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잠잘 때마다 유독 꿈을 많이 꿨는데 잠에서 깨면 모든 걸 생생하게 기억해 냈어요. 나중에는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망을 꿈에서 이뤄보는 자각몽까지 꿀 수 있을 만큼요.” 꿈 일기까지 꼬박꼬박 쓸만큼 무의식 세계에 관심이 많아 이 분야 책도 골고루 읽었다는 백상민양의 장래 희망은 ‘뇌과학자’. 중학교 시절부터 변함이 없다.
꿈 연구하는 뇌과학자가 목표
백양이 또래보다 일찍 장래 목표를 세울 수 있었던 건 딸의 진로를 어릴 때부터 세심하게 신경 쓴 부모님의 관심 덕분이기도 하다.
“유치원 시절, 오송바이오엑스포에 놀러갔다가 입안 상피세포에서 DNA를 추출하는 실험을 재미나게 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해요. 그 뒤로 엄마는 복제양 돌리나 복제 개 스누피, 인간 게놈프로젝트 같은 생명공학 기사를 모았다가 열심히 설명해 주셨지요.”
고교 입학한 뒤부터는 과학 캠프나 동아리를 열성적으로 쫓아다녔다. “뇌과학은 신생학문인데다 분야가 방대해 생명공학, 의학, 심리학, 컴퓨터공학과 긴밀히 연결돼 있어요.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택해야 할지, 내 관심 분야와 적성과 잘 맞을지 고민이 컸기 때문에 대학에서 진행하는 캠프에 여러 차례 참여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똑똑한 또래 아이들을 캠프에 만나며 자극도 많이 됐다. 공대캠프에서는 팀워크를 다지며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방법론을 배웠고 미생물 배양, 효소 실험을 하는 농생과학캠프에서는 대학 연구실의 고급 실험기자재를 맘껏 써보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과학동아리에서 대학 수준의 실험 맘껏 해봐
학교 화학동아리 활동도 2년 내내 발 벗고 뛰어들었다. “대학 전공 수준의 실험을 맘껏 해볼 수 있었어요. 특히 동아리 지도를 맡은 현종오 선생님의 치밀함, 꼼꼼함, 열정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 과제를 던져주었지요.”
매주 한 차례 방과후에 진행된 화학실험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끝장 실험’을 무수히 반복해야만 했다. “농도 실험을 할 때는 아무리 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조작의 유혹’까지 느꼈어요(웃음). 그래도 다들 꾹 참았고 나중에는 오기가 나서 실험에 달라붙었지요. 실험을 끝마치고 별 보고 집에 온 날도 많았어요.”
2년 내내 꿈을 향한 노력, 고생담, 동아리 부원들끼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화학실험노트는 그의 보물 1호다.
실험보고서 쓰는 법조차 몰랐던 왕초보가 다양한 자료를 찾아 정확히 실험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고 더 나아가 실험의 의미와 시사점까지 찾아낼 만큼 그는 한 뼘씩 천천히 성장해 나갔다. “선생님이 보고서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으며 오류를 지적해주셨어요. 잘한 부분은 칭찬을 곁들여 첨삭도 해주셨고요. 내용이 함량 미달이면 가차 없이 다시 써오라고 하셨죠. 시험기간 중에도 실험에 매달려야 할 만큼 우리를 엄하게 조련하셨어요. 덕분에 각종 기자재 다루는 법부터 실험 설계하고 여럿이 토론해 결과를 도출하는 데 도사가 됐지요.”
과학실험에 맛을 들인 뒤로는 교내 탐구 대회에 출품할 연구 과제를 붙들고 친구와 1년 넘게 씨름하기도 했다.
한 편의 소논문을 완성하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내 테마를 결정짓고 목차 구성한 다음 실험을 통해 원하는 결과물을 이끌어내기까지 많은 공력을 쏟아 부었다.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논문을 끝까지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커요. 시간과의 싸움이었지만 끈기를 배웠지요. 덕분에 상도 받았고요.”
조용하고 꼼꼼한 성격의 백양은 남 앞에 서는 걸 꺼린다. 그런 그가 2학년 때 동아리 단장을 맡은 건 ‘또 다른 백상민’으로 확장해 나가기 위한 대단한 결심이었다. “단장에 뽑혔을 때 말 못할 스트레스에 시달렸어요. 사실 우리 동아리에는 똑똑한 친구들이 많다보니 ‘과연 내가 리더가 돼 아이들을 잘 이끌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컸고 자신감도 부족했죠. 그런데 일단 부딪혀 보니까 부원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줬고 일도 착착 진행되더군요. 속 끓이며 고민만 하기 보다는 일단 해보는 ‘용기’를 배웠습니다.”
공부와 과학실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비결은?
이처럼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으면서도 그는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촘촘한 시간 관리와 집중력. “잠도 많은 편이고 공부와 실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니까 하루를 알뜰하게 쓰는 요령을 자연스럽게 터득했어요. 내 경험상 시간이 많다고 공부를 많이 하는 건 아니더군요. 쉬는 시간에는 수학 문제 풀고, 내신 시험은 큰소리 내서 외우는 게 효과적이니까 집에서 공부하고 평상시에는 학교 자습실 활용하는 등 내 나름의 ‘공부 최적화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뚜렷한 목표 덕분에 감정의 질곡이 심한 고3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며 웃는 그는 훗날 뇌과학 연구와 영화를 접목해 보고 싶다며 다부지게 말한다. “사람이 꿈을 꿀 때의 뇌 상태를 연구해 영화 속 한 장면을 가상현실처럼 꿈에서 느껴보는 ‘5D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꿈에서 꿈으로 이어지는 기발한 스토리 구조의 영화 ‘인셉션’처럼요.” 꿈을 좋아하는 여고생의 꿈같은 꿈이 기발하게 다가왔다.
오미정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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