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6학년 때 토플 점수가 120점 만점에 100점을 받았다는 조유헌군. 영어를 유독 잘하는 비결을 묻자 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작은 수첩을 꺼내 보여준다.
“모르는 단어를 한 장에 하나씩 따로 정리했어요. 쉬는 시간 틈틈이 단어장을 보며 외워요. 확실하게 암기한 단어는 따로 빼놓고 다시 모르는 어휘를 추가하고... 이걸 무한 반복하죠. 걸어 다닐 때는 영어 듣기 연습하고.” 중학교 때 이미 해리포터 시리즈를 원서로 7권까지 독파한 실력자지만 그는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걸 되뇌며 공부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한다.
고교 입학 후 줄곧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조군. 하지만 중학시절 ‘롤러코스트 성적표’를 충분히 받아본 덕분에 고교시절 내내 마음을 다잡고 공부할 수 있었다며 멋쩍게 웃는다.
‘엄친아’ 중학생 된 뒤 책 덮어
“외동아들로 자라 수줍음이 많았는데 우연히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시험을 꽤 잘봤어요. 주위에서 칭찬이 쏟아지니까 우쭐해졌고 그 맛을 알면서부터 시험 때마다 신경을 많이 썼어요.”
공부한 만큼씩 계속 오르는 시험 점수에 신이 났고 올백의 기쁨도 맛보았다. 책벌레 소리를 들을 만큼 책에 빠져들며 ‘엄친아’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청심국제중 입시에 낙방하면서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내심 영어실력을 자신했던 터라 충격이 컸어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점수 오르는 재미에 공부를 했는데 어느 순간 ‘왜 공부하지?’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을 고민하니까 답을 못 찾겠더군요.” 미련 없이 책을 덮었고 축구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축구 통해 얻은 선물
“매일 운동장에서 살았어요. 가끔씩 새벽 1시까지 공을 찬적도 있어요. 운동 실력이 빼어난 것도 축구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뛰노는 게 마냥 좋았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최상위권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 쳤다. 학교와 학원을 습관적으로 오갈뿐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없었다. 숙제를 안 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요란스럽게 사춘기 방황을 한 셈이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에게는 꼭 필요했던 ‘통과의례’였다고 단언한다. “그전까진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이라 또래들 사이에선 트러블 메이커였어요. 당연히 친구도 없었지요. 그러다 흙먼지 속에 함께 뒹굴며 축구를 하면서 친구가 하나 둘 생겼어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목표를 항해 다함께 합심해서 윈윈하는 법을 공을 차면서 터득해 나갔다. 운동의 기본기가 튼실하지 못하다는 걸 절감하고 따로 축구 지도까지 받았지만 쉽사리 실력은 늘지 않았다.
“중3 여름방학 때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리프팅 20개 하기를 목표로 세우고 연습에 돌입했어요.” 처음엔 3개도 못했던 리프팅을 독하게 마음먹고 매일 600개씩 연습했다. 비오는 날에는 비를 흠뻑 맞으며 찌는 듯이 더운 날에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에 몰입하자 방학이 끝날 무렵 리프팅 20개를 가뿐하게 성공시킬 수 있었다.
“아~ 이거구나. 목표만 분명하다면 하면 되는 구나.”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이 그를 부쩍 성장시켰다. 어릴 적 막연하게 뇌의학자가 되고 싶다고 품었던 꿈을 ‘꼭 이뤄야 할 목표’로 정했다.
“사그라들었던 공부 열정이 조금씩 되살아났어요.” 덮었던 책을 다시 펴고 책상 앞에 앉은 뒤로 전교 150등 밖으로 뒤쳐졌던 성적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미겔 니코렐리스의 ‘뇌의 미래’를 인상 깊게 봤어요. 공학과 의학을 연결해 융합 학문의 관점에서 쓴 글이 재미있더군요. 어릴 때부터 인간, 마음의 본질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생물탐사반, 생물반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고1,2 때 주제를 정해 팀원들과 함께 썼던 두 편의 논문을 뿌듯한 기억으로 꼽는다. “고덕생태공원에서 서식 곤충을 관찰하며 생태복원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자전거도로에서 로드킬(road kill) 당한 생물을 조사했어요. 단순 연구로만 끝나지 않고 계몽활동까지 병행했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많았고 보람도 컸지요.” 이 논문으로 학교에서 개최한 동북노벨상에서 은상,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beyond me!'' 마음에 새기며 고3 초조함 극복
그는 고2 겨울방학 때 공들여 준비한 생물올림피아드대회 1차 후보자로 선발돼 4박5일간 서울대에서 합숙 교육을 받은 걸 고교시절 최고의 추억으로 꼽는다. “전국에 모인 과학 영재들과 사귀며 갖가지 과학 실험을 다해 보았어요. 고교 울타리를 넘어 넓은 세상을 경험했다는 자부심, 내 꿈도 함께 커진 듯한 뿌듯함이 교차했어요. 특히 서울대 야경이 멋졌지요(웃음).”
사춘기 방향을 딛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착실하게 고교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조유헌군에게도 고3 생활은 녹록하지 않다고 말한다. “감성적인 성격 탓에 고3이 되니까 많이 초조해했는데 바로 성적에 나타나더군요. 요즘엔 ‘못한 걸 후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며 나 스스로를 극복하는 중입니다.” 싱긋 웃으며 도서관을 향하는 조군의 뒷모습이 듬직해 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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