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인

이강석 영동일고 2학년

‘독기’ 품고 달려드니 ‘진짜 공부’ 되더라

지역내일 2014-09-23

친구들이 ‘범생아!’라고 부를 때마다 이강석군은 속으로 빙긋 웃는다. 고교 입학 전까지는 공부와는 선을 긋고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그였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는 하루에 게임 8시간은 보통이었어요. 왜 그랬냐고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딱히 할 것도 없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내 삶의 암흑기였어요.” 존재감 없던 중학 시절을 마감하고 고교에 입학하자 ‘어떻게 3년을 보내야 할지?’ 덜컥 겁이 났단다.

이강석
 
공부 습관 잡아준 학교 24시
그동안 뚜렷한 목적 없이 여러 학원을 전전했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걸 경험에서 배웠기 때문에 대안으로 학교 기숙사를 점찍었다. 24시간 학교에서 지내면서 그는 서서히 변해갔다.
“기숙사 자습실에서 붙박이처럼 앉아 책만 파고드는 선배, 친구들을 보니까 정신이 나더군요. 게다가 기숙사 선생님, 선배들이 알려준 ‘깨알 같은 공부법’이 큰 도움이 됐고요.” 고1 첫 중간고사에 승부수를 던지기로 마음먹고 난생 처음 진지하게 공부를 시작했다.
“교과서를 달달 외울 듯 본 다음 자습서의 보충설명까지 세세하게 숙지하고 마지막으로 기출 문제로 점검하는 식으로 공부를 해나갔어요. 시험 1달간 무조건 새벽 3시까지 책을 파고들었어요.” 결과는 전교 1등. 짜릿할 만큼 흥분됐고 ‘진짜 공부’가 뭔지 터득할 수 있어 더 기뻤다.


‘진짜 공부’ 맛보며 개과천선
“배운 걸 스스로 곱씹는 습(習)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니 실력이 는다는 걸 처음 경험해 봤죠.” 큰 산을 넘어보자 자신감이 붙었다.
“공부법을 물어오는 친구들이 많은데 교과서, 자습서, 기출문제 3종 세트는 기본이고  과목별로 개개인에게 맞는 최적의 방법을 덧붙여야 되요. 내 경우는 요점 정리 노트는 따로 없이 교과서에다 공부한 내용을 몽땅 정리해요. 그런 다음 틈날 때마다 머릿속에서 암기한 내용을 복기하는 데 효과가 좋아요.”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 이후는 오롯이 그만의 시간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여유를 갖게 됐다.
“책과 담을 쌓고 지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책을 펴들게 됐어요. 교과서에 나온 마르크스란 인물이 궁금했던 게 시발점이 됐죠. 책을 읽다가 모르는 분야가 나오면 따 다른 책을 읽는 식으로 경제학, 철학, 문학, 생물학, 법학, 통계학까지 장르를 점점 넓혀나갔어요.”


통계학에 관심 많은 문과생
학교와 집 울타리 안에만 사는 그는 책이란 프레임으로 세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사회과학토론동아리 활동은 그가 틔운 지적 호기심의 싹에 튼실한 거름이 돼 주었다.
“연간 30차례 넘게 토론을 하는 아주 ‘빡센’ 동아리예요. 덕분에 자료 수집해 분석하는 법부터 말하기 기술을 강도 높게 훈련할 수 있었어요. 공부는 나 혼자서 하면 되는 거지만 토론은 여럿이 함께 하는 거잖아요. 주제 정하기, 일시와 장소 정해 회원들에게 연락하기, 팀 짜서 토론 역할 분담하기 등 어느 하나라도 소홀하면 펑크가 나기 때문에 우역곡절이 많았고 그런 과정 중에서 모두가 성장을 했어요. 가장 큰 수확은 책임감을 배운거지요. 대학생 선배들까지 찾아와 후배들의 토론 기술을 지도해 줄 만큼 동아리의 끈끈한 분위기도 남다르고요.”
동아리 활동을 하며 본인의 진로 밑그림도 그릴 수 있었다. “토론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제압하려면 객관적인 통계 수치가 필수적이에요. 온갖 자료를 계속 접하다 보니 통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의외로 국내에 발표된 자료 중에는 표본 집단 수집에 오류가 있는 통계 결과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나는 운이 좋다?’
문과 학생이 통계학에 관심이 있다고? 의아했다. “수학과 컴퓨터공학 지식의 토대가 꼭 필요한 학문이지만 문과학생도 지원이 가능해요. 통계학은 사실 마케팅, 사회 분석, 정부 정책, IT 기술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에 활용되는 학문이죠. 나는 특히 응용 통계학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면서 다방면에 박식한 ‘르네상스형 인간’이 되고 싶은 야무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통계학이 좋은 밑거름 될 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군 스스로는 ‘운이 좋은 아이’라고 말한다. “돌이켜 보면 기숙사에 들어오고 토론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운이 트인 듯해요. 나는 사실 겁쟁이에요. 그 전까지는 껍데기 속에 꽁꽁 숨어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속앓이만 했는데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개과천선을 했지요. 열심히 노력하며 아무지게 제 앞가림을 해나가는 선배, 친구를 보니까 겁이 덜컥 났고 나쁜 습관을 끊어내고 싶어 독기를 품고 달려드니까 다 되더라구요.”
이군이 말하는 ‘운’은 학교를 100% 활용해 차곡차곡 자기 성장을 해나갈 줄 아는 ‘촉’인 듯 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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