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석상에서 발표를 해야 될 경우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발표 준비를 해보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은 없어지고, 불안해진다. 사석에서 말할 때는 그리도 잘하던 스피치가 왜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필자는 그 원인이 아마도 생지식을 나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철저히 남의 것만 가지고 이론적으로, 혹은 학술적으로, 혹은 교과서 나열식으로 풀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감정, 느낌, 소감, 소신과 주장, 체험 등이다. 따라서 이론적 배경에 나의 감정과 느낌, 소감, 소신과 주장, 체험담 등을 적당히 섞어서 넉살좋게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스토리텔링화’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란 남의 것(책이나 강의에서 보고 배운 지식과 정보 등)에 내 것(체험담이나 감정, 소신)을 섞어 말하는 것(self application)이다. 마치 해물탕집에서 해물을 먹고 나서 밥을 볶을 때 먹던 냄비에서 국물을 조금 부어 다른 후라이팬에 밥을 볶듯 남의 것과 내 것을 섞는 것이라 설명하고 싶다. 뜬구름 잡는 지당한 말씀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제시, 메시지의 현장감을 높인 것이 큰 설득력을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생지식만 가지고 생고생하지 말고 평소 나의 생각과 소신을 담은 체험담과 예화를 들어 말하라. 그러면 생기 있고 자연스런 스피치를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화를 들어라
탈무드에는 어떤 사고법을 단련시키기 위해 현실성이 부족한 원리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한 가지 예를 들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현실과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가설적인 질문이 있다고 하자. 만일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어린아이가 태어났다면, 이 아이를 한 사람으로 대우해야 하는가? 아니면 두 사람으로 대우해야 하는가?
여러분은 이 가설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탈무드의 답은 아주 명쾌하다.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다른 쪽 머리도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이고, 만일 다른 쪽 머리가 무표정하게 있으면 두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왜 랍비들은 설교를 할 때, 이와 같이 어려운 우화를 인용했을까? 그것은 사람들이 설교는 곧 잊기 쉽지만, 우화의 교훈은 오래도록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에는 의미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의미는 이론적 틀(logic)이라고도 말하는데 새로운 정보나 유익한 내용을 담아 말해야 듣는 사람이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분위기 메이커'' 이야기꾼이 되려면_
①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자.
②나만의 레퍼토리, 나만의 표현을 만들라.
③레퍼토리 마다 제목을 붙여서 이야기 서두에 말하라.
④의성어나 의태어를 활용해 장면을 충실히 묘사하라.
⑤청중이 왕이다 듣는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
⑥좋은 청중이 좋은 이야기꾼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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