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탐방길-고창 미당시문학관과 돋음별 마을
미당을 키운 팔할의 바람과 국화를 찾아 떠난 여행
시와 바람과 함께 조용하고 차분하게 연말연시를
아이들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부모 입장에선 시험이라도 별다를 바 없는 날들이었건만 본인들은 마음이 허하단다. 그래서 머리도 식히고 코에 바람도 넣을 겸 멀지 않은 곳으로 소박한 여행을 계획한다. 산도 싫고 바다도 싫단다. 하지만 길고 긴 휴일을 염치없이 아이들을 컴퓨터에게만 맡길 수 없어 산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시와 바람이 있는 미당시문학관으로 이끌어본다. 미당 서정주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라고 한 그 바람 맞으러 고창으로 떠나본다.
미당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미당시문학관
전주역에서 드라이브 겸 느림의 행복을 만끽하며 1시간 반가량 달려 도착한 고창의 미당시문학관(063-560-8058). 때가 겨울인지라 지난 가을 국화축제 때 찾았던 적보다 인적도 드물고 맞이하는 자연도 화려함을 벗었다.
미당시문학관은 지난 2001년 미당의 고향 마을의 봉암초등학교 선운분교를 개보수하여 조성되었다. 친일 행적과 군사정권을 예찬하는 행위 등으로 미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썩 좋지 않았기에 지어질 때까지 반대여론이 적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당시문학관은 시인의 고향마을에 생가와 묘소가 좌우로 자리하고 있어 그가 남긴 시의 세계를 찾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이다.
기념관은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는데 관람객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눈길을 끈다.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85년간의 그의 행적을 연표로 만나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과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전시실도 인상 깊지만 노년에 하루도 빠짐없이 세계의 수많은 산들의 이미지에 친필로 산이름과 높이를 흘겨 쓴 흔적들과 함께 전망대까지 올라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20세기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미당은 대표작이 가장 많은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전시실 내에는 미당의 시에 송창식이 곡을 붙여 만든 ‘푸르른 날’이란 노래가 울러 퍼진다. 5층 전망대에 올라서니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이 바람이 그 바람이려나!’ 곧이어 한눈에 펼쳐지는 미당이 나고 자란 질마재와 서해바다에 마음을 빼앗긴다.
사계절 내내 국화꽃 향기 그윽한 안현 돋음별마을
학창시절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읊어보았을 미당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란 시가 녹아 있는 마을이 있다. 미당시문학관 바로 앞에 위치한 안현 돋음별마을이 그곳인데. 돋음별 마을은 모 방송사의 ‘패밀리가 떴다’라는 프로그램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해마다 가을이면 국화축제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미당이 나고 자라 이젠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며, 사계절 내내 담벼락에도 지붕에도 국화가 만발한 곳이다.
기승을 부리던 한파가 한풀 꺾이고 제법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는 날이라 걸어도 상쾌하다. 마을을 가로질러 아이들과 국화향기 그윽했던 뒷동산 전망대에 올라 카메라 셔터도 눌러보고 아직도 다 지지 않은 국화꽃을 배경삼아 포즈도 취해본다.
다시 돋음별마을로 내려와 동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벽화와 함께 쓰인 귀하디귀한 시 한 구절구절을 놓치지 않고 읽어보고 가슴에 새겨본다.
마을의 담벼락에는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초상화가 온화한 미소를 띠우며 국화와 함께 그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국화꽃 피는 가을이 아니어도 국화꽃 향기가 가득하다.
지나가는 주민을 붙잡아 초상화와 닮았다며 “이집 주인이세요?”라며 말을 걸자 ‘처음엔 서정주 시인의 생가가 위치한 질마재에서 시작한 국화축제가 외길이라 밀려드는 관광객을 소화하기 힘들어 돋음별 마을 뒷동산으로 장소를 옮겼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눈 내리는 겨울 고창 질마재로의 여행 추천이요!
미당시문학관과 돋음별 마을은 국화꽃 피는 가을도 좋지만 눈 내린 날이나 따스한 햇빛과 함께 동행하며 꼭 한번 겨울에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다.
아이들은 모처럼의 나들이에 아무 생각없이 발품만 팔고 있지만 언젠가 ‘국화옆에서의 시구가 보이면 한번쯤은 오늘을 떠올려 보겠지?’ 하는 생각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아빠!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그렇게 많이 울어야 해요? 그럼 그 소쩍새는 뭐예요?”라고 뜬금없이 묻는 작은 아이의 질문에 “응. 소쩍소쩍 울어서 소쩍새라고 하나봐. 글쎄, 이 동네에는 소쩍새도 많고 바람도 많았나 보다. 서정주 아저씨가 그리 좋아했던 걸 보면...”하고 자신 없는 듯 말끝을 흐린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생각이 들지만 피곤하지 않을 만큼의 여유롭고 소소하고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여행이었다.
가을이면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노오란 국화꽃들이 반기는 고창 질마재, 미당의 시가 있어 그 향기와 빛깔이 더욱 짙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눈 덮힌 질마재도 조용하고 소박함을 누리기엔 손색이 없을 듯. 올겨울 고창으로의 여행을 계획해 보는 건 어떨까.
미당시문학관은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동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관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질마재길을 한번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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