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대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할 때

지역내일 2013-07-02

아이들에게 필요한 누군가와 무언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입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마구 쏟아진다. 꿈속에서 겪은 일도, 책에서 읽은 일도, 여러 가지 상상 속의 일도 아이들은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굉장히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아이의 말은 풀잎에 맺혀 있는 투명한 이슬과 같다. 이런 아이의 말을 듣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거나 혹은 거짓말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그건 아이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그건 터무니없는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면 아이의 입은 꼭 닫힌 채 열리지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겪은 기상천외한 일을 들어 줄, 특히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반응해 줄 누군가다. 또한 이런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줄 무언가다.


아이에게 무한한 동력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의 무한한 상상력을 들어줄 이는 많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엄마나 아빠, 형이나 누나, 오빠나 언니 등은 아이의 귀여운 말에 고개를 끄덕여준다. 하지만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능동적인 태도로 아이의 상상력에 반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책은 단순히 아이의 무한한 상상력만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음의 실화를 통해 책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다양한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책 속 주인공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 갖기
# 사례 1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종종 건넨다. 간혹 과장을 너무 심하게 하며 자랑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아이들에게 들통 나고 만다. 곧 아이들은 서로의 관계를 통해 과장을 심하게 하여 표현하는 것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효율적이지 못함을 스스로 깨닫고 현실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옮겨간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변화 모습에 흐뭇함을 느끼던 어느 날, A가 진지한 태도로 심각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으며 ‘방금 한 말 거짓말이에요!’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선생님이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것이 웃기다는 듯. 자기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선생님의 관심을 끌었다는 데 성공했다는 듯. A는 거짓말의 악영향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거짓말 한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집에서 언니가 위기의 상황을 넘기기 위해 거짓말 하는 것을 보고 따라했다고 했다.


 A에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첫 번째는 단순하게 거짓말이 나쁜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앞으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것. 두 번째는 거짓말을 하는 행동이 어떻게 나쁜지, 거짓말을 하면 왜 안 되는지를 깨닫게 해 스스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반응은 무서운 표정과 말투로 경고를 주면 되니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의 내면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을 것이다. 거짓말을 해도 꾸지람을 듣지 않을 상황이거나 꾸지람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분명 거짓말을 할 것이다. 두 번째 반응은 단순히 설명하여 넘어갈 수 없다. 거짓말이 무엇인지 정의부터 시작하여 하면 안 된다는 결론까지 아이가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이를 도와줄 도구가 바로 책이다.
 
 A에게 책 속 주인공이 어떠한 실수를 했는지 잘 파악해 오라는 말과 함께 ‘파스칼의 실수(플로랑스 세이보스 저 | 비룡소)’를 추천해 주었다. 책 속 주인공인 파스칼은 학교에 지각하자 담임선생님께 혼나기 싫어서 자기도 모르게 엄마가 죽었다는 무시무시한 거짓말을 한다. 들킬 뻔 할 때마다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 내다가 결국 들통 나고 엄마의 용서를 받는 내용이다.
 다음 주 수업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수업을 하기도 전에 와서 누구 할 것 없이 파스칼을 꾸짖는다. 누구 하나 파스칼을 옹호해주지 않자, 조용히 있던 A도 파스칼의 거짓말이 너무 심하다고 거들기 시작한다. 논제인 ‘파스칼의 실수가 왜 나쁜지 이유를 파악하고, 파스칼에게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쓰기 위해 토론을 시작했다. 파스칼의 실수가 무엇인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거짓말이라는 공통된 대답이 나왔다. 파스칼의 잘못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가치가 필요한지까지 정리를 했다. A의 입에서는 파스칼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방법을 제시하는 말까지 나왔다. 파스칼의 실수 찾기 수업이 A의 태도 변화에 성공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려운 책과 분량이 많은 글이 무조건 좋다는 틀 깨기
# 사례 2
 처음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태도는 가지각색이다. ‘책읽고 글쓰기’를 한다는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오는 아이, 책읽는 것은 좋은데 글쓰기는 싫어하는 아이, 혹은 모든 것이 다 싫은데 부모님이 시켜서 억지로 온 아이 등 다양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던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과 어울려서 ‘책읽고 글쓰는 활동’을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척척 해낸다. 물론 개인차는 보인다. 하지만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하루는 굉장히 책읽는 것도 싫어하고 글쓰는 것도 싫어하는 B가 왔다. 모든 것이 불만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처음에는 질문하는 내용에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다음 수업 내용으로 진행되지 않는 걸 알았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신기한 것은 수업 시간에 지각을 하는 법은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B는 늘 대답은 볼멘소리로, 글씨도 엉망으로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B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답은 물론이며, 어떤 때는 묻지도 않았는데 책에 대한 생각을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여기서 B의 태도가 단시간에 바뀐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처음에 B가 바른 태도를 가지기까지 반응이 참 난처했었다. B는 책읽는 것도 싫어하고, 글쓰는 것도 굉장히 싫어하여 수업 시간 내내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다. 수업 시간에 책의 재미를 일찍부터 깨우쳐 좋아하는 몇몇 아이들 빼고 글쓰는 활동까지 흥미를 가진 아이는 드물다.
 몇 번 계속 수업을 하면서 아이의 태도로 미루어 짐작해보니, 아이가 잘못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의 수준도 차근차근 올라가야 하는데, 집에 읽는 대부분의 책은 B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또 일기를 쓸 때 짧게 쓰면 분량이 적다고 아무 이야기나 더 적으라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왔었다. 책에 대한 재미를 알고 주도적으로 점차 수준 높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처음부터 ‘어려운 책이 좋은 책’이니 어려운 책을 술술 읽기 바라고, ‘많이 쓴 글이 좋은 글’이니 공책 한 쪽을 깨알같이 채우기만을 바라는 태도가 아이의 잘못된 태도를 낳았다.
 
