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도시로만 알려진 안산에는 사람이 사는 유인도가 몇 있다. 큰 언덕의 섬 대부도와 은행나무 단풍이 곱게 물드는 풍도, 여섯 섬이 형제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육도가 바로 그곳이다. 대부도는 시화 방조제로 연결돼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지만 풍도와 육도를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이른 봄이면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오랜 전설을 간직한 은행나무가 있다는 섬 풍도는 언제부턴가 꼭 가고 싶은 섬이었다. 마침 안산의제 21이 민간협력 워크숍을 풍도에서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사보다는 젯밥’에 눈이 팔려 풍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안산의 남쪽 끝자락 ‘풍도’를 지키는 순박한 사람들
대부도 남쪽 24Km, 일행들은 경기도 행정선인 ‘경기 바다호’를 이용했지만 얼마 전부터 안산에서 풍도를 오가는 배편이 만들어졌다. 대부도 방아머리에서 아침 9시 출발(짝수날 아침 8시 출발) 풍도까지 1시간 20분 소요된다. 풍도에서 하룻밤 묵을 계획이 아니면 2시간 안에 섬을 구경한 후 선착장으로 12시 30분까지 돌아와야 한다. 크지 않은 섬이지만 섬 전체가 작은 산이라 시간 안에 다 보려면 바삐 움직여야 한다.
비가 그친 풍도는 면사포를 쓴 새 신부처럼 안개 속에 얼굴을 반쯤 가리고 수줍은 듯 외지인을 맞는다. 선착장에 내리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마을이 풍도에서 유일한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는 풍도분교가 ‘축구하다 바다에 공 빠뜨리기 딱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았다. 지금은 유치원생 2명 초등학생 2명이 선생님 2명과 함께 대남초교 풍도분교에서 공부하고 있단다.
풍도에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계절은 이른 봄이다. 복수초와 바람꽃, 노루귀, 풍도대극 등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오는 사진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유명한 야생화는 이미 지고 녹음이 우거진 6월에야 섬을 찾은 일행에게 마을 어른들이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고춧대를 세우던 어르신이 궁금하셨는지 “어데서 오셨소?” 하고 묻자 엉겁결에 “안산에서 왔습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 어르신 씨익 웃으시며 “여기도 안산이요”하신다.
“아 참 그렇죠”라며 마주 보고 웃었다. 풍도에서 태어나신 이 분은 젊어서 인천 어느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시다 정년 퇴직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귀향 에는 사연이 있었다. 이유도 없이 두통에 시달리는 할머니가 풍도에만 오면 두통이 사라져 고향이 풍도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풍도 공기가 좋기 때문”이라며 자랑하신다. 아직도 힘든 밭일을 거뜬히 해 내시는 할아버지 올해 연세가 여든 셋이란다. 풍도가 할머니에겐 건강을 할아버지에겐 젊음을 준 게 분명해 보인다.
청일전쟁 시작을 지켜 본 은행나무 두 그루
마을 위 계단식으로 쌓인 밭을 지나 찾아간 곳은 풍도의 지킴이 은행나무. 암수 한 쌍인 이 은행나무 나이는 최소 500년을 넘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이 은행나무 유래에는 전설이 두 개 전해지는데 하나는 661년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고 당나라로 돌아가던 길에 풍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심었다는 이야기와 조선 중기 인조가 이팔의 난을 피해 공주로 파천하다가 풍도에 들러 심었다는 전설이다. 두 이야기 모두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아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풍도가 경기만의 중요한 뱃길에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과 교류를 위해 먼 옛날부터 많은 배들이 풍도 앞 바다를 지났을 것이고 풍도의 은행나무는 가을철 노랗게 물들어 지나가는 뱃사람을 배웅했다. 그래서 지금은 풍요로울 풍(豊)을 쓰지만 풍도의 원래 이름은 단풍 풍(楓) 풍도였다.
풍도는 이런 중요한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우리 역사에 인상적인 등장을 한다. 1875년 7월 25일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된 풍도해전이 바로 이 앞바다에서 일어났다. 풍도 앞에 정박한 청나라 함대를 일본이 공격하면서 청일전쟁의 시작된 것.
은행나무 앞에 서니 서해바다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은행나무는 130여년 전 동북아시아 패권을 놓고 다퉜던 두 나라 전투가 벌어졌던 광경을 지켜보았을 생각을 하니 인간의 나약함이 절실히 느껴진다.
멸종위기 참 달팽이 조심 조심
봄을 알리는 야생화는 모두 졌지만 고추심고 고구마 심은 풍도의 밭가 언덕엔 여름철 야생화와 오디, 산딸기가 지천이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한가로이 길을 건너는 달팽이가 눈에 들어온다. 달팽이 등에 나선형 무늬가 선명한 우리나라 고유종 참 달팽이다. 지난해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는 귀한 몸인데 물 먹으러 나왔다가 참변을 당한 놈들도 있다. 깨끗한 환경에서만 산다는 참 달팽이는 여느 달팽이와 달리 선명한 나선형 무늬와 크고 납작한 몸통이 특징이다.
풍도에 온 손님을 반기기라도 하듯 귀한 모습을 보인 참 달팽이를 피해가며 조심조심 길을 내려오다 보니 벌서 배 떠날 시간이다.
시간이 부족해 해안가를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와 아쉽긴 하지만 섬 뒤편엔 모래 채취를 위한 공사장이 있다니 오히려 안 간 것이 다행이지 싶다.
풍도에서 숙박을 할 경우 마을 안 민박집을 이용해야 한다. 선착장 왼편에는 작은 마을 식당도 있어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 2시간 남짓 둘러 본 풍도는 사람의 손 때가 묻지 않아 섬의 원형질이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다. 안산과 멀리 떨어진 풍도의 행정구역이 왜 안산이 되었는지 궁금증은 끝까지 풀리지 않았지만 안산에 풍도가 있어 참 다행이다. 순박한 어르신과 참 달팽이, 아름드리 은행나무, 시원한 서해안 바다 풍경이 그리운 날이면 언제든 올 수 있어 더 다행이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