활용하는 등 큰 문제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실험 관련 자료를 찾고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자신들이 진행할 실험계획서를 작성했다.
실험을 시작해야 하는 단계. 준비물을 준비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특히 콤부버섯을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민간배양된 것을 구할 수 있었다고.
실험으로 만들어진 콤부차의 대중선호도는 지역교육청 과학축제 때 시음·설문조사로 이뤄졌다.
“선호도를 조사하며 우리의 예측과 맞아떨어진 것도 있고 또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도 있어요. 단 맛이 강한 것을 선호하는 것은 생각대로 결과가 나왔고, 우리의 예측과는 달리 홍차보다 녹차를 선호한다는 결론이 나와 의외였습니다.”

적극적인 자세, 실험의 정확도 높여

항생능력을 실험하는 것은 좀 더 힘들었다. 실제로 사람이나 동물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실험이 아니어서 미생물배양배지를 이용했다.
후승군은 “온도나 습도를 일정하게 맞춘다고 노력은 했지만, 동일 환경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 힘들었다”며 “항생능력의 효능을 실험으로 입증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실험을 할 때 특히 신경 쓴 부분은 사전실험과 여러 번의 본 실험으로 실험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 최대한 많이 실험을 반복, 객관적인 값을 구하려 노력했다.
드디어 1년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12월, 배재자율탐구대회에서 마지막 발표를 담당한 후승군. 1주일 넘게 팀 전체가 준비에 집중한 후승군 팀은 당당하게 자연계 1등을 수상했다.
그는 보고서 작성 과정 중 “학교에서 능동적으로 실험실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을 최고의 성과로 꼽았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실험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세운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 그들의 실험은 현재 배재고 후배들에 의해 심화되어 진행되고 있다. 기간에 따른 항생효능에 대한 부분 등 콤부차와 연관된 다양한 연구를 후배들이 이어가고 있다.
“실험과 보고서 등 많은 부분이 처음엔 많이 생소했어요. 전문용어들도 많아 어려움도 있었죠. 적극적인 자세로 꾸준히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학교 실험실만으로 부족한 내용들은 대학실험실 등에 분석을 의뢰하는 등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노력한 것이 좋은 실험 결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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