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다른 학원 다니는 친구는 벌써 연대 문제 푼대요.”
올해도 역시나 몇몇 대치동과 잠실의 논술 학원은 예비고3들에게 연세대 기출 문제를 풀린다. 사실상 올해부터 논술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연세대 문제는 아무리 공부를 잘 한다 하더라도 넘기 힘든 난제다.
연세대에 합격한 학생들도 연세대 시험치러 가기 전날까지 현행 고교 논술의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연세대 문제를 두고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정보를 분석하고 글을 쓰는 일을 오랫동안 해온 필자도 새 연세대 문제를 접하면 집중해서 봐야만 해결책이 보인다.
대치동 논술학원 대표강사 시절, 논술을 배우자마자 연세대 문과 논술을 술술 풀어내는 학생은 딱 한명 봤다. 개요도 생략한 채 머릿속 구상만으로 일필휘지 써내려가던 그 학생은 결국 연세대가 아닌 서울대(정시 논술)를 갔다. 정말 그들은 고3을 앞둔 겨울방학, 논술에 입문하자마자 연세대 문제를 풀 실력들이 되는 걸까?
학원들이 연세대 논술을 풀리는 이유는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자신의 전반적인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없는 예비고3들에게 SKY반은 연세대를 진작부터 준비한다는 매력적인 상품이다. 꼭 연세대를 가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더 어려운 것을 공부해 놓으면 난이도가 낮은 것은 더 쉽게 한다는 선행학습의 신화가 만들어 낸 관성이리라.
게다가 연세대 논술은 유형이 독특하다. 그래서 연세대에서 요구하는 사고 방법이 다른 학교 논술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선행학습도, 연세대 논술을 진작에 풀리는 것도 적당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진도를 앞서서 공부하는 것은 이미 이전의 것을 완전히 소화한 극히 일부 영재들에게나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의 학원에선 6월이 되어서야 ‘실력이 있다’라고 평가된 학생들만 연세대 문제를 접할 수 있다. 그 때까지 모든 학생은 어떤 학교라도 적용될 수 있는 합리적 사고법과 논리적인 글 전개를 배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들은 자신이 영재인지 아닌지 뒤늦은 나이에 시험해 보고 있다. 학원은 학원대로 편법을 쓴다. 문제를 풀기 전에 미리 해설을 한다. 답의 방향을 알고 나면 일부러 틀리기도 어렵다. 정말 중요한 최근 문제는 시험 직전에 풀어야 하니 오래전에 출제된 문제를 푼다. 올해 칠 시험과는 유형이 다르고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학생은 지문을 이해하고 사고한 결과를 글로 풀어내기 보단 강사가 설명한 대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해설 듣고 문제 푸는 수업, 대학생 알바가 하는 첨삭 쓸모없어
논술은 글을 읽고 핵심을 찾아내는 독해력과 치밀한 사고력, 그리고 이런 결과를 반박을 차단하면서 논리적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남이 대신 해준 독해와 사고가 바로 내 것이 될 수 없다. 같은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는 문제라도 문제의 요구사항이 조금만 달라져도 판이하게 다른 글을 써내야 하는 게 논술이다. 그래서 교과서를 바탕으로 주제와 소재가 돌고 도는 대입 논술 시험에서 문제를 적중했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웬만한 논술 강사면 누구나 시험의 주제는 적중시킬 수 있다. 미묘한 관점의 차이를 밝혀내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글을 써내는 일은 오로지 학생의 몫인 것이다.
제대로 된 논술 수업은 그 옛날 그리스에서 하던 논리학 수업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학생이 스스로 먼저 생각하고, 선생님과 의견을 주고 받고, 말과 글로 논리의 치밀함을 연습해 자신의 사고와 표현의 습관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학생들이 입을 열고, 선생님이 학생들과 수평적으로 의견을 주고 받는 수업은 왁자지껄한 소음이 발생한다. 현재에도 미국과 유럽에서 논리 수업은 이렇게 진행된다. 교사 당 학생 수가 현격히 많은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교육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강의가 그러하겠지만, 그래서 논술에서는 강사의 역량이 절대적이다. 학생의 글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물론, 학생이 해낸 사고의 과정을 들여다보고 좀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위해 편견을 바로 잡아야 한다. 경험과 독서량이 일천한 학생들에게 학문이 인정하는 보편적 사고를 정치하는 일은, 실제로 해보면 살과 피를 태워 에너지를 내야 가능할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학생의 사고를 듣거나 글을 보고 부족한 논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쉬지 않고 최선의 집중력을 유지해야만 할 수 있다.
한명의 직업인으로서 최선의 집중력을 유지하며 관찰하고 대화하고, 글을 쓰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극단적인 정신노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젊은 나이임에도 두 달에 한번은 염색을 해야 할 정도로, 좌뇌와 가까운 왼쪽 옆머리에는 흰머리가 수북히 쌓인다. 논술은 연대세 문제를 이르게 풀린다고, 많은 학생들 앞에서 준비된 해설 강의를 잘 한다고 학생들의 실력이 늘지 않는다. 역량있는 강사의 끊임없는 피드백, 그 정신노동의 질이 바로 학생의 실력을 향상시킨다.
이지논술
배근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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