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자연스럽게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같은 대과학자를 동경하고 같은 길을 꿈꾸기 마련이다. 임형묵군도 마찬가지다. 공부가 뜻대로 되지 않던 중2. 질풍노도의 시기에 지독한 공부 슬럼프까지 겪으며 반항아의 기질을 내비치는 아들을 붙들고 아버지가 질문을 던졌다. “일생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살면 보람되겠느냐?”고.
왜 물리학에 끌리는 지 역추적
“천체물리학자가 불현 듯 떠올랐어요. 이유요? 그냥 멋져보였으니까요(웃음).” 사춘기 소년은 치기 섞인 답변을 내뱉고 나니까 물리학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어릴 때부터 공놀이 보다는 책 읽기를 더 편해 했던 그는 평소 습관대로 서점에 가서 물리학 책을 집어 들었다.
쉽게 풀어 쓴 물리 교양서를 탐독하고 고교 물리 참고서를 꼼꼼히 훑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몇 시간이고 붙들고 늘어지면서 자신만의 ‘물리학 퍼즐’을 맞춰나갔다. 그러다 고1 담임을 맡은 권영부 교사를 만나며 ‘꿈 지지자’를 얻게 된다.
“부모님은 순수과학은 사회에서 쓰임새가 적다며 못마땅해 하셨어요. 내심 응용학문으로 선회하길 원하셨죠.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내 꿈을 지지해 주셨죠.” 물리학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한줄 씩 써내려간 임 군의 독후감을 담임은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한 줄 한 줄 행간의 의미와 제자의 지적 성장과 변화의 추이를 살폈다.
“물리학 하나만 파고들기 보다는 물리의 원리를 사회 현상, 더 나아가 미지의 세계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어요. 그러다 보니 철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고요.” 방학 틈틈이 서울대 평생교육원의 철학 교양강좌를 수강하며 호기심을 채웠고 학교 인문사회 영재반에도 들어갔다.
이과생이 인문사회수업 신청
“20명 학생 가운데 유일한 이과생이라 수학과학 영재반 대신 문과 영역에 지원한 걸 놓고 학교 친구들 사이에 입방아에도 올랐어요. 하지만 난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에 신청한 거고 진짜로 재미있었어요.” 프로그램은 활기찬 토론 수업과 현장 견학으로 짜임새 있게 진행됐다.
특히 게임을 학문으로 연구하는 서울대 융합기술원 견학은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현장 탐방 뒤 각자의 느낀 점을 선생님,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배움이 훨씬 풍성해 졌어요.”
‘샌님’ 같던 그는 영재반 프로그램을 통해 난생 처음 학교 축제 무대에도 서보고 교내 TED 강연회에서 논문 발표까지 했다. “난생 처음 써보는 논문이라 애를 많이 먹었고 심사를 맡은 서울대 교수님에게 신랄한 지적도 받았지만 완성된 논문을 손에 쥐니까 뿌듯했죠. 게다가 총 5팀 가운데 우리 팀이 1등을 했고요.”
자신의 진로라 분명해 지자 내친 김에 과학거점학교인 문정고에서 진행하는 물리수업까지 신청해 들었다. 다양한 과학 실험을 직접 해보며 대학 1학년 수준까지 미리 공부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아예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과학 실험 동아리까지 만들어 활동했다.
“고1,2 시절은 나선형 진로 탐색의 과정이었죠. 한 바퀴 돌아 원점인 듯 싶지만 한 발자국 발전하는... 지식도 경험도 얕은 고교 시절에 꿈을 확정짓기 보다는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두루 탐색해 보고 싶었죠. 물리학을 향한 애정은 변함없지만 공부한 뒤 무엇을 할지는 대학생이 된 뒤 더 고민해 볼 참입니다.”
진중한 성격의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이과생이지만 백일장, 독서논술경시대회 같은 교내 글쓰기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내 생각을 잘 표현한 진지한 글을 쓰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글쓰기 상에 애착이 많아요.”
‘여기까지 잘 왔다’ 스스로 격려
생각을 깊게 하고 원리를 파고드는 성향은 공부 집중력을 높여줘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만의 국영수 공부법이 궁금했다.
“수학은 틀리면서 배워야 진짜 실력이 되요. 내가 선택한 답이 왜 틀렸는지 파고들며 오류를 잡아내니까 같은 실수를 줄일 수 있어요. 영어는 한 문장 한 문장 해석에 치중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흐름, 내용의 요지를 빨리 파악하는 훈련을 해야 되요. 단어공부는 멈추면 안되고요. 국어는 교과서를 달달 외운 다음 수능 스타일의 사고력을 키우는데 주력합니다. 내 경험상 내신 대비도 수능처럼 포괄적으로 공부하는 게 나중에 도움이 되더군요.”
학교 수업을 마친 후 독서실이나 도서관이 아닌 집에서 공부하는 게 오랜 습관이다. 저녁 6시쯤 귀가해 새벽 1시까지 책상 앞을 붙박이로 지킨다.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도 딱 끊었다. “나 스스로에게 ‘여기까지 잘 왔다’고 늘 격려해요. 미래에 조바심 내지도 지난 일에 속상해 하지도 말라고. 고3은 수능에만 올인하면 되니까 남은 8개월도 지금처럼 보내려고 해요.” 또박또박 말하는 임군에게서는 마인드 컨트롤에 농한 ‘고3 어른’의 다부짐이 물씬 풍겼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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