 B에게 변화가 필요할 때이니, 지금처럼 지각하지 않게만 신경 써 달라고 부모님께 요청했다. 대신 집에 있는 책 대신 빌려가는 책만 읽게 하고 글쓰기 분량이 적어도 잘 쓴 부분 위주로 칭찬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문학 책 위주로 빌려주었으며, 편독이 일어나지 않도록 과학, 인문, 사회, 역사 등의 책도 읽게 했다.
 특히 B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책벌레(김문태 저 | 뜨인돌 어린이)’ 책을 기점으로 태도가 많이 변화했다. 이 책은 독서를 많이 했던 위인들의 독서습관이나 태도, 책에 대한 생각 등이 담겨있다. ‘위인들의 독서 습관을 통해 자신의 독서 태도를 반성하고 개선할 방향은 무엇인가’를 글쓰기 논제로 적게 했더니 처음에는 어려워하다가 부지런히 적는 모습을 보였다. 여태까지 보인 모습과 다른 모습이기에 놓치지 않고 바로 칭찬을 했다. 글쓰기 시간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또박 또박 적는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주며, 어떠한 모습이 예뻐 보이는지를 스스로 알 수 있도록 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A는 서서히 책읽기와 글쓰기 활동에 재미를 붙였다.


아이의 마음을 어떠한 색으로 물들일 것인가 
 가끔 아이들에게 책읽기란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예절학교에서 옛 문화 체험으로 ‘천연염색’을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옛 선조들은 화학적인 물감이 없었을 시절 꽃이나 풀잎, 나무뿌리나 껍질 등의 재료를 끓이거나 우려내어 여러 가지 물감을 만들었다. 예절학교에서는 치자라는 열매를 이용하여 노란 색으로 물을 들이는 체험 활동을 했었다. 치자물에 하얀 천을 담그고 뒤적이며 잘 스며들도록 하고 햇빛에 말리면 예쁜 노란 빛으로 염색이 된다.
 이때 신기한 점은 염색된 천의 상태였다. 똑같은 크기의 하얀 천을 나누어 준 후, 같은 항아리에 담긴 치자 물에 담갔다 뺐다 잘 스며들도록 주무르게 했는데 햇빛에 말린 천은 어쩌면 그렇게 달랐을까? 어떤 천은 노란 빛이 선명하게 물들어 햇빛에 반짝이는데, 어떤 천은 거의 하얀 천에 가깝고 어떤 천은 군데군데 물이 덜 들었다.
 염색을 하는 과정이 아이의 책읽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의 마음은 염색을 하기 위해 준비한 새하얀 천 같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선명하고 깨끗한 빛깔로 나타나기도 하고, 탁하고 흐린 빛깔로 나타나기도 한다. 염색하는 방법을 일러주듯 책을 읽고 어떠한 사고를 해내는지 이끌어 주어야 한다. 무작정 천을 물들이라고만 강요한다면 아이들이 만들어 낸 천은 아름다운 빛깔을 담아내기가 힘들 것이다. 소중한 아이의 마음을 알록달록 선명하게 변화시키고 싶다면 다양한 책을 통한 염색의 과정을 습득시키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빠르고 예쁘게 염색되길 바라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하얀 천에 예쁜 색을 물들이는 방법을 일러주고, 기다려주는 마음이야말로 아이의 마음을 선명하고 아름답게 물들이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이다.

김가진 선생
(주)리딩엠 직영-책읽기와 글쓰기 교육센터 커스
초등 지도교사 김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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