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저녁 밤도 깊어 으슥한 시간, 아파트 단지에서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이는 날에 외로이 서서” 어린 아이들이나 부를 법한 동요가 힘 있고 장엄하게 들리는 이곳은 신정3동 이펜하우스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만든 ‘서울이펜합창단’이다. 동요부터 가곡, 가요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노래 부르는 재미에 속 빠진 서울이펜합창단을 소개한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노래, 소통의 도구가 되다
양천구 신정3동에 위치한 이펜하우스아파트는 입주 3년 차밖에 되지 않는 신설 아파트이지만 해마다 마을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작은 도서관, 생태공원, 아버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운영하는 ‘자율 방범단’ 활동 외 소규모 운동모임,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진행하는 마을학교와 강좌 모임 등 단지별로 주민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이제는 단지별 커뮤니티를 넘어 전 아파트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니 바로 ‘서울이펜합창단’이다.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정윤식 단장은 “단지별로 소규모 모임은 많지만 이펜하우스 5개 단지 3600세대가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었어요. 전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함께 화합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던 중 합창단을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라며 합창단의 창단 배경을 설명한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아파트 온라인 카페에 모집 공고를 냈다. 합창단을 해보겠노라고 모인 인원이 30명. 이들을 중심으로 드디어 4월 8일 서울이펜합창단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 연습에 나오는 인원은 15명. 노래를 좋아하는 회원보다 모임이 좋아서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았던지 노래가 조금씩 어려워지면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추가 단원 모집에 나섰다.
이번에는 현수막도 걸었다. 주변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지인이 있으면 추천도 해주었다. 지휘자 반주자도 모두 지역 주민으로 기꺼이 재능기부를 해주었고 노래연습을 할 장소도 인근 교회에서 제공해주면서 어엿한 주민합창단의 모습을 갖췄다.
현재 이펜합창단원은 총 51명 혼성 4부(소프라노 25명, 알토 15명, 테너 2명, 베이스 6명)로 30대 초반에서부터 70대 중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다. 연습시간은 매주 화요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대회에 나가기 위한 비용은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공모에 당선돼 단원들의 회비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만나면 즐거운 이웃사촌
한 아파트 주민들이 모이다 보니 주민간의 친밀감과 소통은 말할 나위 없이 좋다. 모이면 언니, 형님, 어머님, 아버님 불러가며 가족처럼 지낸다. 평균 연령도 40대 초반. 젊은 합창단에 속해 노래를 습득하는 속도도 빠르다. 또한 단원 대부분이 교회 성가대도 함께 하고 있어 합창에 대한 감각도 있는 편이다.
4월 창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펜합창단은 올해 9월 공연을 했다. 김종성 지휘자는 “4월에 창단해서 9월에 무대에 선다는 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첫 무대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서울 마을박람회 대합창제, 그리고 10월 이펜아파트 마을축제 때 찬조공연을 했다. 올해 남은 공연은 12월 7일 서울시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리는 ‘동네문화클럽’ 동아리 발표회, 12월 13일 합창단 제 1회 정기 발표회다.
이들이 준비한 곡은 ‘겨울나무’ ‘참 좋으신 주미’ ‘도라지 꽃’ ‘청산에 살리라’ 등 동요에서 가곡, 성가곡 등 폭넓은 레퍼토리로 주민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무대를 선사한다.
학생 단원 추가 모집으로 부모와 함께 하는 가족합창단 구성
이펜하우스합창단의 제일 어르신 박일원 회원(75), “오랫동안 교회 성가대원으로 합창을 했는데 70세가 넘으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어요. 이젠 자리를 옮겨 이펜합창단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최재란(46) 회원은 아파트 온라인 카페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제일 먼저 합창단 창단 모집 공고를 접하게 됐다. “우리 합창단은 실력이 출중해요. 아마추어 마을합창단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처음 화음을 맞추었을 때 느낌이 달랐어요. 큰 무대에 서면서 실력발휘도 제대로 했고 욕심도 생겼습니다.”
내년에는 현재 활동 중인 단원들의 자녀를 대상으로 학생 단원을 모집해 부모와 함께 하는 가족합창단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활동범위도 관내 병원 및 복지 기관과 교도소, 군부대 등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사할 계획이다.
서울이펜합창단 단원이 되려면 신정3동 이펜하우스에 살거나 주변 푸른마을아파트나 시영아파트 주민도 가능하다. 단원 모집 및 공연 문의는 정윤식 단장(010-4495-1472)에게 하면 된다.
미니 인터뷰
정윤식 단장
“서울이펜하우스합창단에 참여하고 싶은 분은 누구나 환영합니다. 합창단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많이 즐거워하십니다. 무대에 서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무대에서 자신 있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면서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종성 지휘자
“카페에 합창단 모집 공고를 보고 단원으로 왔다 지휘를 맡게 됐습니다. 전공자도 합창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지역 주민이 될까 싶었지만 오히려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개인 실력도 뛰어나 호흡이 아주 잘 맞아요.”
최순옥 회원
“주민 합창단 창단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이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펜하우스 주민들은 단합을 잘하고 소통도 잘 되기 때문에 뭐든지 계획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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