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1,2,3순위가 몽땅 도서관이라며 스스로 ‘도서관에 미쳤다’며 웃는 여자. 덕분에 그의 일터는 대한민국 최고 도서관으로 뽑혀 명예로운 상을 2년 연거푸 받았다. 사서하면 떠올리는 뿔테 안경의 단정한 가디건 차림의 무채색 이미지의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배반하며 ‘에너자이저 팔색조 사서’의 롤모델을 만들어가는 오지은 광진정보도서관 관장. 유쾌하고 화사하고 부드러우며 저돌적인 그녀가 이번 내만사의 주인공이다.
인터뷰 날은 공교롭게도 도서관 휴관일. 남들 다 쉬는 날 그녀는 “도서관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며 후드티에 롱부츠의 발랄한 옷차림으로 고요한 도서관을 지키며 일에 파묻혀있다. 관장실도 따로 없고 널따란 사무실 한 귀퉁이가 그의 자리다.
‘사서는 커뮤니케이터’ 오지은 사서론
광진구청이 운영하는 광진정보도서관은 하루 방문객 4천여 명, 연간 120개 프로그램에 4만 명이 참여하고 어린이, 주부, 어르신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주민 독서회만 15개다. 특히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어린이독서회에 자녀를 가입 시키려고 부모들은 매월 2월이면 새벽부터 칼바람 맞으며 도서관 앞에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도서관은 도시농업학교를 열고 스토리 창작소를 만들며 질 높은 인문학강좌를 열어 사람들의 지적 허기를 고루 채워주려 애쓴다. ‘도서관의 무한 진화’를 끝없이 모색하는 노력 덕분에 전국도서관 운영 평가 공공도서관 부문에서 2011년 대통령상, 2012년 특별상( 2년 연속 수상해 2013년은 평가에서 제외)을 수상하자 전국의 사서들이 ‘한수’ 배우러 이곳의 문턱을 부리나케 넘는 중이다.
“사서는 사람과 책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터입니다. 이런 철학과 가치를 다들 공유해야 합니다. 도서관의 중심은 사서라는 ‘사서 역할론’에 공감대가 만들어지면 산더미처럼 쌓인 일 때문에 줄기찬 야근 인생을 살더라도 많은 사서들은 재밌고 보람 있게 자발적으로 일합니다. 벤치마킹하러 온 분들께 건물 구경하고 프로그램 숫자만 세다 가지 말고 사서와 속 깊이 대화하며 현장 노하우를 배워가라고 늘 강조합니다.” 오 관장은 현장에서 터득한 ‘사서론’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20년 전 말단 사서가 꿈 꾼 도서관의 미래
94년 성동구청 자료실 막내 사서로 그는 도서관 인생 첫발을 내딛었다. 사실 아버지 권유로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했지만 유별나게 책을 좋아한 것도 사서직을 동경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일터가 그를 변화시켰다. “말단 사서였지만 일은 배울수록 재미있었어요.” 도서관에 매료돼 모든 에너지를 기꺼이 쏟아 부었다. “도서관이 책을 보거나 빌려가는 공간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 유대감을 쌓고 건강한 공동체로 확장시킬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로서의 잠재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죠.”
때마침 도서관 건립을 구상중이었던 광진구청이 러브콜을 보냈다. 설계, 공간 배치, 운영 계획 수립 등 굵직굵직한 일부터 자잘한 잡무까지 그의 손길을 거쳐 2000년 광진정보도서관이 오픈했다. 탁 트인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멋진 도서관에서 미친 듯이 일했고 서른여덟젊은 관장이 탄생했다. 2007년 무렵이다.
“도서관의 롤모델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맥케이블의 ‘시민 사서직(civic librarianship)’ 책을 만나며 해답을 발견했죠.” 책 빌려주고 구색 맞추기식 문화강좌 운영이 고작이던 공공도서관이 어떻게 변해야 할 지 실마리를 찾은 그는 자비출판으로 책을 번역해 후배 사서들에게 선보였다. 한편으로는 책 이론을 현장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주민센터, 문화원 같은 수많은 공공기관마다 평생교육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서로 베끼기 경쟁만 해요. 사람들이 뭘 원하는 지 아이디어를 짜내기 보다는 수강생 머릿수 채워 돈 되는 프로그램만 하려 하죠.” 도서관을 공동체 의식을 키워가는 거점 공간으로 가꾸고 싶었던 소망을 담아 작은 씨앗부터 뿌려나갔다. 점점 주민이 주민을 가르치는 재능기부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고 사서가 주축이 된 주민 독서회가 자생력을 갖춰나갔다.
도서관에 미친 ‘월화수목금금금’ 인생
지난해부터는 중앙 정부의 공모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과학에 초점을 맞춘 융합강좌, 도시농업학교 같은 광진정보도서관만의 개성과 색깔을 입힌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양적으로 질적으로 풍성한 ‘도서관 프로그램의 성찬’을 맛깔나게 차리고 있는 중이다.
특히 도서관 프로그램에 최고의 명강사를 세우기 위해 그는 많은 공을 들인다. “한 교수님은 날 보고 ‘또라이’래요. 지자체 도서관에서 시리즈 강연 요청이 들어와서 적당히 거절할 작정이었는데 잊을 만하면 관장이 이메일 보내고 사서들 우르르 데리고 와 간곡히 설득해 결국 성사시키고. 게다가 ‘현대 과학 기술’이라는 묵직한 주제였는데도 주민들 강의 몰입도며 호응도에 또 한번 놀랐다네요. 오랫동안 공 들이고 진심을 보여주면 결국 성사되더군요.” 지난해 호응 속에 열린 시민대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엿보인다.
도서관 롤모델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아 붓는 그는 배움의 갈증을 느끼고 지금은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다. 도서관을 짝사랑하느라 월화수목금금금 인생을 사는 오 관장을 보고 직원들도 혀를 내두른다. “우리 도서관 식구들이 얼마 전 우리 가족에게 엄마를, 아내를 도서관이 빼앗아 미안하다며 하트 감사패를 선물할 때 무척 기뻤어요. ‘내 꿈을 이해해 주는 구나’ 우리 직원들의 진심이 느껴졌죠.” 앞으로 쭉 ‘현장 일꾼’으로 남고 싶다는 그녀가 펼쳐 보일 도서관의 미래가 많이 기대됐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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