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不憤不啓(불분불계)라는 말이 있다. 몰라서 성내지 않으면 길을 터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르는 걸 가지고 분을 낼 정도가 되어야 깨달음이 있다는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정보와 지식이 소수 지배계층의 제한적 전유물이었던 공자가 살던 시대만의 문제일까? 정보와 지식이 언제든 내 손안에서 접속 가능한 상태를 누리는 오늘의 일상에서도 절실히 통하는 얘기다.
한 학생이 선생인 나에게 수학문제집을 쓰윽 밀며 물어본다. 이 문제 어떻게 풀어요? 강사 입장에선 제일먼저 학생의 눈과 표정을 보게 된다. 이 친구가 얼마나 고민하고 이 문제를 가져왔을까? 왜냐하면 그 문제를 이해시키는 방법과 기술이 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차리는 녀석부터 한참을 알려주어도 계속 내 목소리와 연습장 풀이만을 노리는(?) 녀석들까지 다양하다. 결과는 뻔하다. 지금 이해시켜도 나중에 또 모를 녀석들은 금방 티가 난다.
어떤 선생이 좋은 선생일까? 학생이 물으면 즉각 정답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있다. 또 빙빙 돌려가면서 물음이 또 다른 물음을 낳게 하면서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 선생님이 있다. 물음의 종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둘을 기계적으로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학습효과 측면에 있어서는 확실하다. 수학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금방 답지를 보거나 선생님의 즉답을 요구한다면 궁금증은 해결되지만, 다음에 비슷한 유형이 나오면 또 모르게 된다. 혼자서 낑낑대며 씨름하고 적어도 그 문제를 풀기위해 무얼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과 이해가 선행된다면 답을 찾는 방법을 얻게 되고 비슷한 문제나 그 이상의 문제도 풀 수 있게 되어 자신감까지 생기게 된다.
바둑을 다 두고 나서 다시 바둑돌을 되짚어보는 복기도 그런 원리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그 많은 경우의 수를 다 외웠을까 궁금해 했다. 한수 한수를 고민하고 집중해서 두니까 자연스레 그 많은 경우의 수가 외워진다는 것이다. 수학 공부도 이와 같다. 모든 풀이 단계를 억지로 기억하려 들지 말고, 왜 그렇게 식을 전개하고 도형을 그렸는지 이유를 생각하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요즘 들어 교육현장에서 “정보접근성의 편리함”이라는 괴물이 우리의 뇌가 학습하는 메커니즘을 망가뜨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한다. 구조대원이 물에 빠진 사람을 빨리 구조하지 않고 그 사람의 힘이 빠질 때를 기다려 구조하는 이치도 바로 그래서일까. 힘이 빠진다는 것은 자신의 오류와 잘못된 방법이 다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다 빠질 때 새롭고 발전된 정보와 학습체계가 우리 뇌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이여 모르는 것에 충분히 분(憤)을 내라. 그 분으로 충분한 학습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송파 이튼학원
수학 대표강사 황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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