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가 찾아 간 ''사북석탄유물보존관’
시간이 멈춘 자리에 광부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 남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석탄 역사의 현장 사북
‘사북석탄유물보존관’은 동양최대 민영탄광이었던 (주)동원탄좌 사북광업소를 탄광근로자와 지역주민이 주축이 되어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석탄역사 체험장이다.
현재 문경과 태백, 보령에 있는 ‘석탄 박물관’과는 달리 과학 기술의 손이 닿지 않은 채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리포터가 보존관에 내렸을 때 40여년이 넘게 뒤집어 쓴 석탄먼지로 잿빛이 되버린 광업소 건물 앞에서 왠지 모를 숙연함이 들었다.
이날 리포터는 광업소 유물 전시관을 돌아보고 광부인차에 탑승하여 광부들이 채굴하던 갱도 안을 들어가는 입갱체험을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지워지지 않은 광부들의 힘든 마주했다.
‘동원탄좌’는 80년대 당시 4000여명의 광업소 직원을 둔회사로 강원도 경제의 중심축이었다. 4000여명의 직원들이 월급을 받는 날, 사북읍은 온통 북새통을 이뤘고, 전국에서 몰려 온 무연탄 매입업자로 인해 여관과 술집이 호황을 누렸다. 이때 나온 말이 ‘탄광 지역은 지나가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었다. 그만큼 호황을 누리던 사북 경제를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한 달간의 고된 노동 후에 받은 월급봉투를 들고 삼삼오오 시장으로 나왔을 광부들과 가족들의 모습을 떠오려봤다. 동원탄좌는 석탄사업이 쇠퇴하면서 45년만인 2004년 폐광되었다.
88년도에 준공된 고도 48M 수직갱도다. 이 수직갱도는 지하 1000M까지 내려간다. 지하에는 광부들이 작업할 작업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수직 갱도의 엘리베이터는 수직으로 지하 1000M를 내려가며 각층 수평으로 된 곳에 도착하여 광부 120명씩을 내려준다. 광부들은 수직갱도에서 내려 다시 버스에 올라 정해진 땅속 작업장으로 가는 것이다. 광부들이 내린 곳이 그날 자신들의 작업장인 것이다. 80년대에 이뤄진 기술력이라고 생각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고 방대한 시스템이다. 광부들은 지상에서 수직갱도를 타면서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를 가족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수직 갱도가 다시 자신들을 태우러 올 때까지 빛도 없는 땅속에서 작은 헤드랜턴하나와 안사람이 싸준 차가운 도시락을 벗 삼아서 고독한 작업을 하루 8시간씩 했던 것이다.
광부 아내들 사이에서는 속담처럼 전하는 말이 있었다. ‘광부 남편 도시락을 쌀 때는 절대로 4주걱을 담지 않는다.’
보존관 가이드가 발길을 멈추고 검은 산 앞에 섰다. 이 산은 40여 년 동안 광부들이 파서 버린 탄가루가 모여 만들어진 산이란다. 가이드 설명을 듣던 일곱 살 여자아이가 “티클 모아 태산이네” 라고 말하자 주변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석탄산을 바라봤다.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광부아저씨가 삽질을 몇 번 해야 석탄가루가 모여 저렇게 엄청난 산이 될까?” 남자아이가 대답하기를 “수백억번?” 하고 대답했다. 현재 석탄산 정상 일부는 강원랜드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보존실 안으로 들어서면 실제 광부들이 사용하던 작업 도구와 각종 개인 소지품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광부들 소지품으로는 월급봉투, 새까만 세면도구, 멈춰버린 시계, 태우다 남은 담배로 광부들의 땀과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광부들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했다.
전시된 광부들의 물건은 도구가 아니라 광부가 한평생을 의지했던 목숨 줄이었고 밥줄이었을 것이다.
사북보존관의 특징은 예전 그대로를 보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갤러리는 보존관 중 가장 손을 많이 본 곳으로 보인다. 광부들의 공중목욕탕을 사진 전시실로 꾸미면서 천장 샤워기에 등을 달아 인테리어 효과를 냈다. 갤러리에는 동원탄좌에서 일하던 광부들 사진과 작업 현장 모습, 갱도가 무너져 사고가 났을 때 울부짖는 가족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어머니였을 얼굴들이다.
전시관 밖으로 나오면 ‘광부인차’를 타고 갱도 입갱체험을 하게 된다. 갱도는 실제 광부들이 입갱해서 채굴 작업을 하던 굴이다. 갱도 내부는 일년 내 영상 12도로 싸늘했다. 갱도 내에서 광부들의 유일한 친구는 쥐였다고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을 쥐들이 이동하는 통로는 선로였다. 광부들은 어둡고 캄캄한 굴속에서 쥐마저도 반가울 만큼 외롭고 긴 노동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탄질향상’, ‘아빠 오늘도 무사히’ 란 글귀가 눈에 들온다.
전시관을 나오는 길에 문득 임길택 시인 시집에 수록된 사북의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 동시가 떠올랐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광부이시다. 매일 시커먼 얼굴이 되어 오신다. 어떨 때는 맛있는 사탕이나 과자를 사오신다. 나는 그럴 때면 눈물이 글썽글썽 거린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에 앉은 사북 석탄광업소를 돌며 구석구석 광부들의 땀과 눈물을 고스란히 어루만지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당시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인 듯 보인다.
현재 강원랜드 밑 사북리는 ‘전당포’와 ‘맛사지숍’으로 연일 불야성을 이룬다.
위치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하이원길 57-3
한윤희 리포터 hjyu678@hanma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