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름재는 율량동, 주중동, 청원군 내수읍 구성리와 접하는 지역으로 청주북부지역에서 청주로 오기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험난한 고개였다.
수름재가 속하는 주성동(酒城洞)은 원래 청주군 산외일면(山外一面) 지역으로 수름재 밑 마을이라 하여 수름재 또는 주성(酒城)이라 하였다. 1914년 일제에 의해 시행된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산외일면의 신기리와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 장성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청주군 북일면(北一面) 주성리가 되었다. 1946년 청주군이 청원군으로 개칭되어 청원군 북일면 주성리가 되었고 1990년 청원군에서 청주시로 편입되면서 주성동으로 개칭, 청주시 오근장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다.
주성동은 백화산(해발 약 300m)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농촌마을로 동부우회도로인 25번 지방도와 충주-제천 방면의 36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수름’이란 ‘술’의 고어이며 ‘재’는 고개를 뜻한다. 따라서 수름재란 ‘술을 파는 주막이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주성(酒城)’이라는 한자 표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증평, 내수 등 청주 북부지역 주민들이 청주장을 이용하고 생활을 위해 도시인 청주를 수시로 오가며 넘어야 하는 험한 고개 마루에 주막집이 있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며 꼭 필요한 일이다. 주변에 장고개, 역대고개라는 고개와 주막거리, 작은주막거리, 큰주막거리라는 마을 이름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고개를 넘으면서 주막촌이 꽤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용산구 주성동은 鑄城洞으로 표기되고 있으며 무쇠솥을 주조하는 곳이 많았다는 데 연유한다. 청주의 주성동(酒城洞)과는 한자 표기도 다를 뿐 아니라 지리적 여건이나 역사적 흐름을 보아도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순수한 우리말로 전해져오는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지명에 얽힌 사연을 반영하고자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있고 지명이야말로 참으로 귀중한 역사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역사의 기록이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 지식인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음에도 땅이름에는 서민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꾸밈없는 진솔한 생각, 꿈, 희망, 생활상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점에서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라고 할 것이다.
주중동은 수름재 중간에 있다고 하여 중수름재 또는 중주성(中酒城)이라 불려온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주하리(酒下里-수름재 아래지역),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의 평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주중리라 하여 북일면에 편입되었다가 1990년 청주시로 편입되면서 주중동(酒中洞)이라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수름재에는 술을 파는 식당이 몇 집 들어서 있으니 옛 생각과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옛 정취에 젖어봄도 운치 있는 일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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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름재가 속하는 주성동(酒城洞)은 원래 청주군 산외일면(山外一面) 지역으로 수름재 밑 마을이라 하여 수름재 또는 주성(酒城)이라 하였다. 1914년 일제에 의해 시행된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산외일면의 신기리와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 장성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청주군 북일면(北一面) 주성리가 되었다. 1946년 청주군이 청원군으로 개칭되어 청원군 북일면 주성리가 되었고 1990년 청원군에서 청주시로 편입되면서 주성동으로 개칭, 청주시 오근장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다.
주성동은 백화산(해발 약 300m)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농촌마을로 동부우회도로인 25번 지방도와 충주-제천 방면의 36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수름’이란 ‘술’의 고어이며 ‘재’는 고개를 뜻한다. 따라서 수름재란 ‘술을 파는 주막이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주성(酒城)’이라는 한자 표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증평, 내수 등 청주 북부지역 주민들이 청주장을 이용하고 생활을 위해 도시인 청주를 수시로 오가며 넘어야 하는 험한 고개 마루에 주막집이 있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며 꼭 필요한 일이다. 주변에 장고개, 역대고개라는 고개와 주막거리, 작은주막거리, 큰주막거리라는 마을 이름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고개를 넘으면서 주막촌이 꽤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용산구 주성동은 鑄城洞으로 표기되고 있으며 무쇠솥을 주조하는 곳이 많았다는 데 연유한다. 청주의 주성동(酒城洞)과는 한자 표기도 다를 뿐 아니라 지리적 여건이나 역사적 흐름을 보아도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순수한 우리말로 전해져오는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지명에 얽힌 사연을 반영하고자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있고 지명이야말로 참으로 귀중한 역사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역사의 기록이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 지식인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음에도 땅이름에는 서민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꾸밈없는 진솔한 생각, 꿈, 희망, 생활상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점에서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라고 할 것이다.
주중동은 수름재 중간에 있다고 하여 중수름재 또는 중주성(中酒城)이라 불려온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주하리(酒下里-수름재 아래지역),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의 평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주중리라 하여 북일면에 편입되었다가 1990년 청주시로 편입되면서 주중동(酒中洞)이라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수름재에는 술을 파는 식당이 몇 집 들어서 있으니 옛 생각과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옛 정취에 젖어봄도 운치 있는 일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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