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통 풍림아이원 3차 아파트, ‘아, 그 집!’ 사는 사람 얼굴은 몰라도 ‘그 집’ 하면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며, 봄에는 튤립으로 시작해 철철이 다른 경치가 펼쳐지고, 방울토마토, 딸기 등 싱그러운 열매가 맺히는 곳으로 통한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그 집 앞을 무심히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아파트 속 아름다운 텃밭, 그 텃밭을 일구는 김석규, 박수경 부부를 긴 장마의 끝자락에서 만났다.
풀과 작물이 이웃하며 살아가는 알록달록 베란다 풍경
“그간 비바람을 많이 맞아 텃밭이 말이 아니에요.” 이리저리 풀어헤쳐진 식물들을 보듬느라 김석규 씨의 손길이 분주했다. 그 와중에도 아직 파르르한 모습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오이하며 호박이 꽤나 신기하고 기특해보였다. 제법 규모가 큰 텃밭에선 브로콜리, 고추, 피망, 방울토마토, 돌나물 외에도 박하, 맨드라미, 꽃잔디 등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봄에는 튤립, 여름에는 장미가 만발해 베란다에서 바라본 텃밭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사실 잘 정돈된 텃밭은 아니에요. 풀도 무성한 게, 좀 어수선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게 도시농업의 기본이에요. 풀이 땅을 단단하게 지지해주기 때문에 작물들과 함께 자라게 놔두는 거죠.” 박수경 씨는 농약 없이도 작물들이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는다며, 올해는 방울토마토를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전했다. 밥상에 오르는 웬만한 채소는 텃밭에서 따서 바로 먹으니, 신선하기는 이루 말할 수가 없고, 공들인 땀과 노력 덕분에 식감도 남다르다.
“직접 농사지어 먹는 채소는 더 맛있어요. 지금도 용인 원삼에서 주말농장을 시작했을 때 첫 수확했던 열무 맛이 잊히지 않아요. 수확시기를 놓쳐 열무가 억세져버리는 바람에 그 맛을 오래 누릴 수는 없었지만요.” 식물은 사람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서울 집을 오가며 자주 들여다보지 못해서 그리 된 것 같다며 김석규 씨가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과한 것은 독, 기다려주고 일일이 챙겨주는 수고로움이 성공의 비법
시행착오는 최상의 것을 얻기 위한 과정, 결혼 초 독일유학 시절부터 자연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김 씨 부부는 식물 관련 책을 찾아서 연구하고, 직접 키워보며 농사 잘 짓는 법을 터득했다. 친환경퇴비를 쓰니까 실패도 왕왕 있다는 박수경 씨는 “그래도 나중에 식물이 자라는 걸 보면 농약 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잎도 무성하고, 태가 다르다”고 했다. 부부가 고집하는 전통농법은 손이 많이 가는 편. 5년 전부터 일궈온 청명산 주말농장에선 배추도 키우는데, 9월초엔 배추벌레를 잡는 게 일이다. 일일이 배추벌레 잡는 것을 보다 못한 어르신들이 농약을 쳐야 한다면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지만, 수확할 때 당신들과 확연히 다른 김 씨 부부의 실한 배추를 보고 적잖이 놀라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퇴비를 많이 주는 것이 문제예요. 시중의 채소 대부분이 질소과다상태죠. 텃밭을 가꿀 때도 과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에요. 의욕이 넘쳐 물이나 영양분을 지나치게 준다거나, 식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씨앗을 과다하게 심는 거죠.” 토양이 스스로 안정화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김석규 씨는 단단히 일러둔다.
생태+도시농업의 확산으로 정서가 보다 풍요로워지길~
친환경퇴비는 기본, 볶은 계란껍질이나 생선뼈를 식초에 담가 만든 칼슘액비, 농약 대용의 왕겨를 태워 만든 목초액 등 자연의 것을 받으며 좋은 것만 먹고 자란 김 씨 부부의 작물은 당연히 건강할 수밖에. 수고스럽긴 하지만, 액비나 목초액 만들기는 아이들에게 좋은 학습이 된다. ‘농사는 종합과학’이라는 박수경 씨는 빛과 영양분, 공기, 토양 등 식물의 성장조건을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정서순환도 된다고 했다.
“수원텃밭보급소에서 씨앗어린이농부학교를 운영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열심이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친구가 결석하면 자신의 일을 빨리 끝내고, 친구 텃밭을 관리해주는 거예요. 왕따였던 아이도 친구들과 관계가 좋아졌고요.” 최근엔 이런 도시농업이 상자텃밭이나 시민농장분양, 도시농부아카데미 등으로 확대되고 있어 무척이나 반갑다. 좀 더 바라자면 영통에서 생태적인 접근이 접목된 도시농업이 이뤄졌으면 한다. “텃밭모임을 가도 영통에서 오는 사람은 우리 부부 뿐이다. 영통에는 농사지을 자투리땅도 없지만, 대부분이 그냥 유기농 야채 사먹으면 된다는 식이다. 소수라도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도시농업 그룹을 꾸리는 게 우리의 숙제”라는 김 씨 부부에게서 도시농업을 향한 굳건한 사랑이 느껴졌다.
좋은 것을 나누며 천천히 가는 삶,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장마도 끝나가고, 여름이 절정을 향해 가면서 할 일이 밀려든다. 쌈채소며 배추도 심어야 하고, 당장엔 텃밭에 무성한 풀부터 조금씩 다듬어줘야 한다. 박수경 씨가 밭을 일구며 비 오듯 쏟는 땀이 오히려 운동이 되고, 몸에 활력을 가져다준다며 삶의 변화를 늘어놓는다.
“몸이 냉하고 쉽게 처졌었는데, 그런 게 없어졌어요. 마음의 여유도 생겼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시농업을 통해 잘 배우고 있습니다.” 이 좋은 것을 나누기 위해 김석규 씨는 수원텃밭보급소를 만들어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도시농부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텃밭계획표 등 이론과 실기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어 텃밭을 가꾸려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다. 박수경 씨는 방과후 숲유치원, 생태교실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 자연사랑을 키워간다. 때론 텃밭에서 들풀강의를 하고, 이웃에게 텃밭 가꾸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면서 천천히 가는 모습, 이 부부가 사는 풍경이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Tip. 텃밭 가꿀 때는 이렇게~
1.처음 작물은 잘 자라는 상추, 고추, 쌈채소 등 단작 위주로 한다.
2.처음부터 욕심내지 말고, 실험정신을 갖고 시작하는 게 좋다.
3.실내에서 식물을 키울 땐 환기와 물빠짐이 중요하다. 제일 문제가 되는 진딧물 제거는 물 500ml에 손톱만큼의 마요네즈를 넣어 희석시킨 목초액을 사용한다.
4.시중에 판매되는 지렁이 분변토로 흙갈이를 하는 것도 좋다.
5.텃밭가꾸기에도 계획이 필요하다. 다양한 도시농업아카데미를 활용해본다.
*수원텃밭보급소(cafe.daum.net/swgardeningmentor): 수원도시농부학교, 씨앗어린이학교 운영(하반기 씨앗어린이학교는 8월 중 모집예정)
*수원시농업기술센터: 매년 봄 당수동?천천동?고색동시민농장 분양, 상자텃밭보급, 맞춤형 텃밭 프로그램 등의 정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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