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으로 보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흥미로운지 아니?”
우리나라 초·중생의 수학성취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라고 한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수학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라 더욱 놀랍다.
중2의 30%, 고1의 60%가 수학을 포기한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가장 어려운 과목으로 누구나 주저 없이 수학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수학이 누구에게는 도무지 알 수없는 암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대상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용인신릉중학교 류혜숙 교사는 아이들에게 수학으로 보는 세상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알게 해주고 싶어, 수업을 혁신적으로 바꾸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얘들아, 수학하고 한 바탕 놀아보자!
‘학교 가는 길에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준비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과연 엄마는 몇 분 만에 뒤따라 올 수 있을까?’ 우리 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류 교사는 이 상황을 수학수업과 접목했다. 방정식 단원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이 상황(문제)을 대본형식으로 쓰고, 실제로 연극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갑니다. 주어진 문제만 풀던 습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풀이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문제에서 오류를 발견하기도 한답니다.”
수학에 연극을 접목한 시도는 류 교사가 1년 넘게 진행해 온 프로젝트다. 연극뿐만이 아니다. 그의 수업에는 미술과 음악, 사회와 과학 등의 다른 과목에서 찾아낸 수학이 등장한다. 다양한 형태의 이른바 ‘통섭’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시대의 화두인 ‘융합교육’이라는 거창한 명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류 교사는 말한다.
“놀려고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면서 수학을 할 수 있을까 만을 고민했어요. 수학이 재밌어지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끌어들인답니다. ‘개그콘서트’나 ‘무한도전’, ‘러닝맨’ 속에도 수학이 숨어 있는 거 아세요.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얼마나 훌륭한 수학교재인데요.”
수학에 마음의 문을 열면서 달라진 아이들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인 ‘멘붕스쿨’이나 ‘정여사’도 아이들에 의해 수학을 주제로 한 개그대본으로 탈바꿈한다. ‘인어공주’,‘피노키오’와 같은 동화 속에서 수학을 찾아내는 것도 아이들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수학으로 세상 보는 눈을 갖게 되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그런 눈을 갖기 시작했어요. 가장 고마운 것은 아이들이 수학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거두었다는 점입니다. 수학에 마음의 문을 열면서 수업태도는 물론 저를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졌어요.”
교사와 학생이 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좋은 수업이 된다. 교사의 일방적인 전달만으로 끝나는 수업에서 학생보다 더 힘든 사람은 정작 선생님이라고 17년 경력의 류 교사는 강조한다.
“사실 쉽게 가려고 하면 얼마든지 편할 수 있는 일이 교직이에요. 부임한지 3~4년 째 부터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연구도 게을리 했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답답하기만 했죠. 이대로라면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이 밀려왔습니다.”
‘어떻게 수학을 재미있게 만들어 줄 것인가’를 화두로 2000년경부터 류 교사는 매년 자신에게 하나의 과제를 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학수업의 혁신을 시도한지 14년째. 엄청난 양의 수학교육 교재와 창의적인 교수법을 개발했다.
10여 년 전 이미 스토리텔링 수학 시작해
그동안 류 교사가 천착해 온 수학교육에 대한 문제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과 일맥상통한다. 어렵고 딱딱한 수학 개념에 이야기를 입히고, 알 수 없는 기호로 점철된 수학문제에 언어를 입히는 이른바 ‘스토리텔링 수학’이 류 교사는 이미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시도해 온 것들이다.
“수학일기와 수학시를 쓰고 수학자들과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불러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어요. 수학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수다거리가 얼마나 많은데요.”
자나 깨나 수학교육만 생각하게 된다는 류 교사. 수학교육에 관연 연수를 찾아듣는 것은 물론 손에는 늘 수학교육 관련 책을 들고 있다. 수학과 접목시키기 위해 국어, 사회, 과학 등 다른 교과서를 들여다 보는가하면 TV프로그램 하나도 넋 놓고 보는 법이 없을 정도다.
“수학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제 의도이긴 하지만 여기에만 집중할 수는 없어요. 교육과정에 따른 진도를 나가야 하고, 시험도 봐야하기 때문이죠. 수학으로 놀다(?)보면 진도가 늦어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진도와 놀이는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아이들도 그걸 잘 알고 더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수학교육 방법 공유하고파
류 교사는 요즘 수학에 토론을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멘토와 멘티 2명씩 짝을 지어 문제해결 방법을 찾은 수업을 통해 토론의 효과를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혼자 말없이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반대에요. 문제풀이 과정을 공유했을 때 더욱 좋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멘토 멘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아이들의 성적이 유독 눈에 띄게 향상됐거든요. 이를 좀 더 확장시켜서 수학토론 수업을 해보려고요.”
그동안의 경험과 연구 자료를 더 많은 선생님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류 교사. 그가 교사들을 대상으로 수업컨설팅 봉사를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자신의 이 같은 수학교육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기를 그는 다짐했다.
“교육청 영재교육원, 영재학급 수학강사로 활동한 경험을 일반 학생들에게 똑같이 적용해 봤는데,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교사의 가르치는 방식이 얼마다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수학이 어렵고 싫다는 것도 어른들이 만들어준 편견이듯, 수학 쉽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도 어른들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춘희 리포터 chlee1218@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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