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의 배후지역이 롬바르디아이다. 큰 나무로 자라기 위해 비옥한 토양이 있어야 하듯, 밀라노가 큰 도시로 발전한데는 배후지역 롬바르디아 평야가 있다. 롬바르디아는 포강 유역의 중심부분을 차지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밀라노는 롬바르디아의 주도이다. 2차 대전 후 50년대~60년대 이탈리아 경제발전을 ‘이탈리아의 기적’이라고 한다. 중심지역이 롬바르디아 지역이다.
롬바르디아 행정구역 안에는 여러 개의 도시가 있다. 수도 밀라노(420만명), 바레세(11만명), 베레치아(20만명), 코모(21만명), 레코, 몬자(8만2천명), 베르가모(24만명)가 있다. 특징이 있고 잘 산다. 이탈리아 평균 개인소득이 2만9천불 인데 비하여, 롬바르디아의 개인소득은 4만1천불이 넘는다. 이탈리아 국민소득의 20%를 차지한다. 롬바르디아는 유럽 중에서도 가장 잘사는 지역으로 분류된다.
나폴리를 중심으로 못사는 남부와 갈등이 있다. 롬바르디아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낙후지역 때문에 높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불만이 높다. 분리독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잘사는 지역이므로 남부 이탈리아에서 이주민이 많고 외국인도 많이 들어온다. 이탈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81만명이 외국인이고, 롬바르디아 인구의 8.1%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탈리아 남과 북
1870년 이탈리아는 통일국가가 되었지만, 이탈리아 북부, 아펜니 산맥의 북쪽, 포강 유역의 롬바르디아 평야는 이탈리아 통일국가가 된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북부와 남부는 지형도 기후도 민족도 다른 지역이다. 산업화 이전에는 남부가 잘살았지만, 산업화 이후 경제의 중심은 롬바르디아 지역이 됐다. 롬바르디아는 제조업만 발전한 것이 아니다. 다양하고 풍부한 농산물이 생산된다.
특히 포강 유역의 쌀과 낙농업이 유명하다. 음식도 다르다. 쌀 음식인 ‘리조토’가 발달했다. 남쪽은 밀가루 음식인 ‘피짜리아’이다. 북부는 같은 로마제국이었지만, 인종은 켈트족이다. 기원전 4세기 경 켈트족의 지배를 받았다. 롬바르디아 지방은 BC 4세기경 철기문화를 지닌 켈트족에게 침략당했다. 켈트족은 포강 유역에 정주했다. 켈트족은 지금 독일의 남동부, 라인강, 엘베강, 도나우강(다뉴브) 유역에 살던 북부 민족이다.
이탈리아 남부는 그리스의 지배를 받았고, 주로 라틴족이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또 4세기 경 훈족의 지배를 받았다. 훈족은 볼가강 도나우강 유역에 살았던 유목민족이다. 롬바르디아를 중심으로 잦은 침략을 했고 약탈을 했다. 5세기경 로마제국을 가장 많이 괴롭힌 민족이다.
남부 이탈리아를 지배한 훈족
훈족에 대하여 좀 알아보자. 훈족의 정체에 대한 역사적 사건이 많았으나 유목민족이었으므로 역사적 기록도 없고 유물과 유적도 없다. 훈족은 4세기 볼가강 동쪽에서 모습을 나타내어 돈강과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했다. 로마제국의 중심지 도나우강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말을 타고 쫓아오는 적을 향해 뒤로 쏘는 활 솜씨는 고구려 쌍영총의 벽화를 보는 것 같다. 그들에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약탈의 대상이었다. 정착민족에게는 조직적인 군대가 있었지만, 신출귀몰하는 유목민족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동로마제국이 얼마나 훈족에게 시달림을 당했는가는 로마사에 기록되어 있다.
같은 시대에 정착적 경작을 하고 살았던 중국의 한족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북방의 흉노족, 유목민족이었다. 여러 번의 침략을 당했고, 한족은 화친을 위해 일정한 조공을 바쳤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축성하기 시작한 것도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흉노족 = 훈족’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발음이 비슷하고 같은 시기에 발생한 역사적인 사건이므로 같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지만, 같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는 모양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뱀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 토리노는 사보이 가문, 밀라노는 15세기 까지 비스콘티 가문이 지배했다. 비스콘디 가(House of Visconti)의 문장이 재미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뱀의 모양이다. 밀라노 중앙역 역사에 가면 볼 수 있다. 그 뱀의 모양이 너무나 용과 닮았다. 사슴 뿔, 염소수염, 그리고 사자의 눈이 닮았다. 용은 하늘을 움직여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지만, 한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동물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용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비스콘티 가문의 용은 뒷날 밀라노의 문양이 되었다. 비스콘티 문양을 보면서 나는 중국의 용을 생각했다. 당시 동서가 교류, 실크로드가 열렸을 때이다. 중국용의 영험에 대하여 많이 들었을 것이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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