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교사부부 가족, 545일간 세계여행 후 3년

옥패밀리의 자녀 독립 프로젝트 ‘학벌보다 실력이다’

지역내일 2013-07-09

 ‘100명의 아이에겐 100개의 꿈이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점수에 벌벌 떨고 스펙에 목숨 거는 중고생들에게는 사치스러운 ‘꿈 이야기’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중고생 아들딸을 중퇴시킨 뒤 세계 여행을 떠난 전직 교사 부부가 있다. 545일 후 돌아온 그들은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학벌보다 실력이다.’ 외치며 진로 개척을 선언했다. 학벌지상주의 한국에서 3년 째 고집스럽게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 옥패밀리를 만나보았다.

옥패밀리


 22년간 교사였던 옥봉수, 박임순 부부. 삼남매를 세상의 기준과 다르게 키우고 있는 그들은 학교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교실 삼아 ‘전국구 선생님’으로 맹활약중이다. 최근에는 그들이 겪은 자녀교육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은 <자녀 독립 프로젝트>를 펴낸 뒤 더욱 바빠졌다.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 중고생이었던 두 아들과 딸은 2년 반 동안 지구촌 구석구석을 경험하고 난 뒤 ‘고교 졸업 뒤에 무조건 대학 가야하나? 학업-직업의 순서를 직업-학업으로 바꾸면 어떨까?’라며 세상의 상식을 뒤집고 자신들이 설계한 인생 계획표대로 꿋꿋하게 살고 있다. 삼남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옥봉수 부부는 대하드라마 같았던 지난 6년간의 스토리를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성적표에 무너진 가정, 퇴직금 들고 세계여행
-입시에 올인해야 할 중고생 자녀들을 자퇴시키고 세계 여행을 떠난 이유가 뭔가요? 부모 둘 다 교사였는데.
 “우리 가정의 회복을 위한 절박한 승부수였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큰 딸의 성적표를 본 뒤로 우리 가정은 ‘숫자’에 무너졌습니다.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하다니’ 자존심이 허락을 안했죠. 아이를 붙들어 앉히고 공부하라 다그칠수록 엇나갔어요. 가출, 마트 절도, 나중엔 대안학교까지 보내며 떨어져 지냈죠. 두 아들은 냉랭한 집안 분위기만 살피고 점점 입을 닫았습니다. 아이들 문제로 다투다 우리 부부는 이혼 위기까지 몰렸습니다. ‘소통이 먹통’인 가정이 돼 버렸죠. 사면초가에 몰리자 우리 부부는 돌파구로 세계 여행이란 카드를 뽑아 들었습니다.”


-545일간 세계 여행... 경비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450만원짜리 단칸 전세방에서 둘만의 힘으로 신혼생활을 시작한 뒤로 세 아이 키우며 지방에 집 한 칸 마련한 것이 전 재산이었죠. 우리 부부는 동시에 사직하고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을 가지고 떠났어요.”


  ‘이젠 학벌보다 실력’ 여행하며 발견
-다섯 식구가 여행을 통해 어떻게 바뀌어 갔나요? 소통의 해법은 찾았나요?
  “24시간 붙어있다 보니 다툼이 끊이질 않았죠. 특히 모든 걸 철두철미하게 계획해야 하는 꼼꼼히 남편과 즉흥적인 막내아들의 대립이 압권이었죠.
 하지만 한국에선 부모가 경제력을 쥐고 있는데다 인생 경험도 많으니까 왕 노릇했지만 세계에 나가니까 역전되더군요. 안나푸르나봉 트레킹에 오르다 체육교사 출신 아빠가 고산병 때문에 나가떨어지자 막내아들이 수소문 끝에 약을 구해왔어요. 이렇게 여행을 통해 우리 가족의 상처가 아물고 ‘끈끈한 가족애’가 생기더군요.
 낯선 환경에 비상하게 적응하는 아이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세 아이의 기질과 숨겨진 적성이 뚜렷이 보이더군요. 전 세계 어디를 가든 금방 친구를 사귀는 큰딸은 친화력이 장점이 고 둘째 범생이 아들은 철두철미하고 계획성이 탁월하며 막내는 경제관념이 확실하고 협상 수완이 좋았어요.”


삼남매 자신들의 꿈 위해 ‘주경야독’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녀독립프로젝트를 시작하셨지요?
 “33개국을 여행하다 보니 대한민국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케냐, 미얀마에서는 한국의 과거가 오버랩 됐고 30년 후 우리의 미래는 북유럽을 돌며 힌트를 얻었어요. 앞으로는 ‘학력이 아닌 실력이고 학벌이 아닌 능력’이 중요하다는 걸 다섯 식구 모두 확신했죠. 
 귀국 후 고졸검정고시에 나란히 합격한 삼남매는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적성에 맞는 일부터 찾아 경험을 쌓고 싶다고 하더군요. 부모로서 허락하기 쉽지 않았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일단 믿어보자’는 원칙을 지키기로 했죠. 첫째의 꿈은 토털 미용케어센터 운영자, 둘째는 기계설계를 배워 남미나 아프리카에 기술학교를 세우는 거고 막내는 글로벌 사업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삼남매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3년 전 꿈을 향해 밑바닥부터 시작한 뒤로 큰딸은 병원 코디네이터, 피부미용사 자격증을 땄고 지금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일해요. 둘째는 폴리텍대학에 다니며 컴퓨터건축설계기능사를 비롯해 5개의 자격증을 딴 뒤 병역특례업체에 근무 중입니다. 막내는 전산세무, 전산회계, 기업회계 자격증을 따서 회계사무실에 취업했어요. 사이버대학에 다니는데 5000만원이 모이면 경영학 공부하러 미국 유학 떠나겠다고 벼르고 있어요.
 세 아이 모두 자격증 취득이며 대학 공부를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했어요. 사실 시행착오, 우여곡절 많았고 힘들게 돈 벌며 공부하는 모습 보니까 안쓰러웠죠. 문득문득 간섭하고 훈수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고 지켜봤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은 훌쩍 성장했어요. 돈 벌기가 싶지 않다는 것, 사회경험을 해 보니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부가 더 필요하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하더군요.”


-삼남매의 ‘자녀 독립 프로젝트’가 순항중이고 두 분께서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청소년진로교육과 부모교육, 가족 상담을 위해 ‘가정과 교육 세움터’을 세우고 전국의 부모, 청소년을 만나며 다채롭게 살고 있습니다. 교사 시절 월급의 절반도 안 되지만 행복감, 보람은 훨씬 커요.
 자녀교육에서 중요한 건 ‘적성에 맞는가, 공부하는 목적과 방향이 적립돼 있는가’입니다. 우리 가족이 힘들게 얻은 이 해답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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