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모르는 학생들은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많은 학생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민주주의를 느끼고 경험하며 배울 수 있을까?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 형태’라는 민주주의의 사전적 정의가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가정과 학교, 사회 그 어디에서도 주인일 수 없었던 우리 아이들. 하지만 희망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어른들의 학교’를 ‘아이들의 학교’로 돌려주기 위한 쉽지 않은 노력이 학교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약속, ‘학교생활협약운동’을 소개한다.
규제와 통제를 넘어 자율과 자치로!
지난 7월, ‘삼척도계중학교’에서는 전체 학생들이 모여 ‘학교생활협약’을 최종 선정했다. ‘생활지도’란 이름으로 규제와 통제에 익숙했던 학생들이 스스로 생활 규칙을 정한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자치회장인 김대석(도계중3)군은 “선생님이 참석하지 않고 전적으로 우리가 진행하는 회의는 처음이라 힘든 점도 많았지만, 보람되고 의미도 컸다”며 “우리가 만든 약속인 만큼 다들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 협약 (도계중) | 벌칙 |
선생님께 감정 섞인 어조로 말대답 하지 않기 | 묵언 수행 후 선생님께 사과편지 쓰기 |
교내에서 실내화 착용하기 | 맨발로 운동장 트랙 2바퀴 돌기 |
수업활동 및 행사활동에 최선 다해 참여하기 | 다음 수업시간까지 수업내용으로 5문제 만들어오기 |
싸운 사람끼리 대화로 해결하기 | 싸운 사람끼리 하루 동안 손잡고 다니기 |
학교 안전시설 훼손하지 않기 | 훼손한 물건 배상하고, 반성문 쓰기 |
도계중 학생들의 약속은 이후 통합교과 프로젝트 수업으로 이어졌다. 생활협약 중 하나를 정해 홍보송이나 광고, 단편영화 등 홍보물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각종 영화들을 패러디 해 만든 영화와 포스터는 학교생활협약을 지키지 않는 악당들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 규제와 통제에서 벗어난 학생들의 자발적인 실천의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홍보포스터 사진
회의 진행 방법부터 토론 진행 방법, 규칙을 정하는 의미까지 사전 교육을 진행해 온 도계중 홍영훈 교사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는 걸 보고 싶었다”며 인내를 갖고 기다려준다면, 학생들 힘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 했다.
*학교생활협약이란?
‘학교생활협약’은 학생, 학부모가 스스로 정하고 실천하는 약속으로, 자유류적이고 평화로운 학교 만들기를 위해 강원도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운동이다.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의사결정 과정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직까지 낯선 문화. ‘학교생활협약운동’은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 없이는 가기 힘든 길이다. 실제로 시행 초기에는 ‘담임교사를 바꾸어 달라’, ‘등교시간을 늦추고 쉬는 시간을 길게 해 달라’는 등 단순히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쏟아내는 학생들 때문 교사들이 당혹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생활협약운동’이 진행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 역시 학생들의 반응. ‘화천중’ 최묘경 교사는 “설마 우리말대로 진행 되겠어 라며 의문을 던지던 학생들이 정말 자신들의 의견이 규칙에 반영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지금까지 학교나 선생님이 정해주신 규칙을 맞춰서 생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었다는 정민서(화천중3)양 역시 “생활협약운동을 하면서 같은 규칙이라도 무조건 따르는 것과 자신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내린 결론을 지키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학생들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고.
아직 갈 길은 멀다. 하지만 공부할 교과목은 물론 입어야 하는 옷까지도 모두 어른들이 정해주는 대로만 해야 했던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인가 결정하고 약속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지 않을까?
도교육청 이연옥 장학사는 “학교생활협약운동은 민주적 의사결정 경험이 학교의 문화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에 서 출발한 사업”이라며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으며, 전 춘천교대 총장이자 ‘뇌경영연구소’ 박민수 소장은 “인간이 동물이나 컴퓨터와 다른 점은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며, 교육은 이 자각능력을 키우는 일”이라며 ‘학교생활협약운동’은 학생들에게 자발성과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을 교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생활협약!! (화천중3 길종현)
학생들이 교실에서 생각하고 활동하며 협력하고
약속하는 학교생활협약운동! 참, 좋다!!
약속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꾼다!
‘학교생활협약운동’은 아이들의 약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직원 회의와 투표를 통해 선정되는 교사들의 약속과 알림장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학부모회에서 결정되는 학부모들의 약속이 함께 진행된다. 이렇게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모두가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킬 때, ‘학교생활협약운동’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생활협약운동’을 진행한 원당초 학부모 장영희(33)씨는 “형식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모두 함께 약속을 하고 나니 좀 더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었다”며 학교와 부모가 아이를 함께 키우는 든든한 기분이라고 했다.
학부모 협약 예시 (화천중) | 교사 협약 예시 (원당초) |
아침밥 챙기기, 일주일에 1회 이상 식구가 다함께 식사하기 | 등하교 시간 학생들과 마주쳤을 때 다정하게 먼저 인사하기 |
등하교시 눈 맞추고 안아주기, 사랑한다 말하기 | 개인적인 일에 공감하고 대화와 상담 많이 하기 |
감정적으로 화내지 않기, 비교하지 않기, 칭찬 많이 해주기 |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
이야기 귀담아 듣기, 같은 잔소리 반복하지 않기 | 엉뚱한 질문에도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대답해 주기 |
J.R 로우얼은 이렇게 말했다. “강요당하고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 그리고 지킬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아이들은 스스로 한 약속을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할 때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약속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자. 그리고 소리 높여 말해보자. 우리 아이들 모두기 자신의 꿈을 찾고 웃으며 생활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에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약속해야 할 때가 아닐까.
도내 24개 참여 학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4년도에는 모든 학교가 협약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11월 16일 오전 10시부터 ‘원주따뚜공연장’에서 “평화로운 학교 만들기 걷기대회”가 펼쳐진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할 약속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참가자에게는 완보증과 봉사활동 확인증도 발급된다.
현정희 리포터 imh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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