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4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의 대거당선’은 앵그리맘들, 특히 4050주부들의 표심이 적극 반영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덧 세월호 사고가 90일이 지났다. 사회 전반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추진, 학생들의 도보행진 등 안전한 대한민국을 향한 움직임들이 일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번의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7.30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주부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그들의 삶은 세월호 사고 전후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수원 4050주부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권성미,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당연한 권리를 제대로 일깨워줬죠!
최유정(41·수학강사, 장안구 조원동, 자녀 초5)
안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가, 사고가 난 이후 정신이 번쩍 들면서 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든 행사들이나 주변 환경을 살펴보게 됐다. 아이에게 전화도 자주 하는 것은 물론 체험학습이라도 가면 학교에 차량회사는 어딘지, 선생님들은 몇 명이나 가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뭔가 미진한 부분에 대해선 개선을 요구할 때도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이 학부모가 학교에 갖는 당연한 권리인데, 그동안 잊고 있었다. 지금도 희생된 아이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눈물이 난다. 어른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켜야 할 것들을 한두 개라도 실행했다면 희생자가 덜 나오지 않았을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천만인 서명에도 일찍이 동참했다.
워낙 진보주의적이라 이번 일로 정치성향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교육감선거에서만큼은 무엇보다 후보의 병역필 여부나 전과기록을 꼼꼼히 살펴봤다. 기본적인 부분에서 모범이 되지 못한다면 교육정책도 믿고 맡길 수 없지 않나. 진보교육감의 당선에 기대감이 있긴 한데, 좋은 취지의 혁신학교가 이어지려면 제대로 된 입시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초등학교에선 통할지 몰라도 수능체제로 바뀌는 중고등학교 땐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과 교과과정의 개편 등 발전적인 혁신학교가 되길 기대한다.
사후대책에 대한 분노, 습관적이었던 정치적 성향이 바뀌다
윤경애(51·산모관리사, 권선구 구운동, 자녀 26세·24세·중3)
아이들의 삶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전에 대한 얘기를 늘 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해 더 많은 기도도 하게 됐다. 지금도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 피폐해진 유가족들의 생활을 보면 눈물이 나서 이겨내기가 힘들다. 큰딸이랑 안산분향소에도 다녀왔는데, 발을 딛는 순간 침울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엄습해오면서 그곳은 마치 대한민국 땅이 아닌 것 같더라.
사고 이후 국가의 대응이나 사후대책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평소엔 관심도 없고, 습관적이었던 투표성향도 바뀌었다. 진보교육감 지지 역시 경쟁시대 속에서 하나의 대안이랄 수 있는, 아이들이 서로 소통하며 함께하는 ‘혁신학교’가 보다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반영됐다. 하지만 무엇이든 빨리 잊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닌가, 재보선에서도 여당이 우위를 선점하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본다. 6.4지방선거 투표율과 같은 반응도 없을 것 같다. 난 요번에도 관심을 가지고, 실현가능한 공약인지부터 꼼꼼하게 따져보겠다.
교육마인드가 바뀌어야 보내고 싶은 혁신학교가 만들어진다
문광숙(40·주부, 팔달구 화서동, 자녀 초4·초1)
세월호 사고를 접한 후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이 ‘선장은 어디갔지’였다. 선장의 무책임한 태도와 이후 사고수습에 관한 여러 과정들을 접하면서 과연 나는 어른으로서 잘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됐다. 그런 가운데 이런 사건이 잊히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나도 무덤덤해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재난에 대비한 체계적인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이번 같은 사고가 잊히지도, 재현되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교육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진보에서 주창하는 혁신학교 역시 취지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나라 현실과는 잘 안 맞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와 맞지도 않고, 그러려면 입시 제도를 수정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교육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유럽의 어느 학교에선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맞춤교육이 이뤄진다고 하더라. 부럽기만 한 얘기다. 그래서 아직까진 우리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다. 우선 아이에게 혁신학교가 필요한지, 잘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보선 선거엔 물론 참여할 것이다. 어떤 후보든 상관없이 실현가능한 공약인지를 보고 선택하겠다.
관료주의나 성과중심이 아닌 사람중심의 사회시스템 필요해
서주애(43·주부, 장안구 송죽동, 자녀 고1·중3)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를 믿지 못하는 마음에 스스로 지켜야 할 것 같고, 어디를 다닐 때마다 안전한가 하는 의심부터 든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고 삶을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가도 생각하게 됐다. 단원고 학생들이 수몰당한 상황에서 그런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서명을 받다보면 왜 자꾸만 얘기하느냐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제대로 원인을 밝히지 않고 잊힌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사고를 당할 수 있지 않을까? 관료주의나 성과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사회시스템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단체장 선거는 개인적으로는 여야의 차별을 못 느낀 선거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보여준 야당의 모습에서 당선된 야당 정치인도 그리 신뢰할 수 없었다. 그것이 변화를 바라지만, 막상 선거에서는 아주 오랜 관습인 정치 무관심을 버리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정치인들을 바꿔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안타깝다.
그래도 진보교육감 당선은 세월호 참사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이들을 마음 놓고 학교에 보낼 수 없는 분위기, 무너진 공교육 등에 대한 부모들의 문제의식이 반영됐다고 본다. 개선을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을 진보교육감들이 잘 읽었으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에 살기 위해서는 나부터 바로 서야 한다고 느껴
김선미(44·주부, 영통구 이의동, 자녀 대1·고2)
이번 일은 사회전반에 넘치는 안전 불감증을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생각이다. 운전 중 속도나 신호 위반 등 나도 내 편의를 위해 기본을 무시한 행동들을 많이 했다. 우리 아이들이 보다 안전한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나부터 바로 서야 할 것 같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처음보다는 세월호 참사가 잊혀 지기도 한다. 하지만 뉴스를 보거나, 꽃다운 학생들의 사연을 하나씩 접하다 보면 울컥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염려해서인지 덮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홍보물을 유심히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작더라도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본 것이 이번 선거에서의 큰 변화였다. 당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정직하고 청렴한 인물들을 선택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보궐선거에는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많은 지역에서 보궐선거가 있는 것을 보고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나 보수냐를 굳이 따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누려야 하는 교육 환경이나 질을 높이는 것에 앞장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보수 성향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교육자는 정치적 성향을 띠기보다는 교육자로 남기를 원한다.
무관심에서 벗어나 작은 행동이라도 할 수 있기 바라
문정희(46·주부, 영통구 영통동, 자녀 고1·초6)
보다 공정하게 보도가 된다고 생각되는 언론이나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게 됐다. 세월호 관련 국정조사, 특별법 제정 등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에서는 분노를 느낀다. 젊었을 때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에 공분하곤 했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무뎌지고 무관심해졌다. 이번 참사 이후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전에는 남편, 아이들과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무관심에서 벗어나 필요한 행동이 있다면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은 학부모들의 염원이 많은 진보 교육감을 당선시켰다고 본다. 또한 일반고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작용한 것 같다. 일일이 공약이나 성향을 보고 결정한 것은 아니라도, 적어도 진보교육감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 몇 명의 힘으로 많은 교육정책들이 바뀌기는 힘들 것이다. 변화에 힘을 실어 줄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세월호 이후 여당뿐만 아니라 전 정치권에 대한 신뢰감이 더 옅어졌다. 하지만 선거 등에서 내 의사를 표시해, 사회가 바뀌는데 조그마한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은 강해졌다. 보궐선거도 꼭 참여해 뜻을 전할 것이다. 선거에서 인물을 잘 선택해 그들이 정치권에서 자리를 굳건히 한다면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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