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중학생들에게 들어본 학교 점심시간

금강산도 식후경, 공부도 ‘식후공이죠’

대다수 학생들 “함께 점심 먹는 친구들 정해져 있다”

지역내일 2014-06-12

어른들도 ‘오늘 점심은 누구랑 무엇을 먹지?’로 날마다 고민한다. 좋은 사람과 맘에 드는 점심식사를 기분 좋게 한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은 차이가 있다. 오후에 활력과 생기가 분명 다르다. 학생들은 과연 어떤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와 먹을까?’, ‘먹고 난 후의 황금 같은 자투리시간에 무엇을 할까?’로 고민을 한다.
그래서 리포터는 안산지역 중학생 50명에게 점심시간과 관련한 설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점심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메뉴를 좋아하고, 그리고 어떤 친구들과 밥을 먹는지 등에 대해.


인기메뉴는 갈비,치킨,돈까스 등 육류
일단 공부 안 하는 시간이라 아주 좋단다. 밥은 맛있고, 더구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심시간이 ‘학교에서 최고 즐거운 시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인기 있는 메뉴로는 갈비, 치킨 등 육류가 70%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비빔밥과 카레, 스파게티 순이었다. 먹기 싫어하는 메뉴는 개인마다 개성이 강하고 재미있다. 예를 들면 식은 국, 녹은 아이스크림, 치즈 없는 치즈돈가스, 불어터진 국수, 마늘종, 순두부, 버섯탕수육, 생선, 야채 등 너무 다양해서 통계를 내긴 어려웠다.
급식이 입에 맞지 않아 편의점으로 삼각김밥을 사먹으러 간다는 학생도 한명 있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현미밥을 싸오는 학생, 이를 교정하느라 죽을 준비해온다는 학생도 있었다. 역시 여러 사람의 입맛을 맞춰야 하는 단체급식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함께 밥먹는 친구 ‘절대 바꾸지 ‘않의리’. 의리죠’
‘함께 점심 먹는 친구들이 없다면?’ 이 질문에 바로 나오는 대답은 ‘소외감과 왕따’였다. 고개를 저으며 ‘그런 일은 상상도 하기 싫다’는 반응이었다.
친구들과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12명까지 어울려서 밥을 먹는데, 12명이 함께 앉을 수 없을 때는 서서라도 먹는다고 했다.
밥을 함께 먹는 친구가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답한 학생이 80%가 넘었다.
한 여학생은 ‘절대 바꾸지 않의리’라고 재치 있게 마음을 표현했다.
밥을 함께 먹는 친구들이 3년간 변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강하게 같은 친구를 고집했다.
1학년 때 3년 내내 점심시간을 함께 먹는 친구가 결정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밥을 함께 먹는 친구가 없는 학생들끼리 다시 뭉치기도 한단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친구들과 싸운 C양은 착한 친구들에게 “함께 밥 먹을 친구가 없어. 같이 먹어도 될까?”라고 부탁했다. 마침 5명이었던 친구들이 반겨줘서 고마웠다고 한다. C양은 “학교 식당은 의자가 6개씩 붙어있어 다행이었어요”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선생님과 함께 밥 먹는다
즐거운 점심시간을 위한 아이디어를 묻자, ‘노래방처럼 룸을 만들어 좋아하는 친구들과 선배들 눈치 안보고 먹는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 여학생은 “다 먹고도 수다를 떠느라 자리를 내 주지 않는 선배들이 미워요. 기다리고 있으면 ‘꼬나본다’고 화내고…”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메뉴를 고급스럽게, 최근 가요 틀어주기, 생일날 급식이벤트 등의 의견도 있었다.
20%에 가까운 학생들이 비슷한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 ‘선생님과 함께 밥을 먹고 싶다’였다. 살짝 부담스럽지 않을지 묻자 한 여학생은 “좋아하는 선생님과 밥을 먹으면 너무 좋지요. 그리고 편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서로 친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저희도 점심시간과 등하굣길에 이야기하고 친해지고 그래요. 근데 인기 없는 쌤들 걱정되네요”라고 말했다.
급식실에서 꼴불견인 친구를 묻는 질문에는 남의 반찬 빼앗아먹는 친구(30%). 새치기하는 친구(25%), 시끄러운 친구(20%), 흘리거나 튀기며 먹는 친구(20%), 그 외에 ‘짭짭’ 소리 내며 먹는 친구. 입에 든 음식을 보이며 말하는 친구 순이었다.


어른들이 변해야 아이들이 변해요
중학교에서 3년간 조리사로 일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한 A씨는 “건강에 좋은 콩밥을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또 “국수는 미리 삶아 놓아야 해서 맛이 떨어진다”며 “한번은 불어터진 국수를 아이들이 먹지 않아 거의 버린기도 했다”며 잔반이 많은 경우를 안타까워했다.
A씨는 ‘어른이 변해야 아이들이 변한다’며 아이들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어른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맛있게 먹어요”라고 상냥한 말과 함께 음식을 전하면,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학생들의 마음이 전해온다는 것이다.
A씨의 얘기다. “학교에서 눈밖에 난 남학생이 있었는데, 맛있는 반찬 더 달라고 급식도우미와 자주 실랑이를 해요. 큰 체격에 배가 더 고프지 싶어 자주 챙겨줬죠. ‘더 먹어라. 시험공부는 쫌 했어? 천천히 먹어’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졸업식날 조용히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단다. 아이들이 식사를 끝내고 빠질 무렵, 급식실 한 구석에 세워 둔 교탁 밑에 숨어서 밥을 먹는 여학생을 발견한 것이다. ‘부모는 알고 있을까?’ 걱정하며 지켜보았는데, 왕따를 당해본 선배 여학생이 점심시간마다 챙겨주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고 말했다.


일벌과 여왕벌은 똑같이 태어나지만, 처음 8일간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로열젤리만 먹으면 여왕벌로 1500일을 살고, 로열젤리는 이틀, 일반 꿀을 엿새 동안 먹은 일벌은 45일을 산다. 물론 사람은 다르겠지만 청소년기에 ‘무엇을, 어떤 분위기에서 먹는가? 어떤 마음으로 먹거리를 만들어 주는가?’에 따라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박향신 리포터 hyang30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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