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를 만나 3개월 만에 결혼해 1남1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나스타샤(35)씨. 운전면허와 미용사 면허를 취득하고 경찰서 통,번역을 해오며 경찰시험까지 도전했던 그는 현재 충남하모니봉사단장을 맡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나스타샤씨는 얼마 전 KBS ‘강연100°C’에도 출연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보통 한국아줌마들도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내는 그에게서 한국인보다 더 억척스러운 한국인 냄새가 풍겼다.
한국인의 아내로 살다 =
한국에 온 지 10년. 어릴 적 아나스타샤씨는 촉망받는 국가대표 주니어 체조선수였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에서 독립해 분리되면서 체조선수의 꿈은 점점 멀어져갔다. 아버지의 권유로 건너온 한국은 뚜렷한 목적 없던 그녀를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행운처럼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지적당하거나 무시당한 적이 없어요. 남편은 항상 든든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기대 속에 가진 첫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서울로 가라는 의사들의 진단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서울 큰 병원으로 갔으나 의사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너무 답답했다. 러시아어로 통역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 힘들었다. 아픈 아이를 앞에 두고 가슴만 치고 있었다. 갑작스런 스트레스가 너무 컸던 것일까. 양수가 터지고 말았다.
“8개월 만에 태어난 아이는 열흘에 걸쳐 심장병 수술을 2번이나 받아야 했어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장에도 문제가 생겨 소장 수술도 받았고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또 수술을 받았다.
가녀린 숨을 겨우 쉬는 아기를 보며 그는 울고 또 울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남편 덕분에 견뎠다. “남편은 나를 위로해주느라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어요. 본인도 무척 힘들었을 텐데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었죠.”
다행히 아이는 뜀박질도 곧잘 할 만큼 건강하게 자라 올해 11살이 되었다. 4살 터울인 둘째아이도 티 없이 건강했다. 아나스타샤씨는 낯선 땅에서 한국인의 아내로 살면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한 시련을 겪었다. 그리고 이겨냈다.한국에서 결혼하고 가정까지 이뤘는데 그에 따른 책임감도 컸다. 그는 “여기서 힘들다, 살기 싫다, 이런 생각을 한 순간이라도 가졌으면 벌써 떠났을 것”이라며 “마음먹기에 따라 안 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다문화여성들이여, 자신감을 가지세요!” =
“동네아줌마들과 수다 떨기도 많이 했어요. 언어는 역시 많이 듣고 말하는 것이 최고더라고요.”
덕분에 한국에선 주부가 경제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남편은 일말의 거부감 없이 통장을 넘겨줬다. 그러나 계좌이체 송금 등 어렵기만 한 경제용어는 그를 더욱 난관에 빠트렸다. 기본적인 경제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할 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이는 더욱 없었다.
“다문화여성들이 매우 힘든 것이 병원과 은행 이용하기예요. 전문용어가 많은데 언어부터 막히는데다 사회 경제 문화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거든요.”
아나스타샤씨는 주변사람들의 호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적극적이고 쿨한 성격 덕분에 먼저 다가가는 편이어서 주변의 많은 도움을 끌어낼 수 있었다.
운전면허도 미용사 자격증도 척척 따냈다. 한국서 살아온 세월이 는 만큼 언어도 늘었다. 열심히 살다보니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한국 사람은 애국심도 봉사심이 강해요. 나도 봉사하고 싶었어요. 심신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고 머리도 깎아주고 사건 생기면 경찰서에서 통,번역도 하게 됐지요.” 벌써 4년째다.
그는 2009년 당시 아산경찰서 이길수 경위가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마미폴’에서 시작한 봉사를 이어와 올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할 ‘충남하모니봉사단’ 단장까지 맡게 됐다.
“특히 순찰 돌며 통역을 하다보면 문화적 차이 때문에 외국인이 범죄자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말이 통하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지요. 잘 해결됐을 때 매우 보람 있어요.”
이제 그는 더 어려운 한자어 배우기에 애쓰고 있다. 지난해 통,번역 회화 시사 적성검사 체력검사 모두 통과한 경찰특별채용시험 마지막 면접에서 아깝게 떨어진 경험을 떠올렸다. “앞으로도 계속 도전합니다.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갔기에 누구보다 더 빨리 한국에 적응했던 아나스타샤씨. 그는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열심히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사진설명>
아나스타샤씨가 둘째인 6살 영웅군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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