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는 30도를 오르내리는 늦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27일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딸아이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46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길이 막혀 닷새째 투명비닐만 덮고 잠을 자던 날이다.
교황의 방문으로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희망도 현실 앞에서는 잔인한 고문이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던 즈음. 답답하고 궁금한 마음에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안산시민대책위원회는 매일 아침 10시 화랑유원지에서 국회와 광화문을 향하는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이날 버스는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 70여명을 태우고 서울로 출발했다.
작가, 만화가, 영화인, 정치인 동조단식
수군을 해산하라는 선조의 명령에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며 조선의 앞바다를 지킨 이순신 장군.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유민아빠를 살리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세워진 동조단식 천막이 마치 장군의 ‘12척 판옥선’인 것처럼 결연한 의지로 농성장을 지키고 서있다. 광화문 농성장에는 한국작가회의, 만화인, 영화인, 정치인, 전국 YMCA, 종교인 등이 천막을 설치하고 동조단식에 참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시민들의 단식 참여도 끊이지 않는다.
한 시민은 “나도 단식하려고 천안에서 왔어요. 도대체 집에 있으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단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며 울분을 토해내며 광장으로 들어선다. 자원봉사자가 동조 단식을 원하는 시민들을 상황실로 안내한다. 벌써 단식을 선언한 시민들이 2만명이 넘었다.
유가족 원하는 특별법을 만들어라
자원봉사자들은 시민이 지나가는 횡단보도 앞에서 ‘수사권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받고 있다. 동조단식 참가자들은 시민이 모이는 교차로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이순신 장군 뒤 세종대왕 동상 아래에는 매일 시국미사가 진행되는 천주교 농성장이 있고 지하철 입구 난간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짧은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전시중이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시민들의 몸짓이 이 광장에 모두 모였다. 마치 국민들의 강력한 염원이 진도 바닷속에 잠겨있는 세월호를 불러온 것 같다. 잃어버린 아이들과 그들이 못다 이룬 꿈이 그림으로 음악으로 눈물이 되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도 광화문 농성장에서 진행된다. 27일에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심리학자 370여명도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오후에는 전국지역아동센터 연합 소속 교사와 어린이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관광객도 서명에 참여, 세계적으로 높아진 관심
자원봉사자들의 주된 활동은 서명운동. 수사권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서명이 4백만을 넘었지만 정치권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 예초 목표한 천만 서명을 목표로 묵묵히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도로 가운데 위치한 광화문 광장. 신호등이 바뀌면 관광객과 시민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광장에 들어섰다가 반대편 횡단보도로 사라진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서명에 동참한다. 오후가 되자 수업을 마친 중 고등학생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교황방문 이후 외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설명을 들은 후 기꺼이 서명용지에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남겼다.
시민들의 반응도 뜨겁다. “단식하시던 유민아빠 건강은 어떠세요?” “서명은 얼마나 됐나요?” “언제쯤 특별법이 만들어 질까요?” “정말 우리나라 정부 너무 하네요”라며 한마디씩 거든다.
대문 앞까지 찾아가도 문전박대하는 청와대를 향해 시민들의 분노는 점점 뜨거워만 지는데 정부는 스스로 가라앉기만 바라고 있는지 묵묵부답이다. 벚꽃과 함께 우수수 떨어져 버린 아이들. 벌써 가을이 왔는데 이 세상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세월호 이전처럼 살수 없다’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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