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스터가 추천하는 이주의 책 - 가벼운 나날(제임스 설터 지음. 마음산책)

“이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쓴 작가는 생각할 수 없다”

지역내일 2013-07-21



“장면들 자체가 내러티브로, 과거 시제로 진행되지만, 장면 자체는 불멸의 현재를 닮았고, 게다가 불쑥불쑥 현재 시제로 바뀌며 장면의 ‘현재성’을 전달한다. 그림처럼.”
- 옮긴이의 말에서


1975년 출간된 이 소설은 미국 문단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평론가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브렌던 길은 “생존 소설가 중 『가벼운 나날』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쓴 작가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평했고, 퓰리처상 수상 소설가 줌파 라히리는 2011년 4월 [파리스 리뷰]에서 마련한 설터 특집 기고를 통해 “나는 작가로서 이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로 큰 빚을 졌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설터가 세워놓은 높은 기준에 겸허해지고 만다”라고 고백했다. 초판 출간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빛바래지 않는 소설, 세련되고 밀도 높은 문장과 깊은 통찰에 서늘한 희열마저 느끼게 하는 작품이 『가벼운 나날』이다.
비리와 네드라 벌랜드는 교외에서 다소 호화롭게 사는 부부다. 비리는 건축가로, 유명해지고 싶은 바람과 약간의 열등감이 있다. 그의 아내 네드라는 매력적인 여성이자 주부로, 집안과 자신을 잘 가꿀 줄 안다.
두 딸을 키우는 이 부부는 친구들과 저녁 식사 파티를 즐기고 책과 공연에 대해 토론하며, 음악회와 쇼핑과 나들이를 간다. 『가벼운 나날』은 이들의 2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세월의 흐름을 따라간다. 풍요롭고 빛나는 표면 아래, 주인공 부부를 둘러싼 인물 각자의 욕망과 열정이 발산되고 또 점차 사그라진다.
가벼운 나날의 표지는 상의 단추를 푼 여자가 하체를 드러낸 채 앞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이다. 인기척에 잠이 깬 그녀는 서둘러 상의를 입고 립스틱을 바룬다. 무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익숙하게 방으로 들어오는 그를 본다. 착각일까. 누군가의 틀 안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그녀가 보였다.
이 소설은 장편임에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장으로 빼곡하다. 단편에서 보여준 일침 같은 표현과 대화는 물론, 숨을 멈추게 하는 섹시하고 대담한 묘사, 무심한 듯 지적인 통찰이 스민 명문이 눈길을 붙든다.
익숙한 장면을 새롭게 일깨우고, 아주 사소하지만 인물이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게 하는 묘사들에 설터는 뛰어나다. 또한 서문에서 리처드 포드가 “섹스 묘사에 있어 단연 최고”라 한 대로, 특유의 세련된 섹스 묘사로 우리의 감각을 파고든다.
이러한 설터의 소설은 어쩌면 설명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저 인용할 수 있을 뿐이다.


교보문고 천안점
북마스터 이민정
041-558-3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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