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우수 인재’로 뽑혀 대통령상을 받은 보성고 발명반의 이호원군을 인터뷰 한 지 1년이 흘렀고 그의 동생이 똑같은 상을 받았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김연아, 양학선 같은 우리나라 쟁쟁한 실력자들이 받은 상을 ‘특출난 형제’가 연거푸 수상했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여 동생 이호정군을 수소문해 만났다.
‘동생 콤플렉스’가 자기성장의 자양분
“연년생 형은 든든한 울타리인 동시에 늘 이기고 싶은 존재였어요.” 이군은 멋쩍게 웃는다. 승부욕 강한 그는 늘 ‘형 따라쟁이’로 컸다. 손끝이 야무졌던 그는 어릴 때부터 늘 형과 산더미처럼 쌓인 레고 블럭, 종이모형에 파묻혀 놀았고 덕분에 공간지각력, 끈기가 함께 길러졌다.
중학생있던 그는 보성고에 입학한 형이 발명에 빠져 과학발명품경진대회, 과학전람회 등 온갖 대회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해보자’며 욕심을 냈다. “보성고 발명반은 커리큘럼과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잘 짜여 있어요. 형한테 이것저것 묻고 어깨너머로 배우며 여기저기 귀동냥과 인터넷 검색해서 나 혼자서 발명대회를 뚝딱 준비했어요.”
물 절약을 위해 세면기에서 쓰고 난 물을 변기에 연결시키는 ‘거꾸로 변기’ 아이디어를 가지고 한국대학발명협회가 주관한 ‘인벤트21대회’에서 상을 받자 자신감이 붙었다.
“돌이켜보면 질풍노도, 반항의 아이콘인 중2 시절, 또래들이 PC방으로 몰려 가 게임에 몰두하거나 잡담으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낼 때 난 ‘제대로 딴짓’을 한 셈이에요.” 공부란 좁은 길만 고집하지 말고 넓은 세상을 풍부하게 경험하라는 이군 어머니의 ‘통 큰 자녀교육법’이 그를 부쩍 성장시켰다.
‘발명의 날개’ 단 중고교 시절
형 따라 보성고 발명반에 들어간 뒤로 ‘발명의 날개’를 달고 본격적으로 ‘딴짓’에 몰입했다. “건축가가 꿈이라 건물의 구조, 자재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대나무의 특징을 건축자재에 꼭 응용해 보고 싶었죠.” 가벼운 발사목재를 가지고 속은 비우고 일정 간격 마다 마디가 있는 대나무의 특징을 살린 구조물을 만들어 강도 실험에 돌입했다.
전공 서적 뒤적이고 팀원들끼리 치열하게 토론하며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1년 반을 매달렸다. 실험에 필요한 정교한 구조물 하나 완성하기 위해 손에 본드 범벅이 된 채 8시간을 꼬박 발사목재와 씨름하기도 했다. “궁금증 때문에 시작한 연구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건축학에서 연구가치가 있을까 회의감이 몰려왔어요. 여기저기 수소문해 전남대, 한양대 등지의 교수님을 찾아다니며 조언 듣고 연구 실마리를 찾아나갔지요. 심적으로 힘들 때마다 이분들께 격려를 많이 받았어요.”
이런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서울과학전람회, 서울학생탐구발표대회 등지에서 골고루 상을 휩쓸었다. “발명반 선배들 가운데는 쟁쟁한 실력자들이 많아요. 그들을 보며 ‘내 관심 분야, 내가 되고 싶은 것’을 끊임 없이 자문했죠. 롤모델로 삼은 선배들에게 자극받아 내 지식의 깊이와 노력의 강도를 계속 높일 있었습니다. 사실 발명대회랑 학교 시험기간이 겹칠 때는 하루 2~3시간만 자고 버텨야 할 만큼 힘들 때도 많았죠.”
특히 발명대회 심사 때마다 면접관들이 던지는 ‘송곳 질문’을 통해 스스로를 강하게 단련시키며 약점을 보완해 나갔다. 이런 담금질 덕분에 ‘이호정의 그릇’을 점점 키울 수 있었다.
건축가 꿈꾸는 ‘대한민국 우수 인재’
이군은 재능기부에도 적극 나섰다.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스카우트 활동을 하며 캄보니아, 태국, 중국의 경제적 약자들의 딱한 삶을 생생하게 목격했고 그 경험들이 ‘함께 사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일찌감치 고민하게 만들었다.
“과학발명재능기부하다 알게 된 형편이 어려운 아이였는데 부모님이 운영하는 작은 빵집이 장사가 잘 안됐어요. 그래서 친구들 모아 ‘죽은 상점 살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해 페이스북에 빵집 사진 올리고 SNS로 홍보했어요. 박원순 시장이 트위터에서 우리 소식을 전해 듣고 리트윗까지 해주셨지요. 이 아이템으로 소셜벤처 경연대회에도 나가며 SNS의 영향력, 아이디어와 팀워크의 중요성을 두루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래들처럼 입시 공부에 올인 않고 그의 표현대로 ‘제대로 딴짓’을 고루 해본 덕분에 이군의 내면은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기회가 포착되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드는 도전정신, 여럿의 힘을 한데 모으는 통솔력이 길러졌고 무엇보다 자신의 미래 꿈을 또렷하게 설계했다. “건축가가 되고 싶다니까 주변에서는 경기를 많이 타 직업의 안전성이 떨어진다며 말리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난 구조, 설계, 디자인, IT기술을 한데 융합한 이호정만의 철학을 담은 건축물을 선보이고 싶어요. 내 꿈을 향해 이제는 고3 수험생으로서 공부에 전력질주 할 생각이고요.” 스마트한 답변을 남긴 이군은 그의 꿈 무게 만큼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도서관을 향해 총총 사라졌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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