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선생님 - 파주지산초등학교 한광일 교사

동시 쓰는 키다리 선생님

지역내일 2014-04-14

파주지산초등학교(교장 강수원)에는 동시를 쓰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푸른출판사에서 선정하는 12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한 한광일 교사입니다. 2007년 문예사조를 통해 수필로 등단했고 2009년 창주문학상에 동시가 당선됐습니다.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등 꾸준히 작업하고 있는 교사 시인입니다. 봄바람에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날, 지산초등학교를 찾아가 동시 쓰는 키다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동시 읽는 즐거운 교실

2학년 1반 교실을 찾았을 때는 아이들과 한광일(50) 교사가 동시를 공부하는 날이었다. 교과서에 실린 『비 오는 날은 정말 좋아』(최은규 글, 백희나 그림)이 오늘의 작품이다.
“우리 이 동시를 어떻게 읽어보면 좋을까요?”
“선생님, 한 줄은 남자들이 읽고요 다음에 여자들이 읽어요!”
“다음엔 선생님이랑 저희랑 나눠서 읽어요!”
이제 갓 1학년 티를 벗은 어린 아이들은 그저 명랑해 보였다. 한광일 교사는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시를 읽었다. 교단에서 흔히 보기 힘든 남자 교사이기도 하지만 큰 키 때문에 더욱 키다리아저씨처럼 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편안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시를 해부하고 분석할 대상이 아닌 그저 시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을 지산초 아이들은 듬뿍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좋은 동시 강요보다 다양하게 보여주고파
한광일 교사는 시를 시로 읽지 못하는 우리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교실에서 시를 다룰 때 되도록 많은 시를 펼쳐 보여주려고 한다. 그 자신 성장 과정에서 보다 많은 시를 접해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랄 때 다양한 시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실에서 동시를 배울 기회가 있으면 여러 편을 보여줘요. 많은 동시를 펼쳐서 보여주고 가끔은 제 것도 꺼내서 보여줘요.”
가르치기보다는 많이 보여주고 아이들 스스로 자기 감성에 맞는 시를 발견하게 하는 것, 동시인 한광일 교사의 시 공부법이다.
‘이것이 좋은 작품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최대한 다양하게 접하게 해준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가르치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 한광일 교사의 교육관이다.
“1987년 강원도 동해시로 첫 발령을 받았죠. 교실에서 눈만 돌리면 바다였어요. 눈 돌릴 때마다 바다 색깔이 변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랑 생활하는 게 가장 재밌으니까 열심히 선생님하고 열심히 놀았어요.”
아름다운 동해 바다를 보며 눈 까만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살면서 한광일 교사는 ‘이것이 교육이냐 아니냐’ 동료 교사들과 치열하게 토론했다. 나름의 교육관을 세우는 데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진짜 교육인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그냥 아이들이 가진 것. 아이들이 뭘 잘하는지 발견하고 북돋워 주는 것. 그런 게 가르침이 아닌가 싶어요.”
처음에는 자신이 가진 걸 다 주고 쏟고 그대로 전해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얼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잘하는지 발견하고 키워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린 시인들 키우며 동시 쓰는 선생님

아이들의 감성을 제각각 살리고 흥미롭게 시를 만나는 방법으로 한광일 교사는 ‘패러디 동시 쓰기’를 하고 있다. 기존의 시어를 자신의 말로 바꾸는 패러디 동시는 동시쓰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도구였다. 패러디 동시 쓰기를 통해 작가의 자질을 발견한 제자도 있었다.
한광일 교사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도록 돕는 교사이면서, 다채로운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시 속에 담는 시인이기도 하다.
“아이들 자체가 시의 요소예요. 아이들한테서 자꾸 찾으려고 하죠. 귀여운 행동에서도 찾고 까불까불하는 아이다운 모습에서도 찾고. 그냥 아이들한테서 건져내려고 해요.”
그저 그대로 있는 것이 자연이라고 했던가. 한광일 교사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살리는 선생님이면서 그 모습을 다시 원고지로 옮기는 시인으로 산다. 자연스럽게.
때로는 교사와 동시인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하지만, 왼발 오른발 두발로 걷듯 균형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는 한광일 교사. 이제는 자라 학부모가 된 제자가 찾아올 만큼 오랜 세월 교단에서 보냈지만 마음은 여전히 윤동주의 시를 읽던 문학 소년이다.
올해 말 즈음이면 그의 시집이 나온다. 반짝 반짝 빛나는 동해바다부터 푸른 파주 하늘까지 다 담고 있을 한광일 동시인 교사의 첫 시집이 사뭇 기대된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지렁이


한광일


소나기 온 뒤길가 여기저기
도막 고무줄


꼼지락 꼼지락
생고무줄


여자애들
학교 길에
비명소리 따라
길어졌다 짧아졌다
빨간 고무줄


그것도 생명이다
할머니 말씀 생각나
팔뚝마다 소름이
좁쌀같이 돋아나도
밟을까 다칠까
조심조심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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