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터뷰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권오남 교수

지역내일 2013-08-26 (수정 2013-08-26 오후 6:24:05)


수학, 좋아하면 즐기게 되고 즐기면 잘하게 됩니다
스토리텔링 모델 교과서 연구책임자이자 교육과정평가원 자문, 정책과제인 ‘창의 인성 수학 프로젝트’를 청소년 눈높이 맞춰 풀어내






일반계고 수학 평균이 50점이 채 안되고, 고등학생의 60%가 수학을 포기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수학성취도는 세계 2위라는 사실. 어려서 수학을 잘하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제해결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힘들게 공부했지만 필요할 때 써먹지 못하는 수학교육을 바꾸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스토리텔링 수학이 바로 그것. 원리와 개념, 수학자 혹은 실생활 활용 등 수학 속에 담겨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으로 기존의 문제풀이와는 다르게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지원하는 스토리텔링 고등학교 모델 교과서 과제 연구책임자이며, 2012년도부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문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학교육자인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권오남 교수. 그에게 변화하는 수학교육의 방향과 이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들어보기 위해 서울대학교를 찾았다.


‘왜 수학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한다!
“맥락이 없이 지나치게 추상화된 기호의 나열. 기존의 이러한 수학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수학과 멀어지게 만들었어요. 스토리텔링 수학은 여기에 이야기를 접목한 것입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인 교육 방법이죠.”
기호에 살을 붙이고 개념과 원리에 숨겨진 이야기라는 옷을 입히면 한권의 소설책을 읽듯이 수학을 즐길 수 있다. 이처럼 알고보면 수학은 어느 학문보다 흥미롭고 인간적이며 따뜻한 학문이라고 권 교수는 설명한다.
“사실 우리를 둘러싼 세상 어느 것도 수학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수학은 실생활적인 학문이랍니다. 수학을 가르치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발견해가는 기쁨을 주는데  소홀했던 것이 문제였죠. 수학이라는 학문을 탄생시킨 서구사회는 수 세기에 걸쳐 고민하고 토론하며 완성한 것들을 우리는 수십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배워야 했기에 주입식 문제풀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지만요.”
하지만 이제는 개념과 공식을 암기하고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활용하는 수학’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권 교수는 강조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학생들이 ‘왜 수학을 해야하는가?’라는 의문을 품는 것부터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형 수학강의로 명성, 서울대학교 교육상 수상
“매일 보는 정치, 경제 뉴스 속에도, 스포츠 경기 속에도 수학이 있어요. 예를 들어 ‘행렬’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이 개념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생각해봐야 하고 수학과 다른 과목과의 연계성을 찾아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의문으로 스스로 문제도 만들어 보면 좋겠죠? 스토리 속에서 기호를 유추해 내는 것, 이것이 진짜 수학 공부의 출발입니다.”
권 교수의 수학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그의 강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역동적인 토론식 강의는 서울대에서도 명강의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서울대학교 교육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제9차 국제수학교육대회(2000)에 한국인 최초 초청 강연을 했고, 제12차 국제수학교육대회(2012) 국제조직위원, 유네스코와 국제수학연맹에서 주관하는 ‘Mathematics of Planet Earth 2013’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수학은 학생이 주도하고 직접 참여하면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학문이에요. 제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방식에서 벗어나 토론형 강의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르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내재된 지식을 상기하게 되죠. 또 반박을 통해서 스스로 무엇을 모르는 지를 자각하면서 사고가 확장되고 수학적 문제해결력이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이들이 수학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자녀를 수학을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학부모들의 바람일 것이다. 수학교육의 최고 권위자인 권 교수도 같은 고민을 한다. 고등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이기 때문.
“저도 여느 학부모님들과 똑같이 아이의 교육이 걱정이에요. 6학년 때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하기 위해 강남에 있는 학원에 큰 아이를 데려간 적이 있어요. 프로그램에 들어가려면 수학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입반 테스트를 봤는데, 100점 만점에 20점이 나온 거예요. 깜짝 놀랐죠.(웃음) 학원은 입반을 허락했지만 제가 보내지 않았어요. 그 분들의 잣대로 아이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 뒤로 혼자 공부한 큰 아이는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원하던 학교에 진학했고, 고등학교 2인 지금 누구보다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고 권 교수는 귀띔한다. 부모의 조급함과 불안함이 자녀들을 지나친 선행학습에 내모는 교육의 현실이 그는 몹시 안타깝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학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혀주려고 노력했어요. 수학동화, 수학만화, 수학자전기 등 수학관련 책을 많이 읽었고, 생활 속에서 수학을 체험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이러한 수학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경험들이 고등학교 이후에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생활 속에서 흥미로운 수학거리를 찾아 토론해보세요
올해부터 초등학교 1·2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용한 수학교과서가 도입됐다. 새롭게 바뀐 교과서에 대해 70%가 넘는 학부모가 ‘너무 어렵다’는 반응이다. 의도는 좋으나 아직 정확하게 개념을 잡기가 모호한 부분이 있어 대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 권 교수에게 그 해답을 물었다.
“수학은 생각하는 과목입니다. 정답을 찾는데 익숙한 학부모들에게 스토리텔링 수학은 모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또 서술형 논술형으로 평가하는 것도 당황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과거의 프레임에 갇히면 아이는 수학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고 수학 교과 수준이 높아지는 중·고교 땐 수학 포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생활 속에서 얼마든 흥미로운 수학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권 교수는 조언한다. 물건을 만져보며 수와 공간감 등 수학 공부에 필요한 감을 익힐 수 있고, 과학체험관, 수학체험관, 미술관에서도 융합수학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서트에서 박자감, 미술관에서 소실점과 원근법에 대해 아이와 대화해보세요. 다양한 장르 속에 숨은 수학적 요소를 찾는 연습을 하면 융합수학을 잘할 수 있어요. 수학관련 동화를 읽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과정에서 아이는 스스로 해법을 찾아낸답니다.”
우리 교육의 핵심과제인 창의와 인성. 권 교수는 수학교육에 창의와 인성을 접목시킨 이른바 ‘창의인성 수학 프로젝트’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낸 장본인이다.
“창의와 인성은 관념적인 말로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수학이라는 과목에 어떻게 창의와 인성까지 넣을 수 있을까? 수학 공부를 하면서 협동과 배려, 정의, 인내심, 존중과 같은 인성적 요소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수학이 차가운 이성의 학문인 수학이 따뜻한 감성이 살아 숨쉰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춘희 리포터 chlee1218@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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