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길동사거리 부근 11층 규모의 아웃도어파크빌딩. 암벽을 형상화한 독특한 외관 때문에 이 일대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는 아웃도어 스포츠인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최영규 아웃도어파크대표의 소망이 오롯이 담겨있다. ‘산쟁이’에서 비즈니스맨으로 지금 자리에 서기까지 롤러코스터 같았던 40년 아웃도어 인생사를 들어보았다.
사업 ‘촉’이 좋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하는 최 대표를 보고 사람들은 말한다. 각종 배낭 제작은 물론 콜맨, 스노우피크 등 해외의 유명 캠핑 브랜드를 비롯해 전문가급 자전거, 등산장비, 의류 등 대다수 아웃도어 용품을 선보이며 수출과 내수를 아우르고 있다. 그가 세운 회사의 연매출은 350억원 규모. 창업 23년 만에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서 튼실히 자리 잡았다.
‘산쟁이’ 출신 CEO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묻자 40년 전 추억 보따리를 술술 풀어냈다.
설악산에서 추락 후 그의 선택은?
서울고 산악반 동아리에서 맛본 산의 매력은 고교생 최영규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때부터 전국의 암벽, 빙벽을 겁 없이 올랐다. 한양대에 입학한 뒤로는 산에 푹 빠져 살았다. “늘 ‘톱쟁이(등반 시 맨 앞에 가는 사람)’ 였어요. 사고 위험은 높았지만 짜릿함도 최고였죠.”
20대 혈기왕성한 청년은 국내외 전문산악인들과 친분을 쌓으며 평생 산에서 살겠노라며 알프스의 산악 가이드를 꿈꿨다.
하지만 그 꿈은 꿈으로만 남았다. 대학교 2학년 겨울, 당시 산악인들의 로망이었던 설악산 토왕폭포 빙벽을 오르다 40m 아래로 추락했다. 사고 후유증은 컸다. 다리골절과 심한 동상으로 오른쪽 발가락 5개를 모두 잘라내야만 했다.
오랜 재활치료 후 다시 산을 찾았다. 다리가 불편한 탓에 ‘톱쟁이’ 자리는 다른 사람 차지가 됐고 짜릿한 스릴이 반감되자 예전만큼 산 타는 게 즐겁지 않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산 사내’는 대학 졸업 후 착실한 샐러리맨의 길을 택했다. “섬유공학 전공을 살려 섬유회사인 코오롱 상사에 취직은 했는데 6개월쯤 지나니까 일이 지루하더군요. 그러다 레저용품을 취급하는 코오롱스포츠가 눈에 들어왔어요.”
당시만 해도 코오롱스포츠는 그룹 내 찬밥 신세라 기피 부서로 꼽혔던 곳. 2년을 졸라 이 부서에 자원해 갔다. 스포츠용품 기획 업무를 맡게 된 그는 취미가 업(業)이 되자 물 만난 고기처럼 신명나게 일했다. 운도 따랐다. 레저 붐이 일면서 매출이 쑥쑥 늘었고 그룹 내에서도 알짜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10년쯤 지난 뒤 차장 승진을 앞두고 코오롱맨으로 남을 것이냐 독립할 것이냐를 좋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태생적으로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닌지라 승부수를 던졌지요.”
1990년 1월1일 장안평 후미진 곳에 ‘아웃도어디자인’이란 상호로 회사를 만들었다. 산사나이 뚝심으로 1년에 단 이틀만 쉴 만큼 미친 듯이 일했다. 대학 시절 암벽을 타며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왔던 일본인 친구 덕분에 신생 브랜드 몽벨을 국내에 들여올 수 있었다. 주전공인 상품 기획 노하우를 살려 한국인 체형에 맞는 레저용품을 일본 본사에 제안하면서 라이센스 생산까지 하며 사업 기반을 닦아 나갔다.
“희한하게도 산에서 만난 선후배와의 인연 덕분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얼떨결에 배낭공장을 떠맡아 제조업에 뛰어 든 뒤 몇 년 후에는 베트남에 공장까지 세웠고 취미로 산악자전거를 타다 선배 소개로 자전거 사업도 시작하게 됐죠. 운 좋게 사업 타이밍이 유행 보다 한발 앞섰고요.”
‘미쳐서 사니 길이 보이더라’
불도저처럼 겁 없이 밀어붙이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일본 몽벨사에 납품한 제품에서 하자가 회사가 망할 뻔도 했고 남미 엘살바도르 공장은 적자가 누적돼 문을 닫는 뼈아픈 실패도 겪었다. 그러면서도 사업가로서 끊임없이 담금질해 나가며 인생을 배웠고 사람을 얻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늘 일이든 취미든 미칠 때까지 해보라고 해요. 미쳐야 갈 길이 보입니다. 내가 산악자전거에 빠졌을 당시 MTB, 로드, 미니벨로 등 온갖 자전거를 섭렵했고 동호회원들 이끌고 경기도 일대 산을 달리며 산악자전거 루트까지 개발하며 자전거의 모든 걸 마스터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 전 세계에 자전거 열풍이 불었고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죠.”
산이 이어준 인연 덕분에 지금의 CEO 최영규가 있다고 믿는 그는 브레이크 없이 살아온 인생을 잠시 숨고르기 하며 아웃도어 1세대로서 ‘의미 있는’ 사회 공헌을 고민 중이다.
“아웃도어인들을 위한 허브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옥을 지을 때도 그걸 염두에 두고 공간을 꾸몄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일에서 잡(job)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이 투철한 ‘산쟁이 CEO’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