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cm 키에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매가 살짝살짝 엿보이는 노경만군. “첫 인상이 호감형이 아니라 사람 만날 때 손해를 많이 봐요. 사실 친구들 사이에선 변죽 좋은 분위기 메이커로 통하는데요.” ‘범생이 스타일’의 노군은 솔직담백한 말을 툭툭 던지며 재미나게 인터뷰를 역어나갔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오늘을 즐기자’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늘 그런 생각을 품고 살아요.” “내 멘토는 나예요. 사람들이 떠받드는 유명 인사를 롤 모델 삼아 따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내 인생인데 나 답게,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면서 즐겁게 살고 싶어요. 사실 고3이라고 특별히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요.” 동북고 이과 전교 1등인 그에게선 고집스럽게 지키고 싶은 ‘노경만 다움’이 엿보인다.
장래 희망도 스스로를 냉철하게 판단하며 고심 끝에 공대로 방향을 잡았다. “주위에서 의대를 많이 권해 잠시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 분야는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홀랜드 검사 등 진로, 적성 검사 결과지를 검토하고 손재주가 좋은 내 특기를 살려 기계공학과를 목표로 삼고 있어요.” 공대 재학 중인 선배와 만나 많은 것을 상의하고 대학 학장의 강연까지 찾아 들으며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다.
어릴 때부터 그는 레고 블록에 흠뻑 빠져 살았다. 최신형 모델이 나올 때마다 부모님을 졸라 손에 넣어 뚝딱 완성했다. 블록 가지고 놀던 취미가 중고교 시절에는 PC 조립과 큐브 맞추기로 이어졌다. “컴퓨터 여러 대 망가트리며 터득한 기술이죠. 매뉴얼 탐독하고 그래도 막히는 부분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서핑하며 실마리를 찾아나갔어요. 내 손끝에서 완성품이 하나씩 탄생할 때마다 맛보는 그 희열이 참 좋아요.”
손재주 살려 공대 진학 목표 세워
고2 때는 친한 친구 아홉 명이 물리동아리를 만들어 신나게 활동하며 교내 논문대회인 ‘동북노벨상’에 도전했다. “우리나라 전통 기와에 고급 수학이론인 사이클로이드 곡선기법이 적용됐다는 설이 분분했어요. 하지만 우리 팀원들은 기껏 부피 계산, 방정식 푸는 수준이었던 조선시대 수학 수준을 감안하면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 생각했죠.”
5개월간 팀원들이 세운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온갖 자료 찾아가며 머리를 짜내 실험을 고안하며 수차례 반복했다. 친구들끼리 티격태격하기도 실험결과가 가설과 어긋나 미궁에 빠지기도 했지만 몇 날 밤을 꼴딱 새가며 논문을 완성했고 은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교과서 밖 수학이론을 우리 힘으로 찾아가며 가설을 입증했다는 뿌듯함, 논문 작성의 ABC부터 배워가며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해 여럿이 협업하며 지식을 채워나가는 묘미, 이런 경험들이 좋았어요. 점수로만 매겨지는 학교공부에선 맛볼 수 없었던 성취감이지요.” 노군이 속한 물리동아리는 지난해 강동과학축전에 참가해 운동의 힘의 원리를 볼링게임형식을 가지고 흥미롭게 설명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그는 고1 때부터 해오고 있는 강동성모요양병원 봉사를 고3인 지금도 거르지 않고 다닌다. “병원 청소나 노인들 미술치료 도우미로 활동하고 매달 생일파티도 해드려요. ‘너희들 또래 손주들이 있는데 찾아오지 않는다’며 울먹이는 어르신들을 보면 가슴이 짠해요. 그렇다고 내가 봉사정신이 특출 난 건 아니고 늘 해오던 일인데다 무언의 가르침을 주는 곳이라 친구랑 꼬박꼬박 찾아가는 거예요.” 의젓하게 답한다.
친형은 살아있는 ‘공부 교과서’
이처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현재를 충실히 살기 위해 애쓰면서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그러자 6살 위 친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1 때 중상위권 성적이었던 형이 이왕 공부하는 거 서울대 경영학과를 목표로 삼겠다고 큰소리 치더군요. 그러더니 고3 때까지 하루 4시간만 자고 종일 책상 앞을 지키며 지독하게 공부했어요. 원서 쓸 무렵 주위에서는 하향지원하라고 말렸지만 뚝심 있게 밀어붙이더니 결국 합격했어요. 모든 건 ‘본인 의지’에 달려있다는 걸 증명한 형이 내겐 살아있는 공부 교과서인 셈이죠.” 노군은 평일에는 밤 12시까지 학교 자습실 붙박이로 지내지만 주말에는 머리를 식혀가며 공부의 완급을 조절한다.
“수학은 학교 방과후 수업을 꼬박꼬박 챙겨들었어요. 내신시험은 학교선생님들이 출제하니까요. 인터넷강의도 좋지만 컴퓨터 앞에 앉으면 자꾸 딴 짓을 하게 돼 EBS교재로만 공부해요. 중학교 땐 판타지소설에 빠져 살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속독 훈련이 되더군요. 고1 때는 수능교재로 영어 공부하니까 따분해서 랜디 퍼시 교수가 쓴 <마지막 강의>를 원서로 봤는데 감동적인 내용이라 몰입해 읽다보니 독해력, 어휘력을 높이는 데 도움 됐어요. 뭐든 재미있게 집중해서 하다보면 실력으로 쌓이더군요.”
고3이란 중압감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착실하게 지켜나가는 노군에게서는 ‘현재가 쌓여 미래가 만들어지기에 현재(present)가 선물(present)이란 걸 간파한 영민함이 읽혀졌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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