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인] ‘맥주 장인’ 브루마스터 송훈

하우스맥주에 반해 술 빚는 남자

지역내일 2013-09-10

잠실 롯데호텔의 맥주펍 메가씨씨. 국내에서 손꼽히는 하우스맥주집이다. 밋밋하고 얕은 공장 맥주맛에 싫증난 사람들이 쌉싸래하면서 톡 쏘는 맥주의 ‘참맛’을 음미하기 위해 즐겨찾는 곳이다. 하우스맥주맛이 입소문 난 덕분에 중국, 일본 등 외국인 손님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 800석 규모의 맥주펍은 밤마다 ‘다국적 술집’으로 바뀐다.

송훈

20대...독일로 맥주 유학 떠나다
 2005년 메가씨씨가 문을 열 때부터 술을 빚어 온 주인酒人) 송훈 과장. 대한민국 브루마스터(맥주양조기술자) 1세대로 ‘맥주 장인’이라는 닉네임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홀과 주방을 지나 통유리 너머의 공간은 커다란 양조 탱크들로 꽉 채워져 있다. 이곳이 술 빚는 그의 일터이자 꿈터이다.
 맥주 재료는 물, 맥아, 홉, 효모 단 네 가지. 단출한 재료들에 그의 양조 기술을  버무려 한 달가량의 인고의 시간을 거치면 맛깔스로운 술로 변신한다. 하우스맥주는 제조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해 재료의 블렌딩 비율, 온도, 압력의 미세한 차이만으로 맛이 달라질 수가 있다. 하우스맥주 마니아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귀신 같이 알아채기 때문에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 
 “재료 구입, 설비 점검, 최고의 재료를 골라낼 줄 아는 안목, 양조기계의 메커니즘을 훤히 꿰는 엔지니어의 역량, 예민한 혀의 감각, 마케팅 능력까지... 브루마스터가 갖춰야 할 덕목들이 꽤 많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배낭 메고 훌쩍 고모부 내외가 사는 독일로 여행을 떠났다. 맥주 천국인 독일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맥주의 매력에 눈 뜨게 됐고 고민 끝에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귀국 후 제일 먼저 독일 문화원에 다니며 독일어 기초부터 닦기 시작했다. “브루마스터 과정은 뮌헨공대와 베를린공대가 쌍두마치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명문이고 독일인들도 졸업이 쉽지 않은 곳이죠. 이 가운데서도 넘버원인 뮌헨 공대 양조학과를 염두에 뒀어요. ‘맥주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20대의 패기와 열정을 담아 입학원서를 보냈고 결국 합격 통지서를 손이 쥘 수 있었습니다.”
 출국 전까지 경기도 이천 OB맥주 공장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며 우리나라 공장맥주의 제조 과정을 익혔다. 마침 공장장이 뮌헨공대 출신이라 여러 가지 조언까지 받을 수 있었다.
 1999년 우리나라에서 ‘맥주 유학생’이 드물던 시절, 하우스 맥주 장인의 요람 독일에서 정통 ‘맥주학’을 기초부터 마스터 과정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한국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지만 공부의 깊이와 분량은 만만치 않았다.
 “물리, 수학, 화학, 냉동 공학, 역학, 식품법, 경영학 등 공부할 분야가 방대했어요. 뿐만 아니라 맥주의 원료인 보리를 씹어보며 종자 맛의 미세한 차이가 술맛에 어떻게 발현되는 지 혀로 새겨보게 하는 기본기를 다지는 교수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일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죠.”
 석사 과정을 마친 뒤에는 칼스루이스 헤프너 브루어리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독일 전역에는 1300여개의 양조장이 있는 데 그가 일한 곳은 중형 규모의 브루어리로 호텔식 하우스 맥주도 판매하는 곳이었다.
 “뮌헨대학에서 배운 기술이 술을 빚을 때 어떻게 활용되는 지 체득할 수 있는 리얼한 ‘현장 교과서’였어요. 보리 빻고 청소하는 허드렛일부터 행정업무까지 두루 익혔죠.” 

30대...  브루마스터 맏형이 되다
 2005년 귀국 후 지금까지 줄곧 잠실롯데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하우스 맥주펍 메가씨씨의 터줏대감이다. 기계설비 세팅과 테스트, 첫술 빚기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손님들에게 선보이는 맥주는 바이젠, 둔켈, 필스너 세 가지. 손님들 사이에 최고 인기인 밀 맥주 바이젠은 독일 뮌헨의 대표 맥주로 과일향이 나면서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둔켈은 구수한 흑맥주고 체코에서 선보인 필스너는 쌉싸래한 뒷맛이 특징이다. 이들 맥주는 방부제나 첨가제를 넣지 않고 효모가 살아있어 맛도, 영양도 풍부하다.
 그가 한 달에 빚는 술은 약 1만 리터. 맥주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 뿐 아니라 송년 모임이 잦은 연말이 가장 바쁜 시즌이다.

40대... 하우스맥주 르네상스 꿈꾸다
 국내에 브루마스터란 직종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주인공이라는 자부심 못지않게 하우스맥주가 대중화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도 크다. “국내산 공장 맥주는 시장 점유율이 95%인 반면에 하우스 맥주는 0.3% 수준입니다. 마셔본 사람들은 ‘맛있는 맥주’라고 치켜세워주지만 유통 제한과 높은 세율 등 장벽을 뛰어 넘기가 어렵습니다.”
 브루마스터 맏형으로서 그는 대학, 문화센터 등지에서 맥주 강의를 하고 하우스맥주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하는 등 다방면에서 뛰고 있다.
 “언제고 ‘송훈표 맥주’를 훨씬 더 다양하게 선보일 겁니다. 20대 때 우연히 만난 ‘맥주’는 평생을 걸 만큼 매력적입니다.” 새벽까지 일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맥주 예찬론을 펼치는 그의 눈은 반짝거렸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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