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도 수많은 아이들이 미술학원으로 향한다. 누구나 그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혹은 다른 아이들만큼 그려내기 위해. 하지만 아무리 그럴싸한 작품이라도 그 안에 내 아이만의 생각, 내 아이만의 느낌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그것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과 다를 바 없다. 남과 다른 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느낌, 자신만의 표현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술활동을 위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다. 함께 보고 함께 느끼고 함께 표현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 그리고 여기 이를 위해 모인 엄마들이 있다. 명화를 함께 감상하며,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미술놀이를 직접 경험해보는 엄마들의 모임. 나만의 생각과 나만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이 행복한 시간임을 깨달아간다는 엄마들을 소개한다.
명화, 아는 만큼 보인다.
매주 목요일, 가방 속 무거운 명화집 몇 권씩을 들고 엄마들이 모여든다. 시대별로 화가를 선정해 그가 살았던 시대와 명화를 함께 공부하는 엄마들의 모임. 오늘은 ‘빛과 어둠의 화가’라 불리는 렘브란트가 그 주인공이다.
돌아가면서 한 명이 대표로 발제를 맡지만, 모든 회원들이 1주일 동안 작가와 작품에 대해 공부해야만 참여가 가능 한 모임. 렘브란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자화상을 모아 소개하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나에’가 렘브란트의 작품에서와는 달리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서는 어떻게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야기해주는 회원도 있다.
발제를 맡은 신미정씨는 렘브란트가 살아갔던 그 시대의 역사와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림 안에서 이야기가 들려오고, 이야기 안에서 그림이 나타난다. “발제하려면 부담감이 커요. 세계사 공부도 해야 하고 철학 공부도 해야 하죠. 하지만 공부를 하고 나면 그림이 보여요. 그 전엔 그림이 앞에 있어도 보지 못했던 거죠. 해보면 아시겠지만 뿌듯함이 커요.”
표현하는 기쁨도 중요하다.
렘브란트에 대한 공부가 끝나고, 회원들은 모두 자기 자화상을 하나씩 그려본다. 예술을 보고 느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느낌으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그림 실력이 모자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언가를 표현하면서 느끼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나의 해바라기가 되기도 하고, 점으로 찍어 그린 정물화는 우리 집 전시 작품이 되기도 하다. 아이들 장난 같기만 한 스크래치 기법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하나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성취감과 만족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는 김영미씨는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해서 나를 표현한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라며, 엄마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되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예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이렇게 명화를 함께 감상하고 그와 연계한 미술 표현 활동까지 하게 되면서, 회원들은 아이들과의 이야기 거리도, 놀 거리도 늘어났다. 김연주씨는 딸과 함께 명화를 보며 퀴즈 놀이를 즐기게 되었고, 김영미씨는 세 아들과 함께 명화를 보며 각자의 제목을 짓게 되었다. 신미정씨는 마음이 여리고 소극적인 아들의 감수성을 발견해준 고흐의 해바라기가 너무도 고맙고, 아들이 뭔가를 그려달라고 할 때마다 스트레스였다는 김명숙씨도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은 그냥 못 그리면 못그리는 대로 그려줘요.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줘요. 일곱 살 난 아들과 그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좋아요.”
모임을 이끌고 있는 이민서씨는 “엄마가 놀아봐야 아이가 놀 줄 안다”며 엄마들의 이런 놀이문화를 통해, 미술관이 놀이터가 되고, 생활 속에서 예술을 배울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세계적인 화가의 전시관에도 ‘입장권을 산 사람만 있지, 그림을 보는 사람은 없다’는 서글픈 우리의 현실. 얼마나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그림에서 무슨 감동을 받았는지 이야기 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워 보는 것은 어떨까?
현정희 리포터 imh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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