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삶(先生)을 산 사람으로서 학생들 앞에서 폭포수 같은 지식을 쏟아내며 학생들을 리드하는 ‘카리스마형 교사’가 있는가 하며 울타리 역할을 하며 학생들이 갈지(之)자로 비틀거리더라도 스스로 고민하며 자기 삶의 엔진을 달 수 있도록 유도하며 기다려주는 ‘기획자형 교사’가 있다.
유동걸은 후자에 속한다. 학교 내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그림자 교사’라 겸손해 하지만 늘 성장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매일매일 치열하게 사는 중이다.
토론으로 ‘책, 글, 말’의 장점을 잇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토론교육 전문가인 그는 늘 힘주어 강조한다. ‘공부를 사랑하라’고. “공부(工夫)의 어원은 공부(功扶) 즉, 성공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돕는다는 의미죠. 중국말로는 ‘쿵푸’라고 합니다. 현란한 중국 무술로만 알았던 쿵푸란 단어에 공부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실마리가 있습니다. ‘머리’와 ‘몸’으로 하는 공부란 의미죠. 우리는 흔히 공부를 지식의 습득과 축적으로만 이해하는데 진정한 공부는 가슴과 발로 실천하는 온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입니다.”
공부의 토대를 마련하는 도구로 그가 선택한 것이 토론이다. “2000년 우연히 한 학생의 토론 지도를 맡게 돼 3박4일간 토론대회와 연수를 결합한 원탁토론아카데미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토론의 잠재성에 눈떴고 강치원 교수란 귀인을 만났습니다.”
입시를 넘어 인생의 나침반을 선물하고 싶은 ‘욕심’
‘책, 말, 글’의 장점을 한데 엮은 게 토론수업이란 생각에 무릎을 쳤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쏟아내면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받아 적고 달달 암기하는 일방향 수업에 갑갑증을 느꼈던 터라 그는 학생들이 주인공이 돼 스스로 고심하며 준비한 의견을 주고받는 쌍방향식 토론 수업에 매료됐다.
온갖 자료를 찾아 수업을 모델링하며 토론 수업의 싹을 틔웠다. 다양한 토론 기법을 교실에서 시도하고 정교하게 가다듬으며 ‘유동걸식 토론 교육’을 완성해 나갔다. “21세기 교실에서는 모든 걸 교사 1인이 다 가르쳐야 한다는 계몽사관의 권위를 내려놓고 ‘지식 기획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평소의 소신입니다. 이제는 소통이 교실에서 중요한 덕목이죠.”
책, 드라마, 영화, 온라인상의 이슈에 촉을 세우고 소재 거리를 세밀하게 찾아 토론 수업에 접목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으며 그가 토론 수업에 공을 들인 이유는 단 하나. 입시에만 연연해 살지 말고 스스로의 인생을 견고하게 설계해 줄 ‘공부의 힘’을 제자들에게 길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대로 낯선 스타일의 수업을 경험하면서 입시를 넘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경험한 학생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박소현 MBC아나운서도 그 중 한명이다.
“어릴 때부터 방송인이 되고 싶었지만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맸어요. 그러다 토론수업에 참여하면서 설득력 있게 말하는 법, 다른 사람과의 대화법 같은 토론의 ABC를 배우며 내 안의 잠재력을 조금씩 발견했죠. 유동걸 선생님 덕분에 지금 난 아나운서란 꿈을 이뤘습니다. 당시에는 입시 스펙을 위해 시작한 토론 공부였는데 인생의 멘토까지 만난 행운을 얻었죠.”
선생님을 가르치는 토론 교육 선생님
연세대 국문과를 다닌 20대 문청(文靑)은 졸업 후 곧바로 국어선생님이 돼 26년 째 교단을 지키고 있다. 88년부터 시작된 ‘선생님’ 유동걸은 늘 욕심과 호기심이 넘치는 탓에 인생 10년을 주기로 굵은 마디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늘 책이 자리 잡고 있다.
“2~30대 열혈교사 시절 학생들과 참 행복했습니다. 수많은 책을 함께 나눠 읽으며 이야기 나누고 글을 썼죠.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를 출간했을 당시에는 우리 집으로 작가를 초대해 학생들과 만남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제자들이 어느새 30대가 돼 출판사 대표로, 혁신학교 교사로 맹활약중이죠.”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유 교사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엿보인다.
2000년대 들어 그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외부 세계와 접속하며 시야와 경험치를 넓혔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토론 연수를 진행하고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토론 팁을 총정리한 <토론의 전사 1,2> 책을 펴냈다. 토론에 갈증을 느끼는 교사들을 위해 전국은 물론 해외 파견 한국어교사, 중국 조선족 교사들에게까지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힘을 쏟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평생 공부’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도 온갖 인문학 강의 쫓아다니고 책을 읽으며 쉼 없는 공부 수련을 계속 해나가는 중이다.
“공부를 안 하면 성장이 멈추고 삶이 답답해집니다. 얼마 전 학교 창의체험활동 시간에 학생들에게 인물 인터뷰를 주문했죠. 몇몇은 박원순 시장, 김진명 작가를 용케 만나고 와서는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다며 스스로 감격해 하더군요. 다들 한 뼘씩 성장한 거죠. ‘머리와 몸’으로 하는 공부, 제가 꼭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공부법입니다.” 최근 <공부를 사랑하라>는 책까지 출간한 머리 희끗한 50대 문청(文靑)은 나직하게 자신의 ‘큰 꿈’을 들려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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