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린이날 대통령 훈장 수상한 ‘서울 SOS 어린이마을’ 정순희 씨
28년간 50명의 아이들의 엄마로 살 수 있어 행복했어요
올해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훈장을 받은 정순희 씨. 그는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같이 살수 없는 상황에 있는 아이들의 엄마로 28년의 삶을 살았다. 그의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 50여명. 아픔과 상처로 가득한 아이들을 보듬는 엄마로서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유광은 리포터 lamina2@naver.com
결혼 대신 선택한 엄마로서의 삶
아동복지시설이라면 왠지 쓸쓸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신월동 SOS 어린이 마을은 밝고 환했다. 오렌지 빛 기와가 멋스러운 2층 주택들과 예쁜 꽃밭이 한데 어우러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28년 전, 정순희 씨는 이곳에 처음 왔다. “90명의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서로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죠. 그냥 저절로 이런 것이 ‘평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그는 어려서부터 남을 돕는 삶에 관심이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연수원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1980년 초반, 사회복지를 공부할 당시 서울 SOS 어린이마을이 막 설립됐지요. 강의 때마다 교수님들이 이곳에 대해 좋게 말씀하셨어요. 그 당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아동시설에 맡겨져 공동으로 생활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SOS 어린이마을은 아이들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는 아주 좋은 시스템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관심을 갖고 있다가 이곳으로 오게 됐지요.”
SOS 어린이마을은 엄마 한 명에 7명의 아이들로 가정을 꾸린다. 이곳의 엄마들은 평생 독신으로 살며 아이들을 돌보고 뒷바라지 한다. 정순희 씨가 SOS 어린이마을의 엄마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가끔씩 저를 찾아 오셨지요. 제가 집안일 하는 것을 보고는 ‘이런 일도 할 줄 알아?’하며 대견해 하셨어요. 반면, 제가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얘들한테 왜 그렇게 하냐며 핀잔을 주셨지요. 아이들 양말도 기워주시고 숫자도 가르쳐 주셨어요. 어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욕심내며 살기보다 ‘삶은 그냥 살아 사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지요. 그런 어머니의 성품을 제가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이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드리고 사랑하기
인터뷰 도중 전화가 걸려온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라며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나 아파!”
“어디가? 목소리가 너무 피곤하게 느껴진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목소리가 영락없는 아들이다. 지금은 어엿한 미술대학생인 아들은 태어난 지 8시간 만에 그에게 왔다. 규정상 이제 어린이 마을을 떠나 따로 살고 있지만 그래도 항상 자랑스럽고 고마운 아들이다.
“아들이 얼마 전 코엑스에서 졸업 작품 전시회를 열었어요. 그때 힘들었나 봐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지요. 착하고 생각하는 게 반듯해요. 자기가 원하는 직장에 꼭 들어가면 좋겠어요.”
여느 부모처럼 자식자랑에 신이 난 정순희 씨는 얼마 전 이 반듯한 아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작은 나무패에 적힌 감사의 말에 그는 부끄러워하는 눈치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새벽같이 일어나 반찬도 만들고, 도시락 11개를 싼 적도 있었지요. 지금 돌이켜봐도 참 즐겁고 행복해요.”
일곱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는 아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가끔 어떻게 살아왔는지 놀랍기도 해요. 예전 아이들은 가출을 정말 많이 했어요. 새벽 두 세 시에 서울역, 영등포역으로 많이 찾아 다녔지요. 학교에 쉴 새 없이 불려가고 경찰서도 많이 갔어요.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샌 적도 많지요. 한 번은 말썽꾸러기 딸 때문에 학교에 불려간 적이 있는데, 무릎을 꿇고 있는 딸을 안고 펑펑 울기도 했어요.”
그 딸은 지금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성인이 돼 마을을 떠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소중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딸이다. 엄마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좋은 신랑 만나 잘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한다.
가슴 아팠던 순간을 지나오면서도 그는 ‘엄마’를 그만 두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며 신앙의 힘으로 엄마의 길을 걸어왔고, 아이들과 자신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의 평화와 치유를 경험했다고 한다.
“전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안 주려고 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심리적 안정과 행복이거든요. 이것도 찾기 전에 공부를 잘 하라고 강요해선 안 되죠. 저도 솔직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려고 애썼지요. 엄마가 그리운 아이들에게는 무릎을 내주고,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겐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준 것뿐이에요.”
정순희 씨는 내년이면 SOS 어린이마을 ‘어머니’를 공식 은퇴한다. 아이와 엄마의 나이 차가 많으면 아이들 학교생활 등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만 57세 되면 ‘SOS 엄마’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는 “4명의 아이들이 결혼해 손자손녀가 16명”이라며, “은퇴해도 엄마는 계속 엄마고, 그 아이들의 할머니 역할도 계속해야 한다”며 평화롭게 웃었다.
<SOS 어린이마을>
강서구 신월동 위치한 SOS 어린이마을은 친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자립할 때까지 보호, 양육하는 기관이다. ‘우리들의 영혼을 구해 주소서’라는 뜻의 SOS(Save Our Souls) 어린이마을은 헤르만 그마이너 박사에 의해 오스트리아에 처음 설립됐다. 이 후 전 유럽에 세워졌으며 한국에는 1968년 처음 설립됐다.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돌봐 주는 엄마와 7명의 아이들이 서로 형제, 자매가 돼 생활하며, 현재 어린이 마을엔 모두 10가정이 살고 있다.
문의 02-2696-2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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