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입학 직후 모든 게 아직 낯설고 같은 반끼리도 서먹한 3월의 교실. “수업 중 선생님의 질문에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하고 머리 끄덕이며 리액션하는 나를 모두들 신기한 듯 쳐다봤어요.” 수업내용을 잘 이해하는 학생도 잘 모르는 학생도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걸 어색해 하는 교실 풍경에서 박은서양은 독특한 존재감을 가진 아이였다. 하지만 차츰차츰 반 아이들은 하나둘씩 박양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수업 분위기는 한층 진지해졌다.
‘내 공부는 내가 주인’
일반고 가운데 드물게 기숙사가 있는 영동일고. 박양은 고1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공부 습관을 몸에 배게 하고 싶어서 기숙사를 선택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효과적이에요. 매일 1시간씩 아침자습, 저녁에는 6시40분부터 11시 반까지 자습시간을 꼬박꼬박 지켜야 해요. 덕분에 책상 앞을 몇 시간이고 꼼짝 없이 지킬 수 있는 엉덩이의 힘이 길러졌어요.”
그는 고교생이 된 뒤부터 학원을 다니질 않는다. 학원이 짜 놓은 시스템에 자신을 맞추고 싶지 않아서다. “학원 안 다니면 불안해하며 심지어 5군데씩 다니는 친구들 보면서 ‘내 공부는 내가 주체’가 돼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내 공부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 없다’는 오기는 학교 수업 시간에 최대한 몰입하게 만들었다. “선생님 머릿속의 지식을 몽땅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과 실천이 차곡차곡 쌓이니까 상승효과가 나타나더군요. 경험상 ‘내신 시험 대비는 곧 수업이 반’이더군요. 수업 중 선생님의 강조 억양만 주의 깊게 살펴도 예상문제의 감이 잡혀요.”라마 빙긋 웃는다.
기숙사 친구들과의 ‘시험 직전 스터디’도 그가 꼽는 공부 비결. 국어, 영어, 수학, 사탐 등 서로서로 과목을 정해 예상문제를 뽑아 문답식으로 공부하는 방식이 효과가 좋다고 덧붙인다.
“시험기간 중에는 다들 기숙사 독서실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책을 봐요. 이런 선의의 경쟁분위기가 좋은 공부 자극제가 되죠.” 전교 최상위권 등수를 줄곧 유지하고 있는 그가 자신만의 공부노하우를 귀띔한다.
국어, 영어는 어릴 때 부모님이 길러 준 독서 습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독해력과 속독이 공부에 도움이 돼요. 국어는 지문분석과 핵심어 파악, 줄거리 써보기를 틈날 때마다 해요. 영어는 워낙 실력이 쟁쟁한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교과서, 부교재를 구석구석 샅샅이 외워요. 특히 문법문제에서 점수가 벌어지기 때문에 막히는 부분은 바로바로 책 찾아보며 머릿속에 정리합니다.”
반면에 수학은 그도 성적의 등락폭이 커 녹록치 않은 과목이라고 털어 놓는다. “수학은 절대적인 시간 투자가 필요해요. 지난 겨울 방학 때는 ‘한판 붙어보자’ 단단히 벼르고 매일 수학만 집중적으로 팠어요. 그렇게 하니까 수학의 맥이 잡히더군요.”
‘긍정녀 DNA’는 부모님 덕분
공부 뿐 아니라 학교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이나 동아리 활동에도 팔 걷어붙이고 참여해 인생의 한번뿐인 ‘즐거운 고교시절’을 만끽하려 애쓴다. “지난번 논문 대회 때는 ‘한글은 한글로써 온전히 아름답다’는 테마를 가지고 설문 조사를 하고 관련 자료 모으며 답사도 다녔어요. 그런 다음 팀원들끼리 우리 나름의 개성과 참신함을 논문에 녹여내려고 애를 썼지요. 3개월 남짓 투자한 즐거운 작업이었고 결과도 좋았어요. 뭐든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세대 모의UN회의에 참가하고 서울대에서 열린 미리 듣는 대학강의도 꼬박꼬박 챙겨 들으며 경험치를 넓혀가는 중이다.
박 양이 또래 친구나 교사들 사이에 ‘여장부, 긍정녀, 열정인’으로 통할만큼 반듯하게 자란 비결은 부모님 덕분. 그 스스로도 부모님 딸로 태어날 걸 최고의 행운으로 꼽는다.
“어릴 때부터 가족끼리 대화가 많았어요. 온가족이 빙 둘러 앉아 늘 책을 읽었고 여행도 자주 다니며 ‘공감’의 시간을 가졌어요. 중3 사춘기 무렵 공부 때문에 방황하던 시절에도 딸에게 무한 신뢰를 보여준 부모님 덕분에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죠. 기숙사에 있는 지금도 아빠랑 매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아요.”
‘준법 가르침’이 변호사의 꿈 품게 해
특히 경찰관인 박양의 아빠가 늘 강조하는 제1 덕목은 준법정신과 책임감. 어릴 때부터 교통신호 지키기 같은 일상 속에서 법을 지키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엄하게 배웠다. 특히 법제처의 어린이 법제관으로 활동한 덕분에 우리나라 헌법, 법률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변호사를 장래 희망으로 품게 됐다.
“고1 국어시간에 ‘너희는 상위 5%의 혜택을 받고 자란 만큼 앞으로 나머지 95%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소름 돋을 만큼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국선변호,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변론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인생 좌표를 세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렷한 목표가 있는 그에게서는 공부도 교내외 활동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욕심’이 느껴진다. “나의 빈 구석을 새로운 정보, 지식,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채워 놓고 싶어요. 그 과정 하나하나가 즐겁거든요.”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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