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지역내일 2013-10-13

불휘 기픈 남 매 아니 뮐 곶 됴코 여름 하니
미 기픈 므른 래 아니 그츨 내히 이러 바래 가니 (용비어천가 제2장 중)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과 열매가 많이 열리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으니 냇물이 이루어져 바다에 간다.


용비어천가의 한 대목이다.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근간이 튼튼하고 깊이가 있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결국 좋은 결실을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비단 나라와 민족의 역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적용되는 만고의 진리이다. 하지만 그 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그 샘이 얼마나 깊은지는 쉬이 확인 할 방법이 없다. 평소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뿐이다. 평소에는 뿌리가 깊은 나무도, 뿌리를 얕게 내린 나무도 그저 똑같은 나무일 뿐이고, 샘이 깊은 물도 샘이 얕은 물도 다 같은 샘물일 뿐이다. 오히려 화학 비료로 빨리 잎을 달고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사람들의 눈에 더 잘 띄고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도 있다. 오히려 예쁘게 꾸며지고 가꾸어진 샘물들이 더 많은 발길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센 바람이 몰아쳐서 제 힘으로 뿌리를 뻗어 나가지 못한 나무들이 쓰러지고 뽑혀 나갈 때, 그 자리에 의연히 서있는 뿌리 깊은 나무의 진가는 비로소 드러난다. 오랜 가뭄에 다른 샘들이 말라 사그라질 때, 변함없이 맑은 물이 솟아올라 내를 이루고 바다로 이르는 그 샘의 진가는 비로소 드러난다.


요즘은 참으로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과도한 경쟁과 비교에 기초도 채 단단히 쌓지 못한 채, 위로 위로 레벨만 높아지고 눈높이만 높아졌다. 아이들이든 부모님들이든 뿌리가 얼마나 튼튼히 내렸는지보다는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만 신경 쓴다. 샘이 얼마나 깊으냐보다는 얼마나 예쁘게 꾸며졌느냐만 바라본다. 

그래서 눈으로 쓱 한번 훑어 보아 내 것으로 채 소화되지 못한 것들도 다 아는 것인 것마냥 착각하고, 남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이 마치 내 생각인 양 넘어간다. 힘들다는 이유로, 그리고 금방 표시가 안 난다는 이유로 직접 읽어보고 써보고 생각하는 모든 과정이 생략되어 버렸다. 수없이 많은 단어를 외우긴 했는데 활용할 줄 모른다. 문법 설명을 듣긴 했는데 실제로 활용 해 본 적도 써 본 적도 없다. 어려운 원서들을 읽긴 했는데, 내 언어로 요약해 본 적은 없다. 하긴 했는데 힘들여서 내가 한 것이 아니라서, 내 뿌리가 되지 못하고 내 샘이 되지 못했다. 내 것으로 남은 것이 끝에 가서는 별로 없다. 그래서 막상 하나하나 확인하고 짚어 들어가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다. 특히나 이는 간단히 글의 요약문을 써보게 하거나 에세이를 써보게 하면 여실히 드러난다. 문장 하나 하나를 의미 있게 연결하지 못할뿐더러, 스스로가 어떤 주제로 무엇을 쓰고 있는지 무얼 쓰려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굳이 에세이까지 가지 않더라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내용이 어려워지면서, 해야 할 양이 많아지면서 그 실력은 결국 드러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왜냐하면 차근히 하나하나 다져서 아이 스스로 소화해 내도록 하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노력도 필요한데, 그 과정이 힘든 것은 물론이요, 내가 이렇게 다지는 동안 남들은 먼저 저만치 가버리는 것 같아 뒤쳐지는 느낌도 싫어서다.


뿌리 얕은 나무는 쓰러지게 마련이고, 얕은 물은 쉬이 말라버린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비록 화학 비료로 쉽고 빠르게 무성한 녹음과 화려한 꽃을 피울 수도 있지만, 결국 쉬이 시들어 결국엔 제 힘으로 문제 하나 풀어내지 못하고 올바른 문장 하나 제대로 써 내지 못하는 그런 나무가 아니라, 뿌리부터 튼튼하여 제 힘으로 멋진 에세이도 쓸 수 있는 그런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샘이 깊은 물이 되었으면 한다. 남들이 뱉어내는 말들을 마치 내 것인 양 따라 하며 곧 그 지식의 얕음을 바닥내 버리는 그런 샘이 아니라, 하나 배우고 다져서 생각하고 정리하여 나만의 언어와 생각을 끊임없이 솟아낼 수 있는 그런 작지만 맑고 깊은 샘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우리 부모님들이, 아이가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로 자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주고, 힘들더라도 포기 하지 않도록 격려해 주었으면 한다.  


빅토리아 원장
디딤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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