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첫맛은 향긋했다. 곧 묵직하면서도 감미로운 맛이 입안을 감쳤다. 분명 술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약 냄새도 나지 않는데 보약 한 첩을 달여 마신 듯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깊고 그윽한 향 가득한 ‘수수리’를 그렇게 만났다.
수수리는 지난해 12월 23일 충남발전연구원이 개최한 ‘2013년도 충남전통주아카데미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박정련(66) 충남전통주연구회장이 만든 술이다.
“우리 전통주는 향기 색 맛까지 모두 조화롭지요. 세계 어떤 술도 우리 술처럼 오묘하고 다양한 감칠맛을 내지 못한답니다.”
박정련 회장은 전통주에 대한 칭찬을 침 마를 새 없이 늘어놓았다. 그가 말하는 전통주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쌀로 빚어 100일을 숙성시켜야 나오는 귀한 술 =
“수수리는 쌀 1말로 겨우 4L를 생산할 수 있어요. 수수리는 황희 정승이 즐겨 마셨다는 우리나라 5대 명주 중 하나인 ‘호산춘’을 응용해 만든 술입니다. 연이 얼마나 사람에게 좋습니까? 수수리에 백련 잎을 넣었더니 그 맛이 기가 막히지요.”
귀하디귀한 누룩 ‘향온국’을 이용해 밑술을 담그고 우리 쌀로 만든 덧술을 두 번 더 얹어 저온에서 무려 100일을 숙성시켜야 제대로 된 수수리가 탄생한다.
박정련 회장은 전통주 제조과정은 정성과 주변상황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온도 습도 햇빛 등에 따라 담근 술이 미세하게 맛이 다른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현재 대다수 유통되는 주류는 거의 다 일본에서 수입한 주정을 이용해 생산한 술”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만든 누룩과 우리 쌀로 빚어 자연스럽게 발효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전통주 제조기법이라는 것이다.
박 회장은 “술을 음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조상들은 술을 먹는다’고 표현하며 가장 좋은 옹기에 최상의 재료를 이용해 술을 만들었다. 제주(祭酒)로 사용하고 어른들이 자녀에게 주도를 가르칠 정도로 예와 격식을 갖춘 음식”이라며 “천연 미생물로 천천히 발효시킨 전통주는 빨리 깨고 머리가 아프지 않다. 이런 좋은 술을 놔두고 사람들은 공장에서 강제 숙성시켜 아스파탐 등 첨가물이 범벅된 화학주를 마신다. 더구나 현재의 술문화는 폭탄주니 뭐니 별의별 술을 마시고 취하기 급급하다”며 애석해했다.
또한 박 회장은 “이런 화학주에 좋은 약재를 섞는다 해도 진정한 약주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일제가 말살한 전통주 제조법, 복원하고 계승해야 =
* 박정련 회장이 만든 전통주, 충남전통주아카데미 품평회 최우수작 수수리.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술의 원료가 일본산인 것으로 문제는 그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 술 제조법을 말살하기 위해 펼친 악법들은 실로 심각하다”며 박 회장은 말을 이었다.
그는 “백제시대 ‘인번’이란 사람이 일본에 건너가 술 제조법을 가르쳤다. 일본에선 당시 ‘수수보리’라고 불리며 주신으로 인정받았으나 인번의 술 제조법에 고개를 조아렸던 일본은 ‘한국이 뿌리’라는 사실이 싫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우리 술 제조를 금했으며 밀주단속을 더욱 심하게 했다. 할 수 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필요한 술을 급히 만들 수밖에 없었으며 점차 전통주 제조법이 자취를 감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수리도 이 수수보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본의 사케는 한 가지 균만 배양해서 만든다고 한다. 따라서 일정한 맛만 유지할 뿐 우리 몸에 좋은 유익균은 거의 없다. 반면 우리 전통주는 온갖 미생물이 살아서 천천히 발효되므로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미묘하고 다양하며 품격 있는 감칠맛이 난다고 박 회장은 강조했다.
“맛을 안 봤기 때문에 모르는 거예요. 로얄살루트, 발렌타인 등 물 건너온 양주보다 더 좋은 술이 우리 전통주입니다. 세계인이 우리 술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러 한국에 오고 있어요. 이제는 우리가 그 가치를 깨닫고 세상에 알려야 하지 않겠어요? 전통주를 제대로 배우고 계승하는 것은 독립운동과 마찬가지로 우리 것을 되찾는 운동입니다.”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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