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인] 영동일고 2학년 한승희

물리학자를 꿈꾸는 피아노 치는 남학생

지역내일 2013-12-03

 ‘한승희는 [       ]다.’ 빈칸에 넣고 싶은 단어를 질문하자 수줍게 ‘자유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틀에 얽매이는 걸 질색하고 마음 가는 대로 몰입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한 군. 예비 고3의 팍팍한 일상의 탈출구로 그는 음악을 꼽는다.
 “빈 음악실 살금살금 들어가 피아노를 맘껏 치다보면 실타래처럼 엉켰던 마음이 차분해져요.” 그의 답이다. 

한승희


피아노 벗하며 스트레스 훌훌 날려
  ‘물리학자를 꿈꾸는 피아노 치는 남학생이라...’ 호기심이 동해 연주 동영상을 청하자 멋쩍어하며 휴대폰을 건넨다. 휴대폰 영상 속 그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초등 4학년 무렵 동네 피아노 학원에 친구 따라 갔다가 1년가량 배웠다는 그의 연주 솜씨는 ‘음대 지망생이냐?’는 말을 들을 만큼 수준급이다.
 “한번 꽂히면 지독하게 몰입하는 성격이에요. 부모님께 졸라 피아노를 산 뒤 혼자 악보 보고 클래식, 뉴에이지 등 다양한 곡을 연습했지요. 특히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곡을 좋아해요.”
 타고난 집중력에 집요한 노력을 보태 될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의 한 군에게 음악과 물리는 ‘좌청룡 우백호’격이다. 상당수 고교생들의 기피 과목인 물리가 그에게는 세상 만사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도깨비 방망이다.
 수학, 과학은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고 중1 때까지 최상위권 성적이었던 그는 별 고민 없이 과학고를 목표로 삼았다. ‘스펙용’으로 출전한 물리올림피아드대회에서도 가뿐하게 은상을 탔다. 하지만 공부를 핑계로 친구도 잘 사귀지 않고 ‘왕따 모범생’이었던 그는 어느 순간 공부가 시들해졌다. 대신 공부에 쏟던 에너지를 ‘놀기’에 집중했다.
 ‘설마 과학고에 떨어지겠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뒤 큰 상처를 입었고 고1까지 ‘루저’로 살았다.


꿈 향해 돌진하는 세친구 보며 슬럼프 탈출
 그러던 중 개성이 제각각인 세 명의 친구를 만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심리학자를 꿈꾸며 이 분야를 파고드는 친구, 꼭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미술대회에서 상도 타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가는 또 다른 친구, 집안 형편도 어렵고 부모님 반대도 완강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댄서가 되겠다며 매일 연습실에서 땀 흘리는 친구. 이렇게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웠어요. 상처를 훌훌 털고 고1 겨울방학이 터닝포인트가 돼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물리학도의 꿈을 재정비했습니다.”
 마음 속 울림이 놓았던 책을 다시 잡게 만들었다. 우선 학교 프로그램을 100%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학교방과후 수업은 모조리 신청하고 자습실 붙박이 생활을 자청했다. 2학년이 되자 운 좋게 학교 기숙사생으로 뽑혀, 학교에서 먹고 자며 더욱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담아 공부에 전념한 덕분에 전교 등수 120등이 이과 4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대학생용 일반물리 독학하며 ‘하고 싶은 공부’ 도전
 “공부의 요령을 터득하고 나니 ‘해야 할 공부’ 뿐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에도 욕심이 나더군요.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일반물리학 책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죠.” 물리학 개념을 하나씩 파고들며 모르는 부분은 인터넷의 대학 동영상 강의 찾아보며 머릿속에 정리해 나가자 실력도 차곡차곡 쌓였다.
 “상당수 아이들이 물리를 어렵다고 기피하더군요.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나눠주신 문제지 풀이 과정과 답을 적어 반 아이들에게 돌리니 반색을 하더군요. 나중에는 물리 때문에 고전하던 기숙사 친구들로부터 특강 요청까지 받았죠.” 한 군이 진행한 물리학 강의는 반응이 좋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지식 재능을 남과 나눌 수 있어 내심 뿌듯했고 또래 친구들은 그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특히 학교 경시대회에서 수학,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등 5개 전 분야에서 상을 타며 ‘경시 5관왕’ 타이틀까지 거머쥐고 나자 ‘나도 할 수 있구나’ 자신감까지 덤으로 얻게 됐다.
 “수능시험은 진짜 실력을 겨룬다기 보다는 한 두 문제 차이로 실수 안하는 학생 가려 뽑는 테스트죠. 반면 독학으로 물리를 파고든 뒤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학문’에 한 발짝 다가선 ‘공부의 기쁨’을 맛볼 수 있어요. 덕분에 내 인생의 미래지도도 구체적으로 세울 수 있게 됐고요.”
 그는 물리학과에 진학한 뒤 미국 MIT나 칼텍으로 유학, 세계적인 석학을 밑에서 공부하며 이론 물리학을 깊숙이 파고들겠다는 ‘꿈 지도’를 그려놓고 있다.
 “책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요>에서 괴짜 학자 파인만을 만난 뒤로 그는 내 우상이 됐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가 하면 악기 연주도 수준급이고 반짝이는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 분야를 탐구하는 학자로서의 열정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사춘기 홍역을 앓은 뒤로 부쩍 성장한 한 군. 시험을 위한 공부와 실력을 쌓는 공부를 병행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엿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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