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모두가 마미캅, 산처럼 든든한 어머니들
힐링을 위해 찾은 발걸음이 누군가에게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파주 심학초등학교(교장 황춘기) 이야기다. 아름다운 산과 너른 들판사이 아담하게 자리 잡은 60년 역사의 심학초등학교.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붐처럼 번진 둘레길 걷기 열풍으로 외부 차량들이 몰려들면서 학생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어머니폴리스 ‘마미캅’에 모든 가정이 참여하는 심학초등학교를 학부모열전 지면에 소개한다.
작지만 알찬 자연 속 학교
심학산 둘레길 들머리에 있는 심학초등학교에는 도심 속 학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멋이 있다. 한 학년에 한 학급, 전교생 140여 명의 심학초등학교 아이들은 사시사철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다.
“전체 학년이 다 같이 줄넘기를 돌리고 놀아요. 애들이 돌리고 있으면 아무나 끼어들어서 노는 학교예요.” (학부모 정희정 씨)
심학산을 근거지로 한 생태교육, 작은 학교의 장점을 백분 살린 국제 교류 교육, 표현력과 창의력을 북돋워주는 교육 등 프로그램도 학부모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자연 속 작은 학교를 찾아 일부러 전입을 올 만큼 심학초등학교는 인근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학교하면 산이 떠오르고 그 앞에 아름다운 운동장, 커다란 나무 밑에 아이들이 노는 풍경이 그려질 것 같아요. 한 학급에 다 아는 동네친구들이 학교를 같이 다니는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학부모 소미자 씨)
등하굣길 차량안전문제 심각해
심학초등학교에 아쉬운 점이 있으니 바로 등하굣길 문제다. 학교와 주거지가 멀어 전교생이 차량으로 등하교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불어난 등산객들로 학교 입구 길은 늘 붐빈다. 특히 봄가을이 절정이다. 정문 앞에 주차해놓고 산에 올라가 버리는 등산객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른 일도 있었다.
보다 못한 학부모들이 2009년부터 교통 지도 봉사를 시작했다. 2011년에는 학교 근처에 식당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덩달아 취객도 늘어났고 학부모들은 교통봉사 활동을 40분에서 3시간으로 늘렸다. 학교 앞 길 차량 정리, 학생들 하교 지도, 학교 순찰 등을 했다.
20여 명의 학부모들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등하굣길을 지키는 모습을 본 다른 학부모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어머니폴리스 ‘마미캅’은 점점 늘어나 학부모 전체가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3년 걸려 세운 가드레일
2012년에는 3시간씩 전교 학부모가 마미캅 활동을 하는 점을 인정받아 파주경찰서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 앞 도로가 정비되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였다.
가드레일도 인도도 없는 시멘트 길, 외부 차량이 수시로 드나드는 등하굣길은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민원을 제기해도 돌아오는 것은 ‘사유지라서 어렵다’는 말 뿐. 그나마 2012년에는 파주시청에 적극 건의해 학교 앞 길에 인도를 구분하는 가드레일 봉을 세우게 됐다. 전교 학부모들이 시위까지 감행하며 3년 동안 애써 얻은 결과였다.
남은 것은 또 있다. 학부모들이 안전한 등하굣길을 위해 함께 애쓰는 시간 동안 학부모들 끼리, 또 교사와 학부모 사이 유대관계가 더욱 깊어진 것이다. 돈독해진 어머니들은 연말 학예회 행사에서 합창단을 꾸려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황춘기 교장은 “학부모님들이 두 분 씩 하루도 빠짐없이 일학년이 하교하는 열두시 반부터 방과 후 학생들이 하교하는 4시 이후까지 지도를 잘 해주신다. 덕분에 교사들은 ‘바깥은 학부모님들이 지켜주신다’는 마음으로 든든하게 교내 활동에 매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화를 원한다면 내가 해야 한다는 깨달음
심학초 학부모들의 바람은 다른 게 아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안전하게 자라,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돌아보는 일이다. 학부모들은 힘들어도 마미캅 활동은 계속 할 거라고 말했다.
“학교 분위기는 달라질 수도 있어요. 변하지 않는 건 자연 속에 있는 학교의 이 느낌이죠. 그리고 마미캅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학부모 윤선라 씨)
작은 학교라 얻는 장점만큼 번거롭고 희생해야 하는 일들도 많다. 하지만 학교 곳곳을 둘러보고, 운동장에서 마지막까지 노는 아이들을 챙겨 집에 보내고, 내 아이를 남의 집에 부탁하면서 애정은 새록새록 커져갔다. 복닥거리는 세월 속에서 무엇은 얻고 다른 것은 잃으며 부모들은 성장했다.
“학부모가 참여해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어요. 뒤에서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내가 원한다면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학부모 김나영 씨)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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