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적성이 뭐지?”, “장래 무엇이 될까?”란 모범 답안이 없는 질문에 많은 청소년들이 명쾌한 답 내놓기를 주저한다. 이번 빛날인 주인공은 자신의 미래를 끈질기게 고민하고 극성스럽게 ‘진로 성숙도’를 높인 배상윤양. ‘숨은 달란트’를 찾아 어떻게 정성을 쏟으며 싹을 틔웠는지 솔직담백한 경험담을 들어보았다.
‘뇌 인지 과학’. 중학교 시절부터 배양의 머릿속에 늘 뱅뱅 도는 키워드란다. 그가 내민 스크랩북에는 뇌 과학과 관련된 신문과 잡지 기사들이 공들여 정리돼 있고 한켠에는 새로 알게 된 정보며 느낀 점들이 깨알같이 메모돼 있다.
우울증 앓던 친구 때문에 뇌에 관심
“우울증 때문에 세상과 담 쌓고 살던 친구가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받은 뒤부터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또 다른 친구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요. 이런 아픈 경험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치기어린 단발성 호기심으로 끝내지 않고 그는 뇌의 실체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다. 다큐멘터리 찾아보고 수시로 관련 책을 읽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때마침 서울대에서 국내 석학들이 총출동하는 뇌인지과학 학술대회가 열린다는 정보가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정신과전문의, 공학자, 인문학자가 다양한 관점에서 뇌를 논하더군요. 생소한 전문 용어 투성이었지만 내 식대로 뇌 과학의 퍼즐을 맞췄죠. 당시 중3인 내가 최연소 참가자였어요.”
뇌 과학이 궁금해 학술대회 쫓아다녀
지적 허기가 조금씩 채워지자 신바람이 났다. 그 뒤로 대학에서 여는 ‘뇌 인지 콘서트’ ‘뇌와 정신 건강’ ‘뇌로 보는 마음의 병’ ‘뇌의 미래’ 같은 관련 세미나를 억척스럽게 찾아다녔다. “뇌 과학은 역사가 30년도 안 되는 신생학문이에요.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루는 형이상학적이고 오묘한 뇌를 다방면의 연구로 객관화시키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호기심 많고 승부욕 강한 배양 특유의 기질은 어린 시절 책을 통해 다져졌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 부모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는 그는 ‘책벌레’ 소리를 들을 만큼 다양한 장르의 책을 끼고 살았다.
초등 6학년 때 강동교육청 영재교육원에 합격한 뒤로 중2 까지 수학, 과학 영재 교육을 받으며 재능을 키워나갔다. “현상을 분석하고 법칙을 찾아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흥미로웠어요. 관찰과 탐구가 나의 특기라는 걸 알게 됐죠. 모든 현상의 기저에 깔린 원리를 밝히고 결론을 도출해 내는 작업을 특히 좋아합니다.”
‘공부와 진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재미에 동분서주하던 그는 뜻하지 않는 벽에 부딪혔다. 한 친구와 오해가 쌓이면서 고교 입학 후 교묘한 왕따에 시달리게 됐다. 2년 전의 기억을 더듬는 그의 눈가가 지금도 촉촉이 젖어들 만큼 아픈 기억이며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그를 다독이며 일으켜 세운 건 과학 선생님. “선생님은 날 볼 때마다 활짝 웃으시며 ‘널 믿는다. 너는 할 수 있다’는 격려와 함께 좋아하는 과학을 열심히 공부해 우리나라의 이공계 인재로 자라라는 용기를 주셨어요. 멘토이자 은인인 셈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과의 오해는 아름다운 화해로 마무리 됐고 평온한 마음으로 공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여럿이서 과학탐구학술동아리를 새로 만들어 팀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때로는 협동을 통한 성취감을, 때로는 옥신각신하며 양보와 타협의 미덕을 깨우치며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우연히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주최하는 국제청소년학술대회를 알게 됐다. “뇌 과학 관련 논문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어요.” 팀을 꾸려 난상토론 끝에 연구 테마를 찾았다. 사람들이 흔히 마시는 커피와 녹차에서 힌트를 얻어 커피의 카페인과 녹차의 카테킨 성분이 생물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열대어를 가지고 실험에 돌입했다.
‘논문과 시험’ 두 마리 토끼 잡아보니...
온군데서 자료 찾아 분석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전문가 자문까지 받아가며 실험을 설계했다. 실험 결과를 세밀하게 분석해 보고서를 완성하기까지 고단한 단계를 억척스럽게 밟아나갔다. “기말고사와 겹쳐 애를 먹었어요. 시험과 논문 둘 다 놓치기 싫었죠. 학교에선 1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공부에 집중했고 집에서는 논문에 매달렸어요.” 힘겨운 이중생활을 독하게 마무리 한 덕분에 7:1의 경쟁률을 뚫고 논문의 공개 발표자로 뽑혔고 학교 시험에서는 최상위권 성적표를 받았다.
“거대한 산을 하나 넘은 느낌이랄까? 목표를 향해 모든 걸 쏟아 붓는 최초의 경험이었어요. ‘하면 된다’는 진리를 몸으로 배웠죠. 하루 2~3시간씩 자며 초인적으로 살았던 그때의 경험이 지금도 많은 힘이 됩니다.” 마음이 부쩍 자란 그는 마음을 다잡고 고3 생활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요즘 진로가 화두죠. 막연히 ‘의사가 될 거야’ ‘과학자가 될 거야’ 대신에 관심 분야 책 찾아 읽고 강연 쫓아다니며 ‘나의 길’이 맞는 지 조율하고 그 분야를 세밀하게 살피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후배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며 힘주어 강조한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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