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살아 움직이는 책이다. 그들의 지혜는 기나긴 세월 속에서 경험으로 다져졌기에 단순하면서도 단단하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노인의 지혜를 구하려 들지 않는다. 늙으나 젊으나 더 어리게 보이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세대 간의 단절과 불통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파주문화원(관장 우관제)에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찾아가 보았다. 노년 세대가 어린이들에게 파주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파주이야기’ 프로그램이다.
우리고장 옛이야기 들려주는 할머니
파주문화원은 파주의 전통문화 보존계승에 힘을 기울여 왔다. 파주 향토사 연구와 유적답사, 문화강좌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파주이야기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올해에는 교육청의 프로그램과 접목해 신청학교로 파견을 나가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도마산초 문산초 등 관내 9개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 교실에 주 1회 방문해 파주의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옛이야기 강사진은 유진경, 윤영자, 이희복, 박복례씨 등 4명이다. 이들은 어진할머니, 사랑할머니, 예쁜할머니, 행복할머니라는 다정한 별칭을 지어 손자 손녀 같은 어린이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파주3현부터 전통노래까지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파주인물설화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전통 놀이와 노래다.
파주인물설화로는 율곡이이, 방촌황희, 묵재윤관을 비롯해 파주와 관련 있는 훌륭한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 이야기와 죽어가며 시를 남긴 성삼문 이야기, 하늘이 낸 효자 이숙 이야기 등을 통해 아이들은 파주땅을 먼저 살다 간 이들의 생활과 지혜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 된다.
오래 전 임꺽정이 뛰어다니던 감악산 이야기를 들으며 아파트 숲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시공간을 뛰어 넘는 상상력을 키운다.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는 은혜 갚은 구렁이, 노래하는 망태기, 수탉과 할머니 등을 들려준다. 알아도 좋고 모르면 더 재밌는 옛 이야기를 할머니의 구수한 말솜씨로 들으니 아이들은 할머니들이 학교에 올 때마다 신이 난다.
전통노래와 놀이로는 대문놀이, 달 뽑기, 실타래 뽑기, 시리동동거미동동 등을 배운다. 민들레꽃 할미꽃 등 우리 산과 들에서 피어나는 꽃노래와 손 유희도 배운다.
재미난 이야기에 귀 쫑긋
리포터가 찾아간 날 이야기할머니들은 방울꽃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무슨 놀이를 할까?”
“여기 개구리도 나오네. 깊은 산 연못 속에 개구리 이 노래를 해봅시다.”
“우리 어릴 때 이 거리 저 거리 각거리 하고 놀았잖아.”
교사 출신들이 있어서일까.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서로에게 알려주며 오순도순 그러나 알차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2명씩 짝을 지어 학교에 나간다. 이야기 들려주는 대상은 3,4학년 어린이들이다. 점심 먹고 한참 졸릴 시간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다는 것은 아이에 따라서 지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가진 힘 때문일까. 시간이 지나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아이들도 하나 둘 앞으로 다가온단다.
“수탉과 할머니 이야기 들려줄 때 푸드득푸드득 하는 게 있는데 함께 하자고 하니 다 같이 손동작을 해요. 45명이 같이 하는데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 했어요.” (사랑할머니 윤영자씨)
이야기 들려주며 할머니도 배워요
재미를 느끼게 하면서도 빠트리지 않는 것은 파주에 관한 사랑과 자부심이다.
“파주3현인 율곡이이, 방촌황희, 묵재윤관장군을 늘 강조해요. 3학년 교과서에도 우리 고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대표적인 파주 위인들을 강조하면서 우리 친구들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해요.” (어진할머니 유진경씨)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날마다 듣는 파주3현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은 잘 기억한다.
“주의산만하게 굴고 말도 잘 못하던 아이가 마침 파평윤씨였어요. 파평윤씨는 양반 가문이라 의젓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고 얘기해주니 그 다음부터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예쁜할머니 이희복씨)
아이들만 달라지는 건 아니다. 강사진도 날이 갈수록 파주에 대한 사랑이 자란다고 고백했다. 파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새록새록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도 스스로 배워요. 파주 사는 걸 자랑삼고 긍지로 여기게 돼요.” (행복할머니 박복례씨)
파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할머니에게서 어린이들에게 물 흐르듯 전해지고 있다. 파주문화원으로 전화를 걸어 할머니 언제 오냐고 물어보는 아이, 이야기 들려주고 나면 고맙다고 쪽지를 써서 슬며시 손에 쥐어주는 아이들도 있다.
만나면 알게 되고 친해지면 정이 든다. 파주문화원의 이야기할머니들 덕분에 파주지역에서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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