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에 얽힌 뿌리 찾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난 호에서 언급하였다면 이번호에서는 그 필요성이 얼마나 긴급한지를 말해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수한 토목 건설 장비의 출현으로 도로 건설과 농공단지 및 택지 조성, 경지 정리 등으로 급격하게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조상들의 피와 땀이 서린 유서 깊은 생활 터전이 하루아침에 파헤쳐지고 변형되어 귀중한 지명들이 지명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변하거나 지명 자체가 소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수 천 년을 내려온 조상들의 얼과 정신은 물론 국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서도 지명에 대한 뿌리 찾기의 필요성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한자가 우리 땅에 전해진 후에 대대로 구전되어 오면서 정착된 지명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 혼란이 언어 변화의 과정을 남기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서는 음역과 의역을 선택해야 하고, 의역을 하자면 그 지명에 얽힌 어원을 알아야 하는데 구전되어 오는 것이라 지역 주민들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주민들마다 다르게 이야기하는 지명에 대한 전설, 지역의 이름을 미화하려는 가상의 의미, 소리에 따라 생각나는 개인 나름대로 유추하는 상상적 의미, 그리고 한자로 표기하는 사람의 개인적 취향에 의하여 지어낸 의미까지 한자로 의역할 때 지명 변화 요인이 된다.
그리고 지명은 글로 써서 문장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역을 구분 짓기 위하여 늘 불러야 하는 이름이므로 한자로 표기할 때 그 음을 그대로 살리는 음역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글은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으나 한자는 뜻글자이기에 음만 표기하더라도 어떤 의미를 가진 한자를 쓸 것인가 문제가 된다.
따라서 음역 또한 의역할 때와 같이 지명에 대한 구전되는 전설이나 어원, 그리고 가상적인 의미를 가미하여 표기하게 된다. 이러한 한자 음역의 특성에 따라 한자의 의미 속에 한자로 표기될 당시의 옛 지명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지명에 깃든 뿌리와 어원을 찾아내는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못 음역된 지명을 가지고 그 의미를 유추하여 오히려 엉뚱한 전설과 어원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지명을 연구하면서 조상들의 생각과 고민과 임기응변의 재치, 그리고 유머를 발견할 때는 조상들의 장난기 어린 얼굴을 떠올리며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옛 조상들이 쓰던 옛 언어를 재구성하고 선조들의 꿈과 희망, 생활에서 느끼는 일상적인 생각들이 있는 그대로 녹아 있는 지명의 어원과 뿌리를 찾는 일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며 가슴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청주남중학교
이상준 교장
지명연구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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