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사람들 - 엄마의 노란손수건

평범한 주부, 노란 리본 만들며 농성장 지키는 사연

“세상살이 무관심했던 우리가 정말 미안하구나”

지역내일 2014-11-0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월 1일로 200일이 지났다. 세월호 사건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삶뿐만 아니라 사고를 지켜 본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까지 바꾸어 놓았다. 가족과 함께 엄마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행동했던 ‘엄마의 노란손수건’ 회원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다. 사고가 난 후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촛불모임부터 추모 문화제까지 아이들을 기다리는 노란 손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광장을 지킨 평범한 주부들. 이들은 유가족이 차마 그 울분을 대 놓고 말하지 못할 때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사무치는 그리움과 울분을 토해냈고 누구보다 먼저 특별법 제정을 위해 거리서명에 나섰다. 세월호 200일 추모제 참가를 위해 화랑유원지를 찾은 엄마들의 노란손수건 안산지역 사람들을 만났다.

세월호


앵그리 맘이 만든 ‘엄마의 노란손수건’
엄마들의 노란손수건은 안산에 사는 3명의 주부가 만든 온라인카페 모임이었다. 참사 후 이웃의 마음으로 아픔을 나누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온라인 카페를 개설했다.
엄마들의 모임이라고 표방한 이 카페에는 어이없는 사고에 화가 난 40~50대 ‘앵그리 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전국 방방곡곡을 넘어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엄마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현재 엄마의 노란손수건 카페 회원은 9300여명. 각 지역에서 모여 촛불을 들기도 하고 광화문 농성장에서 서명을 받고 사람들에게 나눠 줄 노란리본을 만든다.
현재 안산에서는 20여명의 노란손수건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이날도 서울에서 열린 200일 추모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예 닐곱명의 회원이 화랑유원지를 찾았다. 집회장에서 먹을 김밥이며 과일을 챙겨오는 모습이 천상 아줌마들이다. 정세경씨는 “우리는 어디 가도 배고프지 않다. 엄마들이다 보니 커피며 과일 김밥 등 챙기는 건 일상이다. 배부르게 먹어야 오래 버틸 수 있다”며 환하게 웃는다. 정세경씨는 노란손수건 제안자 중 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아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세월호 이전에는 평범한 주부였던 이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와동에 사는 승희엄마는 “회원들 다 비슷할 거다. 마치 우리 아이가 세월호에 갇혀 있는 듯한 심정이었다. 우리 마을엔 94명이 희생됐다.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던 아이들 100명 가까이 사라진 동네를 생각해 봐라. 끔찍하다. 그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사동에 사는 진찬엄마는 회원 중 유일하게 전업주부다. 세월호 전에는 아이들 챙기고 시부모님 수발들고 남편 와이셔츠 깨끗이 다려놓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줄 알고 살았다고 한다. “학원은 어디가 좋은지 안산 뿐 아니라 평촌 학원가 정보까지 머리에 다 들어있었죠.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이건 내 상식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못 구한게 아니라 안 구한 거잖아요” 세월호 이후 눈물만 흘리던 진찬엄마는 세월호 소식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엄마의 노란손수건’에 가입했다.
엄마의 노란손수건을 이끄는 힘은 슬픔과 분노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다 주고도 늘 미안한 엄마의 마음이 먼저다. “우리가 만들어 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아이들이 당한 거니까요. 어른인 우리가 미안한 거죠. 세상살이 관심이 없었던 것도 미안하고, 나만, 우리 가족만 생각했던 마음도 미안해서 그래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인가 싶어 미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는 진찬엄마의 고백에 회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세월호 이전처럼 살지 않을 것
슬픔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 수 있고 분노라면 사그라들 수 있지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은 용서를 받기 전까지 편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회원들은 털어 놓는다. ‘눈물 흘리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이다. 정세경 씨는 “회사 동료들도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 하라고 조언을 해요.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만 듣는 사람은 상처가 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범인이 누군지 궁금하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이웃이고 같이 사는 사람들의 역할인데 이 일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지지도 않았고 책임자 처벌도 되지 않았는데 그만하라는 건 아니라고 봐요”라고 말한다. 노란손수건 기금 마련을 위해 지인에게 부탁을 했다가 단 번에 거절당한 기억, 헛 소문만 듣고 유가족을 비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상처에 뿌린 소금처럼 마음이 아팠다는 회원들.
평범한 주부였던 이들이 “이제는 더 이상 세월호 이전의 삶으로 살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세월호를 들여다 보니 우리 사회의 모순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밀양 할머니들도 보이고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고 이 활동을 통해 세상이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말 무관심하게 살았는데 이제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투표도 꼭 하고 복잡하더라도 관심을 갖고 노력할 것”이라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회원들. 한 회원은 “우리 동네 아이들 그 아이들만 살려내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완곡하게 표현했다.


200일 추모 문화제 참석을 위해 총총히 자리를 뜨는 엄마들. 다행히 지난 주말엔 여야가 세 번째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유가족들은 총회를 거쳐 합의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특별법이 목표가 아니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목표였던 만큼 긴 싸움이 예고됐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엄마의 이름으로 함께하겠다는 노란손수건 회원들. 뒷모습이 든든하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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